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대일 냉동 돈육 수출
1973년의 수출 목표
1972년 11월에 농림부는 73년도 대일냉동 돈육 수출 목표를 물량 기준 5,000톤인 750만달러로 정했다. 수출 조건도 한층 강화하여 업체당 연간 수출 의무액을 70만달러 이상 높였다. 이는 일본의 계속된 육류 수요의 증가에 따른 수입의존과 소비자 판매 가격의 안정을 위한 수입 촉진을 위해 수입관세율 10%의 감면 조치가 1972년에 이어 1973년에도 이루어질 것을 감안한 목표였다. 이런 물량은 생돈 약 10만두를 가공수출하는 것으로 돈육 수출증대를 위해 전국에서 선발된 모범양돈가들에게 종돈 사육관리와 육돈기술, 사료이용, 질병대책 및 양돈경영과 현지견학 등을 시켜 새로운 기술 습득케 하기 위한 방침을 마련하였다.
1973년 수출업체별 수출실적
1973년 2월 8일 자로 금수 조처가 내려졌다. 구정을 전후해 돼지고기의 국내수요가 늘어나 600g 당 350원까지 올라 주부들의 불매운동까지 벌어지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수출 중단 전 1월 수출실적은 192,000달러이면 2, 3월 중 선적예정 물량이 588톤이었다. 성풍물산 195톤, 삼호축산 70톤, 국제 45톤, 신일산업 40톤, 한국발효 19톤, 태양통상 50톤, 풍양 169톤이었다(표 1-23).
1973년 일본정부는 10%의 돈육 수입 관세율을 감면 조치한 데 이어 4월 이후에도 계속 관세율을 감면 조치하였고 1973년 3월 이전의 톤당 수출가격이 1650달러에서 1915달러 이상으로 오르고 있었으나 국내 생돈 가격이 근당 195원 안팎이라 정부의 금수 조치는 계속되었다. 이에 한국 축산물 수출증산사업단은 수출 승인을 받은 12개 업체는 수출용으로 사육하는 돼지에 한해서 금수 조치를 해도 국내 유통가격에 그다지 영향을 안 미칠 거라 주장하면 금수 조치해제를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이번 수출 금수 조치는 5월 15일 자로 부문적인 돈육 수출을 재개하게 되는데 정부가 돼지고기 수출을 재개하게 된 것은 국내 돼지고기 가격 안정보다 일본의 돼지고기 수입상들과 국제적인 상거래 신의를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돼지고기 수입상들은 우리나라에서 장기간 돈육 수출이 중단할 경우 수입선을 대만으로 돌리겠다고 최후통첩을 해 오자 모처럼 확보된 수출시장기반이 무너질 염려가 있어 불가피하게 수출 재개를 할 수밖에 없었다.
5월 19일부터 수출량을 6월 200톤 7월 300톤으로 8월 400톤 제한했으나 9월 들어 제한 수출을 해제하였다. 농수산부는 9월부터는 출하 물량이 늘어날 것이고 그동안 수출제한과 양돈 붐 등을 사육두수가 많이 늘어나서 돼지고기 가격이 근당(600g) 400원 선에 안정되었고 가격 폭락을 예상하고 9월부터는 돼지고기 수출을 개방하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월 10일 공고를 통해 73년도 돈육 수출 추천 대상업체를 11개소를 선정하는데 72년도에 70만달러 이상 수출했거나 종돈 100두이상 육돈 400두 이상의 자가 사육하고 있는 자에게 자격을 주었다. 1973년 수출 지정업체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성풍산업, 삼호축산, 신일물산, 국제축산, 무영농원, 호남흥산, 풍국산업, 장편축산, 풍양산업, 우리기업, 한국냉장, 그 외에 외국인 합작 투자업체였다.
