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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돼지고기 시대의 개막 1990년대


브랜드 돼지고기 시대의 개막 1990년대




1987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GATT의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 


(MultinationalTradeNegotiations) 우루과이 라운드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개방에 대비한 축산업의 현대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양돈산업은 1985년 재개된 대일 수출의 호조와 대형 마트등 유통 현대화로 최고의 호황을 누리게 된다. 


1990년 사육두수는 4,528천두에서 1999년 7,863천두로 증가하고 반면 농가수는 133천호에서 24천호로 극감하면서 호당 사육두수은 345두로 급증한다. 


수출 규격돈 개념이 확실히 정립되면서 정말 돼지가 좋아졌다. 후기사료 급여율도 높았다. 아마 1990년대 후반의 돼지고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 있는 돼지고기였는지도 모른다. 


대일 돼지고기 수출은 단순한 냉동육 수출에서 이제부터는 가격이 좋은 냉장 등심, 안심을 주로 수출하게 되었다. 당시 등심과 안심은 일본으로 수출하는 단가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단가보다 높았다. 반면 1990년대는 이미 삼겹살 구이 문화가 정착되어 삼겹살, 목심, 갈비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단가가 일본 수출 단가보다 높았다. 육가공업체입장에서는 복합유기 생산체인 돼지 한 마리를 가공해서 가격이 높은 쪽으로 판매하면 되니 호시절이였다. 


단기간 많은 냉장육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규모화된 대형 육가공 시설이 필요로 했고 LPC (LIVESTOCK PACKING CENTER) 축산물 종합처리장이 건설되었다.


맛칼럼니스트들은 삼겹살이 수출하고 잔여육 개념으로 1970년대에 싸게 유통되었기 때문에 삼겹살로스구이가 유행하였다고 주장하는데 1990년대는 맛칼럼니스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쩌면 삼겹살이 수출 잔여육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예약된 수출 물량을 작업하기 위해서 정해진 돼지를 가공하면 삼겹살, 목심등 국내 유통 물량이 등심, 안심등 수출 물량보다 더 많이 생산되고 이들 삼겹살, 목심등을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고민하다. 찾아낸 것이 브랜드 돼지고기다. 


우리나라의 브랜드 돼지고기의 시작은 퓨리나 사료의 린포크다. 아니 하이포크다. 선진포크다. 각자 주장을 한다. 1992~3년경 이들 브랜드 돈육들이 시장에 출시된다.








 


미원 농장의 하이포크는 [얼리지 않은 고급 돼지고기 하이포크] 도드람 포크는 잡냄새가 없는 돼지고기 도드람 포크라고 브랜드 슬로건을 삼았다.


 








 


 


 








 


삼겹살 제1차 대전이 시작되었다.


기존 유통업체는 정육점은 아직도 지육을 도매시장에서 구매해서 직접 작업하고 살얼려서 판매하던 시절이였다. 아마 정육점에 냉장 냉동고가 별도로 없이 영하10도 내외의 성능이 부실한 냉동고만 있던 시절이였다. 삼겹살을 달라고 손님이 주문을 하면 등심과 삼겹살이 붙은 부위를 썰어 주었다. 목심은 따로 없고 목전지가 불고기나 제육볶음용으로 판매되던 시절, 아직도 거세하지 않은 숫퇘지가 유통되던 시절 이들 시장에 브랜드 돼지고기는 얼리지 않은 돼지고기, 냄새없는 돼지고기, 정스펙 (삼겹살은 삼겹살, 목살은 목살)으로 판매하는 박스미트를 유통시켰다.


삼겹살 제 1차 대전은 신흥 대형 유통업체 이마트, 카르푸, 마그넷들이 브랜드 돼지고기 편에 서면서 막을 내린다. 브랜드 돼지고기 업체들은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대형 유통업체들과 삼겹살 제2차 대전을 치루게 된다. 


브랜드 돼지고기를 만들면 냉장육 유통이 가능하고 그럼 시장에서의 판매가격을 20~30% 높게 설정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신유통이라는 대형마트들끼리의 경쟁에서 미끼 상품으로 삼겹살이 최적이였다. 원가이하로 삼겹살 납품을 강요당했다. 냉장 수출을 하니 계속 냉장 삼겹살은 생산되는데 이게 수출 물량으로 수급을 조정하니 얼리는 것 보다는 대형마트에 미끼 상품으로 납품할 수 밖에 없었다.


대형마트들은 브랜드 돼지고기의 인지도가 높아져 사람들의 브랜드 충성도가 생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 매장에서 브랜드 노출을 자제하고 오직 가격할인 상품으로 브랜드 냉장 삼겹살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마트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냉장 삼겹살은 주부들의 인기 아이템이 되었다. 1990년대 집에서 돼지고기를 거침없이 먹는 시대가 되었다. 


1997년 IMF는 대기업도 한우 회식을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삼겹살 식당들은 최고의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냄새도 없고 부드럽고 가격도 저렴하고 독한 소주와 페어링도 좋은 삼겹살은 IMF 이후 우리나라 외식의 대표메뉴가 되어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롯데 후레쉬포크의 한판붙자 쇠고기!


이 광고가 그 시절 돼지고기의 당당한 위상을 말해 주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으면서도 고기하면 소고기다. 돼지고기를 좀 폄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조선시대 양반들의 배청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청나라가 싫었던 조선 시대 양반들은 청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 영향으로 돼지고기에 대한 안 좋은 소리들이 많았다. 여름철에는 ‘잘먹어야 본전’이라고 돼지고기 소비도 줄었는데 1990년대에 들어 4월에서 8월의 돼지고기 소비가 급등하고 가격도 좋아졌다. 이런 패턴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양돈산업과 식육 산업의 현대화의 시작점이 1990년대에 틀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소비 패턴 역시 1990년대부터 삼겹살 로스구이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25도 23도 소주의 도수가 고도수였다. 


1990년대는 베이비붐 세대가 청년층이라 우리나라는 젊은 나라였다. 


사회적 여러 여건이 돼지고기 소비 전성시대의 개막이 1990년대였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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