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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의 시작


○ 일본 와규는 2022년 42개국에 7,454톤 513억엔 (약 5천억원) 수출 실적을 올렸다.


○ 유라시아대륙 서쪽 끝 이베리코 반도에서 세계 4대 진미인 이베리코 돼지 하몽이 있다. 


유라시아대륙 동쪽 끝 일본 열도에는 세계 4대 진미 와규가 있다.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 한반도에서 지난 4천년간 고립되어 사육되어 온 한우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때다. 








한우의 시작 




개를 제외하고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주요 가축의 대부분은 신석기 시대에 농경 문화의 발생과 거의 같은 시기에 야생 동물로부터 가축화(domedticate)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소의 조상은 야생 오룩스다. 오록스의 크기는 높이1.8미터 무게는 1톤이 넘었다. 이런 대형 동물을 가축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룩스를 가축화한 것은 단순히 고기만을 얻기 위한 목적이라기 보다는 종교적인 목적이 더 컸다. 희생(犧牲)이라는 한자를 보면 소(牛)자가 보인다. 


인류학자 Eduard Hahn는 풍요의 상징인 달이란 상징물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했던 사람들이 소의 뿔이 뚜렷하게 구부러진 모양의 초승달을 연상시켜 제사의 희생으로 소를 가축화 시켰다고 보았다. 








기원전 4000년경부터 이동수단으로 소가 이용되고 다음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아마 이 시기쯤 한반도에서도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때의 소가 지금까지 한반도에 토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가축은 농가에서 경제적 행위로 사육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가치가 상실된 토종 가축들은 대부분 멸종 위험에 쳐해 있다.


우리 한우는 예외에 속한다. 아니 350만두로 사육두수가 단군이라 최대치로 늘어나고 있다. 그건 현대 사회에서도 한우를 사육할 경제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거다. 


일본이 자랑하는 와규는 일본의 토종소가 아니다.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 토종소에 한우와 유럽계 수입 소를 교배한 후 선발과 근친교배로 성립된 근대 품종으로 흑모와종, 갈모와종등 4품종이 있다. 갈모와종에 한우의 피가 들어가 있다. 흑모와종을 제주 흑우를 통해 개량했다는 좀 억측이다. 




세계의 소 품종은 유럽계, 인도계 및 양자의 잡종계로 크게 3가지 구분을 하고 있다.


일본, 한국, 화북(北)을 유럽계, 대만, 인도차이나반도, 화남을 잡종계의 분포지역으로 양자의 경계는 양자강 유역으로 보고 있다. 유럽계 소 품종을 대표하는 홀스타인 종에서 채혈을 실시하여 혈액형과 혈정 단백질 및 헤모글로빈의 유전적 변이를 분석한 결과 일본과 한국의 토종 소가 인도계나 잡종계의 유전적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륙 중앙부에서 몽고, 화북, 한반도를 거쳐 전파된 유럽계 소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과거 한우의 도입 경로는 ① 슈테그만(Stegmann,P.)의 설 ② 오크리치의 설③ 켈레르(Keller,C.)의 설이 있었다. 이는 골학적인 가설이다. 


 




일본의 토종소의 도래, 와규의 조사은 분명 한반도 한우의 후예다. 




우리 역사 속에 한우란 단어는 없다. 


축우, 역우, 농우, 우(牛), 부림소, 이출우 (일제 강점기 일본이 수탈해 간 소를 일컬음). 조선우라고 불렸다. 


한우 협회등 공식적으로 한우를 언제부터 한우라고 불렸는지 정확히 정리한 곳이 없다. 




한우는 해방이후 공식적으로 정부 문서나 신문에 나오는 1958년 사이 어디쯤에 한국소, 한우라고 불렸을 거라고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찾아서 기축년 소띠해인 1949년 1월 7일 조선일보의 한 칼럼에서 한우(韓牛)라는 단어를 찾았다.


“ 건설의 대동맥 전신편 


전신은 조국의 신경(하)


 


원컨대 소처럼 근면하고 묵묵한 전신전화기술진 제공이여 기축새봄의 한우(韓牛)는 그들의 친구이니 가일층 그 청렴한 예술가적 양심과 애국적 열성으로 앞날을 비약 하라 ”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 가장 오래된 한우는 1954년 가축보호법시행령 (대통령령제 890호)에 나온다. 














 


 


 








 


 


 


 


1958년부터는 신문에 한우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1958년이 전쟁이후 외국의 육우들이 도입되어 한우를 개량하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되는 시점이였으니 한국소와 외국소를 구분하기 위해서 분명 한우라는 말이 사용되었다고 봐야 한다. 


조선의 소를 조선우라고 일본인들이 불렸다. 


그럼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1910) 시절에 소는 어떤 이름으로 불렸을까?


당시 대한제국소는 러시아, 중국, 일본들에 많이 수출 되는 수출품목이였으나 이즈음에 대한제국소를 줄여서 한우라고 호칭하지 않았을까?




1909년 10월 4일 대한매일신본 2명에 ‘한우실패(韓牛失敗)라는 제목 아래 한일 양 정부가 한우생우수출제한을 설명한 후 한우 수요가 감소하여 한우가격이 급력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다.


1902년 7월 26일자 황성 신문 2면에 있는 ’아인한우수출 (俄人韓牛輸出) 이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다. 이는 원산항에서 러시아에 한우를 수출하는 내용의 기사다. 


위의 두 기사로 한우는 한우소 이전에 대한제국 소부터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인 한우 수출


원산항에서 전함 아인(러시아인)의 경영으로 매월에 소 340~350두를 수출하는데 산지는 고원, 함흥 등 군이다. 최근 3년간에 수출한 소가 약 일만여 두니 가격이 한 마리에 평균 37~38원인데, 이로 말미암아 수의사급 통역을 거느리고 항구에 머무르는 러시아인이 3명이라고 한다.” 


 


한우라는 이름의 시작이 대한제국시절에 소의 수출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한우는 전세계에서 사육되고 있는 10억 마리의 소중 고유한 유전자원을 그대로 유지하는 토종으로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한 거의 유일한 품종의 소다. 


저출산 고령화 실질 소득의 감소로 한우 소비가 위축되는 현 시점에서 한우수출을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역사적인 수출 품목이였던 한우가 큰 위로와 힘이 되어 줄거라 믿는다. 


 


*오래된 대한제국시대 신문에서 한우(韓牛)를 찾아 주신 대통테크 최창원 이사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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