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돈육 수출의 역사 16

6.2 1970년대 대일 돈육 수출

6.2 1970년대 대일 돈육 수출

1970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수출창구 일원화를 위해 구성한 돈육 수출협회에 참가하지 않은 한흥상역을 수출업체로 추천한 데서 치열한 수출 주도권싸움이 벌어졌다.

1970년은 농어촌개발공사 투자업체인 양돈가공센터가 자가 생산에 의한 대일 냉동 돈육 수출을 6월부터 연내 약 10,770여두를 생산 수출을 시작할 것을 계획했다.

양돈가공센터는 광성기업의 도축시설을 이용 냉동 처리한 다음 농어촌 개발 공사를 통해 수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돈육 수요는 성수기 (5월~10월경까지)에 접어들고 있었으나 국내 생돈 가격이 90kg 규격돈 마리당 17,500원 이상의 강세를 지속하는 한편 일본의 돈지육 시세 또한 대량 수요지역인 게이힌(京濱) 및 한신(阪神) 지방에서 kg당 350원 선에서 6월 들어 4백원 선을 웃돌아 상승하는 경향을 보임에도 우리나라의 국내 생돈 가격이 월등히 높아 한 마리당 4000원의 손실을 보게 되어 정부의 손해 보상책이 없는 한 수출이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1970년 7월 전북축산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냉동 돈육 60톤을 추천받았다.

1970년 9월 19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제9차 농수산물 수출진흥회의를 갖고 돈육의 장기 수출 전망을 분석하고 계속 육류의 국내소비량이 늘어남에 따라 돈육의 수출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판단 농림축산식품부는 계속하여 돈육 수출을 규제하기로 했다.

1970년 일본의 총 돈육 수입물량은 17,149톤 금액으로는 20,926천달러로 1969년 대비 40%로 줄었다. 우리나라는 70톤에 55천달러을 수출하여 전체 일본 수입량에 물량으로 0.4% 금액으로는 0.26%의 미미한 선이었으면 전년대 물량으로 11% 금액으로는 8% 선을 기록했었다.


6.2.1 1970년대 초반 다두사육 양돈 농가 현황

1970년대 초반 당시 우리나라 농가는 영세하였다. 전국평균 농가 호당 사육두수도 1.5두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영세한 양돈경영으로는 수출규격 돈을 저렴한 가격에 생산하기가 곤란하므로 수출 양돈 단지를 조성하기도 하고 다두사육을 장려하여 종돈, 사육, 관리 등의 과학적인 기술을 도입하는 동시에 개인적으로나 조합적으로 합리적인 경영과 운영을 도모해야 할 때였다.

전국적으로 성돈 20두 이상 또는 육성돈 50두 이상 혹은 성돈 육성돈 합계50두 이상의 다수 사육 농가를 조사한 결과 시도별로 보면 <표 1-21>과 같다.

표10-21.png

대기업적 양돈농장으로는 제주도의 이시돌 양돈농장이 있으며 14,500두로 전국 두수의 1%를 차지하는 큰 농장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당시로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업양돈의 가능성은 물론이고 군사로 다수사육법, 과학적인 양돈기술, 사료도입과 돈육 수출 등 국제적인 양돈업의 모델을 그 당시 양돈 농가들에 제시하여 주었다. 다음은 농어촌개발공사에서 합자 투자하여 만든 양돈가공센터인데 설립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 적자를 보고 있었다. 그밖에도 파주 양돈장 등이 당시 대규모 양돈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경남에서는 최성수씨의 밀양양돈장이 1,220두 규모, 박재근씨의 김해양돈장이 1,300두 규모 및 최원민씨의 남산축산이 1,243두 등이 경남 양돈업의 중추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부산 경남지역에 50두 이상 사육하는 양돈장 40개소가 모여서 부산경남양돈협회를 창설하였으며 이 협회는 양돈에 관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교환하고 상호간에 협조하면 양돈업의 개선을 도모하여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킴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협회는 수출 및 군납 규격돈의 생산 공급과 생산자돈 및 비육돈의 유통과정 질서 등 7대 항목의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협회를 좀 더 강화하여 수출양돈과 직결시킴으로써 경남 부산지역의 수출양돈 기반이 조성되었다. 기타 지역은 모두 대기업양돈을 하는 양돈장이 없으나 중소양돈은 경기도에 많은 편이고 농가양돈은 전남, 전북, 경북, 충남의 순으로 되어있었다.


1972년 8월 10일 농림축산식품부 공고 제452호 우육, 돈육 수출 추천 요령을 개정하면서 시장 군수가 증명하는 원료 돈 사육 규모 3,000두 이상 자가 생산 또는 계약 생산하는 자 또는 전자와 수출 대행 계약된 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원료돈 3,000두에는 자가 직영이 500두 이상이어야 함인데 이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출업체가 많지 않았을 것은 농림부에서 실시한 1972년 다두 양돈 농가조사 결과 알 수 있었다. 1972년 10월 2일에 농림부 공고는 1973년 추천업체의 사육 규모가 6,000두로 늘어났다.

image04.png 그림 1-] 우육·돈육 수출 추천 요청


image05.png 그림 1-] 돈육 수출업체 선정 요청
image06.png 그림 1-] 대일본 돈육 수출 대상자 자격 심사 요청 자료 : 관보 제6,269호, 1972.10
image07.png 그림 1-] 우육·돈육 수출 추천 요청 자료 : 관보 제6,087호, 197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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