이상하게 1973년의 연간 업체별 수출실적과 1973년 초 수출 지정업체 명단을 비교해 보면 1973년 초 지정된 무영농원, 호남흥산, 풍국산업, 장편축산과 외국인 합작 투자업체의 1973년도 수출실적은 없다. 또 1973년초에 지정받지 못했던 상진실업, 한국발효, 광양식품은 미미하지만, 수출실적을 찾을 수 있었다.
1973년 일본의 식육 시장 동향은 식육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일본의 식육 수급 관계는 수요가 15% 늘었으나 돼지 생산은 5% 증가에 불과하고 소는 반대로 10%가 줄었다. 앞으로 사료값이 대폭 상승하고 있으므로 수급 불균형은 계속될 것으로 관측했다.
이와 같은 식육 부족 현상이 일어나자 일본정부는 추가수입할당으로 가격 상승을 억제하려고 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대일 돈육 수출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었다. 따라서 일본 내 가격도 우육 도매시세가 kg당 1,200~1,300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40%가 인상되었다. 돈육도 kg당 480~500원으로 사상 최고를 나타냈다. 그래서 1973년 3월 3일부터 3월 말까지 일본정부는 돈육수입 관세를 감면해 주었다. 이 조치로 돈육의 월간수입량은 보통 때의 2500톤에서 3600톤으로 늘어 일본 국내 시세가 kg당 360~440안에서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1973년 양돈업 일본 합작 투자업체
1973년 12월 기준으로 축산관계 합작투자 총건수는 모두 22건 있다. 그중 양돈업 분야는 9건이었다(표 1-24). 육돈 생산수출을 목적으로 한 합작투자회사에 대하여는 국내의 가격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량 합작외국인의 책임하에 전량 수출한다는 조건을 붙여서 인가하고 있었다. 합작투자가 국내 돼지고기 가격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고 있었다.
이들 9개소의 총 투자 금액은 2,696천달러 1973년 달러 환율 397.5원으로 환산하면 10억 7천백만원이었다. 1973년 비육돈의 농가 수취가격이 29,250원이었으니 36,000두 미만의 돼지가격밖에 안 되는 금액이었다. 1973년 연간 수출 금액이 3,794천달러인걸 감안하고, 1973년 당시 만두이상의 돼지를 키우던 이시돌 축산에는 생돈 820두 가격이 투자되었다면 합작투자금액은 수출 선급금 정도의 수준으로 봐야 한다. 또한, 자율 도입을 추진한 업체가 실제 도입이 되었는지를 확인되어야 할 문제다.
1973년 7월 10일 정부는 돼지고기 수출권을 농협중앙회에도 부여하였다. 그때까지는 수출권을 가지 못했던 수출권을 보여 받았는데 이는 1972년 서독재건 은행 차관으로 성동구 천호동에 최신 냉동시설 및 대규모 도축장 그리고 가공시설을 갖춘 축산공판장을 준공해서 1973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1973년 7월 11일 당시 대일돈육 수출요령에 따라 수출업체로 지정받은 업체는 연초의 11개소에서 17개소 늘었으면 이들 17개사의 수출 규격돈 보유 두수가 모두 123,223두였다. 이들 17개소는 자가 사육 22,499두, 계약 사육 100,724두였다.
1973년 80년대의 풍요한 생활을 내다보면서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일대 6개 마을에 450만평에 용인농림단지 조성되었다. 용인농림단지 조성 계획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게 된 곳은 축산단지였다. 1973년 4월부터 부분적인 종돈이 입식 된 양돈 단지는 포곡면 유운 마을 일대였다. 1차 계획 기간동안에 부지 10만평에 11억원을 들여 원종돈 1,300마리를 포함하여 원원종돈, 종돈, 비육돈 등 56,700마리의 돼지가 입식될 예정이었다. 규격돈 생산을 목적으로 한 이 양돈 단지가 본궤도에 오르면 지역 주민들과 계약 생산을 실시하게 되고 부대시설로 사료공장, 가공공장을 건설할 계획이었다. 1차 5개년 계획 기간이 끝나는 76년에 가서는 연간 400만달러의 돈육을 수출할 계획이었다.
