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돈육 수출의 역사 18

6.4 1972년 대일 돈육 수출

1972년은 연초부터 수출이 활성화되는 해였다. 그해 일본은 자국 내의 돈육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관세율을 인하하는 등 조처하여 수출여건이 좋았다. 그러나 부업양돈의 규모를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나라는 계속 과당경쟁을 막기 위한 수출창구의 일원화, 생돈수집시에도 과당경쟁으로 생돈 수집가격인상을 막기 위한 자가 양돈 단지 설치 및 생산자와의 계약생산장려, 계통출하제도입, 사료 지원 등의 당면한 문제점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시책들이 난무하였다.

그 출발을 신일물산(경남김해소재)이 냉동 돈육 21,000kg을 2월말까지 일본으로 선적하면서 시작되었다. 냉동 돈육은 kg당 1달러44센트로 모두 30,000달러 상당이었다.

이어 농림부는 2월 16일 삼호축산(목포시 소재 대표 송찬규)에 200톤 냉동 돈육 수출을 추천했다. 일본의 동양면화에 수출하는 이 돈육의 수출 단가는 톤당 C&F 1,500달러로 모두 300,000달러 3월 16일 농림부는 신일물산(최원민)에 대해 대일 수출 냉동 돈육 32톤 4월 말일까지 선적 조건으로 추천했다. 일본의 코와축산으로 수출되는 냉동 돈육의 톤당 가격은 1,540달러 40센트였다.

5월 22일 농림부는 신일물산에 대해 돈육 52톤을 8월20일까지 선적조건으로 수출 추천했다. 일본 화합 축산으로 수출되는 이 돈육은 톤당 1,560달러 모두 80,420달러였다.

5월 26일 풍양산업(대표 양성준)에 대해 냉동 돈육 30톤을 6말일 선적 조건으로 수출 추천했다. 한국물산(공개공투자회사) 동경 본사로 수출되는 이 냉동 돈육은 톤당 1,526달러 모두 45,780달러이었다.

6월 14일 농림부는 돈육 수출의 계속된 증대를 위해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돈육생산단지를 조성하고 수출업체에 대해서 의무적으로 자체 양돈장을 보유 양돈의 의무화시키는 한편 수출업자와 생산업자(양돈업자)를 직결시킴으로써 중간상인을 배제 양돈업자의 이익을 높여줌으로써 생산의욕을 고취해 나아갈 방안을 마련하였다.

가.양돈생산단지의 조성

나.수출업체 자체 양돈장 보유

다.수출업자와 양돈업자를 직결시킴으로써 생산자를 보호한다.

라 1972년 2월 25일 농림부 공고 제427호는 돈육의 경우 사단법인 한국 축산 증산수출사업회 또는 전자의 수출확인을 받은 자로 공고하였다.

1972년 돈육 수출을 담당하던 수출상사들은 모두 8개소였다, 상사들은 직접 간접으로 관계된 도축장과 냉동설비 가지고 도축 처리하거나 한국냉장설비를 빌려서 급속냉동(-15℃) 및 냉장을 하고 있었다. 원료돈 수집은 그 당시 중간수집상 통하여 근당(600g) 130원~140원 사이로 주고 있었다, 따라서 생산자는 근당 115~130원 사이에서 매도하고 있었으므로 수집상의 마진은 두당 1,500원 정도였다. 수출업자별 도축처리장과 수집구역을 보면 다음과 같다.

