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돈육 수출의 역사 22

1976년 돈육 수출

1976년 1월 22일 정부는 구정 물가 안정으로 다시 돈육 수출을 월 500톤에서 300톤 수준으로 감축 조정하였다. 1976년은 농협중앙회에서 대일 돈육 수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기 시작한다. 일본과 장기계약 협상을 추진하고 1976년부터 1980년까지 5년 동안 18억 4천 4백원을 들여 37개소의 대단위 돈육 단지를 조성 연간 11만두(돈육 3,600톤씩) 생산, 수출할 계획을 세웠다. 농협은 양돈장 시설에 8억원, 종돈 생산에 5억4천5백만원, 사료구입지원에 5억3천9백만원을 각각 지원할 계획을 세우고 1976년 5억 9천 8백만원을 들여 17개 단지를 조성 2만5천두의 돼지를 생산 수출할 계획을 세웠다.

1976년에는 쇠고기 파동이 일어났다. 정부는 쇠고기 파동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1주일에 하루 무육일로 제정할 것을 할 것을 검토하게 된다. 이는 쇠고기 파동의 가장 큰 원인을 수요의 급격한 증가에 있다고 보았다. 쇠고기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이 이를 따르지 못하는 데다 산지의 소값 오름과 생우 품귀로 쇠고기 파동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아 일주일에 하루 무육일로 제정 쇠고기 소비 절약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1975년 1연간 소비된 쇠고기는 약 470,239두(70,535톤)로 국민 1인당 평균 2.03kg을 소비 지난 70년보다 88%가 늘어났다.

이와 같은 소비량의 증가는 당시 수년 동안 생우값의 하락으로 소비량이 많이 늘어난 데다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른 자연 소비 수요증가가 원인이었다. 쇠고기 파동의 여파로 돼지고기 수요가 급증 돼지고기 파동도 우려될 것을 대비 돈육 수출을 전면 중단하고 소비 절약 운동을 추진하는 한편 대단위 돈육 단지 조성사업을 적극 뒷받침했다. 1976년 3월 19일 당시 농협 직매장에서 돼지고기는 600g 당 800원 일반 정육점에서는 850원 농협직매장에서 쇠고기는 600g 한 근에 1,200원에 판매하였다.

1976년 6월 국내 돼지고기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보유 두수가 늘어나게 되자 양돈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돼지고기 수출제한을 해제한다. 1976년 연초 사육두수 1,200,000두에서 5월 15일에는 1,500,000두 가격은 80kg 기준 한 마리에 51,000원으로 년 초보다 2,000원 떨어지고 있었다. 지난 2월부터 월 300톤으로 제한했던 대일 수출량을 6월부터 500톤으로 늘렸다.

1976년 6월 농수산부는 돈육 수출업체 지정요령을 개정 현행 도별 TO제를 철폐하고 돈육 수출을 전면 개방키로 했다. 지금까지 각도별 TO제로 민간업체 22개, 농협 1개에 따라 23개 업체만이 수출을 해 왔는데 6월 3일부터 TO제를 없애는 대신 자가 사육두수 5,000두 이상이면 수출을 허가해 주기로 했다.

1976년 가을 대만이 톤당 2,600달러로 국내산보다 3~4백달러 나 싼 덤핑이라 수출에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1976년 일본의 재고 증가와 수요감퇴 현상이 겹쳐 수출이 거의 중단상태에 있고 일본 측이 11월부터 10%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데다 사료값은 계속 오름세를 보여 양돈산업은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돈육비축

1976년 수출 계획은 7,000톤이었는데 10월까지 4,355톤밖에 수출을 하지 못한 부진한 실적을 보였고 생돈 가격은 kg당 700원에서 500원으로 폭락했으며 추후 더 하락할 전망이었다. 농수산부는 이에 돼지고기 과잉 공급에 따른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우선 100톤을 수매 비축도록 12억원의 비축 자금을 확보했다. 또한, 돈육 수비 촉진을 위해 600g당 850원으로 되어있는 정부 고시 가격을 800원으로 내릴 것을 검토하였다. 농림수산부는 11월부터 77년 2월까지 4개월 동안 농협을 비롯한 27개 돈육 수출업체가 매월 300톤씩 모두 1,200톤을 비축토록하였다. 수출실적은 9월 말 목표의 50%인 3,500톤에 그친데다가 일본의 비수요기인 76년 10월~77년 3월을 맞아 대일 수출이 더욱 줄어들 전망이라 생돈 가격은 지난 3개월간 80kg 한 마리에 52,000원에서 46,000원으로 떨어졌다.



쇠고기값 상승 돈육 보합

1976년 12월 30일 매일 경제에 1976년 한 해 동안 쇠고기 값은 600g 한 근에 1,500원~1,600원으로 1975년 말 1,000원~1,100원이 비해 45%~ 50% 인상되었고 반면 돼지고기 가격은 600g 한 근에 800원으로 보합세를 보인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그림 1-11). 1976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한우 쇠고기 가격은 급격히 올라가고 돼지고기 가격은 서서히 인상되어 돼지고기의 수요가 월등히 많아지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쇠고기보다 더 먹고 더 좋아하는 건 한우고기의 가격보다 돼지고기의 가격이 싸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1976년이었다. 또한, 이 시기에 전업농들이 생산한 품질 좋은 돼지들이 출하되어 돼지고기의 품질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이후 삼겹살집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한 건 그동안 로스구이는 한우고기로 먹었지만, 한우고기 값이 인상되었다. 삼겹살이 한우고기 대신 로스구이로 등장하게 되었다. 또 이 시기에서 전업농·기업 양돈장에서 거세와 배합사료 급여를 시행하여 냄새 없는 돼지고기가 많이 공급되었다. 돼지고기 자체의 품질 향상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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