6. 1969~1979년 대일 돈육 수출
6.1 1969년 대일 돈육 수출
1969년 6월에 1968년 일본지역에 대한 돈육 수출을 담당해 온 광성기업과 전북축산 등 관계 업계는 수출 증대와 창구 일원화를 기한 돈육 수출협의회를 구성 6월 2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승인을 요청했다. 광성기업, 전남축산농협중앙회, 전북축산 3개 업체로 구성된 이 협의회는 수출품목을 생돈, 냉동 돈육(돈지육), 냉동부분육 등 3개 품목을 대상으로 하여 대일 수출에서는 이 협회의 추천하는 것에 한해 1969년 하반기 수출입 기별 공고에 의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수출 추천을 받도록 함으로써 수출창구의 일원화를 통해 업계 스스로가 수출 태세를 가다듬었다.
1969년에 들어 일본에서는 부분육(cut meat)의 요구가 늘었는데 냉동 돈육 즉 지육은 톤당 20마리 즉 두당 50kg이었으나 부분육은 톤당 25마리 즉 두당 40kg의 정육을 수출하게 되어 생돈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였다.
1969년 6월 광성기업은 이토추 상사와 냉동 돈육 수출가격을 지육은 C&F 톤당 930달러~950달러 선으로 부분육은 톤당 1227달러로 합의하였다. 계약 물량은 600톤 이 중 100톤만 부분육 나머지는 냉동 돈육(지육)이었다. 600톤의 돈육을 일본에 수출하기로 했는데 수요 되는 생돈의 수가 12,000두에서 14,000두로 늘고 가격도 톤당 1,229달러 냉동 돈육(지육)보다 300달러 정도 높았다.
1969년 주일대사관이 외무부에 보고해온 일본 농림성의 돈육시장조사결과에 의하면, 6월 중순 일본시장에 출하된 돈육은 총 69만두 밖에 안되어 4~6만두 가량이 부족하다고 보고 되었다.
농림성이 조사한 시장예측에 의하면, 이와 같은 부족 현상은 1970년 3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돈육 부족으로 1969년 일본은 총 42,651톤 51,733천달러를 수입하였고 우리나라는 653톤 697천달러를 수출하였다. 물량으로는 전체 대일본 수출국 중 1.53% 금액으로는 1.31%였다.
# 매일경제, “돈육 수출협의회 구성”, 1969.06.
1858년 이토 추베이(伊藤忠兵衛)가 15살의 나이에 아마 섬유(린넨)와 기모노를 판매하며 단순 도·소매업으로 출발했던 이토추는 오늘날 원유를 비롯한 에너지, 의류·음식 소매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하는 초대형 종합상사로 바뀌었다. 2010 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 거래 규모가 146조 원(10조 3068억 엔)으로 삼성전자의 2009년 매출액 139조 원보다 많다. 사업 분야는 직물, 기계, 항공, 전자, 멀티미디어, 에너지, 철강, 광물, 화학, 목재, 식품, 금융, 부동산, 보험, 운송 서비스업으로 확대됐다. 이토추 그룹을 구성하는 주요기업은 이토추기업, 이토추 석유탐사, 이토추 건설기계, 이토추항공, 이토추 마비스, 이토추 테크노솔루션즈이다. 이토추 그룹은 한일국교 정상화 직후인 1967년 2월 한국이 토추를 개설한 이래 45년 동안 국내에 기술 및 자금을 투입하며 사업을 펼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