용인자연농원 지금의 에버랜드의 시작에 양돈 농장이 있었다는 기사다. 아마도 1973년에 개발된 용인 양돈장이 국내 최초의 현대 기업양돈의 시발점으로 봐야 한다. 재벌기업 투자로 이루어진 최초의 대형 양돈장이었다. 이후 삼양식품그룹이 10억원의 자금을 투입 10,000두 종돈을 확보하고 이를 강원도 대관령(약 570만평)에 있는 삼양축산에서 사육기로 1973년 10월 계획하였다.
기업형 대단위 양돈장 삼성용인자연농원은 1990년대 폐쇄된 이후 관련 문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비교적 당시 상황을 자세히 보도한 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당시 삼성의 양돈업 진출과 관련한 내용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삼성 재벌은 1973년 80년대의 풍요한 생활을 전망하고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일대 6개 마을 450만평 규모의 용인 농림단지를 조성한다. 용인 농림단지 조성 계획 가운데 가장 각광을 받게 된 곳은 축산단지였다.
중앙일보는 삼성이 왜 양돈업에 진입하게 됐는지를 먼저 설명한다. 양돈 사업이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으며, 이웃 나라 중공(개혁 이전의 중국)은 인구 7억에 돼지 2억 마리나 기르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는 “적어도 1천만 마리는 사육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경우는 1억 인구에 2백 50만 마리밖에 없어 연간 14만t 350만 마리 분의 돈육을 외국서 수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150만 마리에 지나지 않는 실정은 삼성과 같은 재벌이 양돈업에 진입한 명분으로 설명한다.
특히 삼성이 주목한 부분은 종돈의 낮은 생산성을 문제 삼으며, 이 같은 종돈으로는 생산성 향상은 물론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기도 어렵다며 국내 양돈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경영기술의 도입과 함께 종돈 개량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삼성의 용인 양돈장은 바로 이 같은 시대적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두당 최고 60만원씩을 들여 세계적인 원종돈을 도입했고, 이를 토대로 개량종돈의 생산, 보급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1970년대 재래종은 규격돈 도달일수가 무려 210일이나 걸리고 사료를 더 많이 먹여야 하는데도 증체량은 개량종에 비해 하루 평균 110g이나 낮고, 산자수도 3마리나 적다고 지적했다. 평균 배지방 두께가 4·5㎝로 비계가 너무 많아 지육율은 65%, 정육율은 50%밖에 안 되는 것도 재래종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비해 자연농원 양돈장에서 개량된 종돈은 재래종의 이 같은 단점을 모두 보완했기 때문에 그 수익성이 재래종에 비해 30%이상이나 월등히 높다며, 삼성의 개량종을 사육하면 우리 양돈 농가들도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돈사업장은 이 같은 우량품종의 대규모 공급을 위해 총23만 평의 양돈장에 돈사 37채(56 28평)를 지어 놓았다. 올해 안에 64채(7700평)를 더 지을 예정임도 밝힌다.
수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1차 양돈사업계획이 완결되는 77년에는 연간 5만 마리의 규격돈을 생산,「커트·미트」로 수출할 계획이다. 이것은 일반농가에 분양된 비육계돈과 함께 1백억「달러」 수출달성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는 삼성 측은 예측했다. 그리고 앞으로 77년까지 국내에선 처음인 100마리의 무균 원원종돈(SPF) 4종을 추가 도입, 세계적인 양돈 시범장으로 발전시킬 계획도 밝혔다.
삼성의 원대한 수출 꿈은 안타깝게도 1978년 수출 중단 조치 이후 대일 돈육 수출이 사실상 막히면서 1983년까지 실현되지 못한다. 1984년 제일제당이 포장육을 시범 수출하면서 그토록 공헌했던 돈육 수출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