당시 생산업자와 생산단지와 직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신일물산만이 자체 1,200두 규모의 양돈장을 가지고 또 김해종돈장 (박재근) 1,300두와 밀양종돈장(최성수) 1,330두를 중심으로 부산경남양돈협회를 중심으로 규격돈을 수집하고 있었다. 국제축산은 제주도 특히 이시돌 농장에서 생산된 규격돈 월 1,500두를 부분육으로 수출하고 그 밖의 농민들이 사육하는 규격돈을 수집하려 수출 양돈 기반조성이 무난했다, 성풍산업은 인천 양돈가공센터 및 파주양돈장에서 나오는 규격돈과 서울 경기 일대에서 생산되는 출하돈을 수집하여 수출하였다. 삼호축산은 목포항을 중심으로 주위의 농가 양돈지대인 목포시, 신안, 무안, 강진, 해남, 영암, 영광 등의 규격돈을 수집하고 있는데 그 당시 수출상사와 생산자 간에 긴밀한 연결 없이 상인을 통한 수집이 주였다.

image08.png 그림 1-] 돈육 수출 추천 대상자 자료 : 공보, 제6697호, 1974.03

6월 14일 농림부는 성풍산업(대표 김남형)에 대해 냉동 돈육 20톤을 6월 25일까지 선적 조건으로 수출 추천했다. 일본 명고옥(名古屋) 소재 니구노 회사에 수출되었던 돈육은 톤당 FOB 1,700원달러로 총 34,000달러이었다. 당시 톤당 FOB1,560달러 정도였으나 일본의 수요증대와 우리나라 산의 우수성이 인정되어 가격이 인상되게 되었다.

마. 6월 17일 한국 축산물 수출증산사업회는 산하 회원상사별 생돈 수집 구역을 책정했다(표 1-22).

대일돈육 수출 증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내생돈 가격 안정이 필요하다는 회원상사들의 의견에 따라 수출 규격돈의 생산기반이 확정될 때까지 수집구역제를 시행키로 했다. 회원상사들은 상호 수집구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하고 중간 수집과정을 배제 생산 농가와 직접 거래함으로써 수집가격도 생돈 kg당 135원 선이 유지되도록 노력하였다.


표1-22.png

바. 7월 26일 농림부는 냉동 돈육 수출가를 인상하도록 한국 축산물 수출증산사업회에 지시했다.

일본의 돈육가격이 계속 오름 추세였고 당시 축산물 수출증산사업회가 수출기준가격 (톤당 C&F 정육기준)을 기존 1,550달러에서 1,600달러로 인상을 계획했으나 현시세보다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었다는 점을 들어 인상을 지시했다.

일본 정부가 돈육수입관세율(10%) 면세를 1972년 10월 말까지 다시 연장했고 대일 돈육 수출 증대를 위해 수집자금 1억원 방출, 규격돈 생산자에 대한 사료의 우선 공급, 수출 장려를 위한 수출실적 50%까지의 어분 링크 수입권 부여 등 지원시책을 추진하였으므로 기준가격인상은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1972년 당시 상공부가 분석한 일본의 양돈산업과 대일 돈육 수출 전망은 일본 양돈업은 농가소득증가와 공해 규제 등의 이유로 점차 사양화되는 반면 시장수요는 연간 10%씩 증가하고 있으면 대만의 수출경쟁력이 약화하고 일본의 생산자 보호 가격제 시행으로 중국산의 대량 덤핑세가 억제되어 우리나라 돈육의 수출 증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아 연간 1천만 달러 이상 수출 목표로 선정하고 생산기반 조성을 위한 생산기반 조성 자금 10억원을 확보 양돈업자들에게 지원 규격돈의 수집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대일 수출 독점권부여를 고민했다.

당시는 수출을 위해 일반농가로부터 수출용 원료돈을 수집 수출하였는데 1972년 8월부터는 수출업자가 양돈 단지를 조성 계획 생산 수출토록 정부가 규정하여 돈육 수출업자의 양돈 단지 조성을 의무화했다. 원료돈 사육 규모 3,000두 이상 자가 또는 계약생산하는 자로 의무화하였다. 당시 이러한 의무 조항을 이행할 수 있는 수출업체는 신일물산 뿐이었다. 이후

수출업자들은 양돈 생산 농장들과 생돈 공급 계약 체결이 형식적으로 붐이 일었다. 이후 동년 9월에는 기존 신일물산 이외에 삼호축산과 성풍산업되 농가와 생돈 공급 계약을 완료 독점권을 주장하게 된다.

8월 21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성풍산업에 대해 냉동 돈육 200톤을 9월 30일까지 선적 조건으로 수출 추천했다. 일본 구마모토 상사로 수출되는 돈육은 톤당 FOB 1,700달러로 모두 34만 달러였다. 이 추천까지 성풍산업은 1,534톤을 1972년 수출하여 2,273,152달러의 수출 누계 실적을 보였다.

일본의 관세 면세 등으로 수출에 호조를 보였지만 돌연 9월 7일부터 추석물가안정대책의 하나로 수출이 잠정 중단이 되었다. 추석을 전후하여 육류의 수요증대에 따라 생돈 가격이 kg당 130원 선에서 150원 선 내외로 오르고 수출용 생돈 수급도 어려워 이해 9월은 삼호 축산에 140톤 217,000달러 수출 추천뿐 수출이 잠정 중단되었다.

정부가 돈육 수출의 추천권을 가진 당시의 상황에서 정부 정책의 우선이 국내 물가 안정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국내 수급에 따라 국내 가격 안정을 이유로 돈육 수출이 잠정 중단되는 건 때론 몇 달씩 때론 몇 년씩 연장되기도 하였다. 아마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 상사 자본의 투자가 대만 같은 형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부의 성격에 대한 독특함을 잘 말해 주는 현상으로 보아야겠다. 중단되었던 수출은 10월 20일 다시 시작되었다.

이날 국제축산개발회사(대표 박정근)가 구주축산에 수출하려는 냉동 돈육 80톤 (FOB 톤당 1,500달러)의 수출을 추천해 주었다. 이는 추석 전후 근당 160원을 넘었던 생돈 가격이 10월 들어 145원 안팎으로 안정세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1972년의 대일돈육 수출 붐을 타고 일본 축산업자들과 돈육 수출사업을 위한 합작투자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돈육 수출합자사업 10만달러 규모로 활발’이라는 제목의 1972년 기사에 돈육 수출업계는 신일물산이 지난 71년 초부터 일본 유수의 축산물 수입업자인 협화축산과 수출용 돈육 생산을 위한 10만 달러 규모의 합작 투자사업을 벌인데 이어 1972년에는 광양식품이 일본 하관의 하촌상회와 10만 달러를 30대 70의 비율로, 국제축산개발(대표 박정근)은 제주도에 있는 이시돌 농산협회, 그리고 대판에 있는 한국계 국제축산co(대표 오혁종)와 10만 달러 한도의 3자 합작투자사업을 추진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됐다. 하지만 이들 투자의 규모나 성격이 양돈장 건설 비용이라기 보다는 수출 선급금 정도의 금액이었다.

1978년부터는 대일 수출도 중단되었다. 하니 일본과의 합자가 양돈장 조성 비용으로 투자되었다면 일본측의 손해가 컸을 거다. 당시 국내에서 쇠고기나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면 정부는 수출을 한시적으로 중단시켰다가 가격이 안정되면 수출을 재개하는 정책을 폈고 일본은 이로 인해 안정적으로 돼지고기를 공급받을 수 없어 한국에 항의하기도 했다. 따라서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합작에 의한 외자 투자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1973년 들어 돈육 수출업체당 6,000두의 자체 사육을 의무화하고 돼지고기 수출증가 추세에 대비하여 19개 양돈 단지를 조성 수출 규격돈을 생산할 것은 계획하고 보도하지만, 이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육류 소비가 확대되는 일본의 사정을 체험하고 있던 박정희 정부가 양돈 증산 정책을 국내용으로만 한정지었을 때 가격 불안정으로(호그 사이클) 가격 하락시 농민들의 언성을 살 것을 우려한 기만 정책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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