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고래 Jan 18. 2024

내향인의 춤바람

명상인 줄 알았을 뿐!

  달빛 명상 춤을 추러 갔다. 몇몇 인친의 인스타그램에서 보람달이 뜨는 밤 제주 바다 백사장 모래 위에서 또는 오름에 올라 춤을 추는 걸 보고 꼭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따로 모집 글은 보지 못해서 어떻게 참여해야 하나 궁금해하던 차에, 마침 그 달빛 명상 춤을 기획한 협동조합 이사장님이 내 블로그 수업을 들으러 왔다. 


이런 게 바로 원하는 게 결국은 이루어지는 동시성일 것이다. 나는 달빛 명상 춤에 꼭 함께해보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고, 이번 달 모집 안내를 받고 신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겨울 동안은 날씨가 추워서 실내에서 진행한다고 한다. 아쉬웠지만 일단 경험해보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명상도 춤도 처음인 나지만, 왠지 내가 아는 인친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별 부담 없이 그냥 신청했다. 동네에 살고 계시는 이사장님의 픽업 대우까지 받았다. 가는 차 안에서 놀라지 마라며 하시는 말씀이 오늘 참여자가 나 혼자라고 하신다. 게다가 당연히 이름만 보고 여자라고 생각했던 춤 선생님은 남자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극 내향성인 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인스타에 낚였을까 후회를 해도 이미 늦었다. 도망가지 못할 바에야 그냥 즐기는 편을 택해야 한다.


  내 생각과는 정반대인 건장하신 춤 선생님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눴다. 별다른 티를 내지 않기에 선생님은 내가 어색해하는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춤추러 가는 차 안에서 "저는 춤은 잘 모르지만, 명상은 좋아해요"라고 이야기했더니, 이사장님이 춤 선생님께 그대로 전해주셨다.     






  "아, 명상은 해보셨나 봐요?"


  선생님이 반가운 톤으로 물으셨다.     


  "명상을 해보진 않았지만, 제가 내향인 이라 몸을 움직이는 건 잘 못 하고 싫어하지만, 명상은 가만히 있으면 되니깐 좋을 것 같아요"라고 소심하게 말했다.     


  몸치 박치인 나는 춤을 춰보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냥 조용히 가만히 있는 활동들을 좋아한다. 어쩌다 나는 춤을 추러 왔을까. 내가 춤추러 올 용기를 낸 건 아마 '명상 춤' 이었기 때문일 거다. 그냥 춤이 아니라 '명상'이 들어 있어서. 하지만 명상은 잠깐이고 춤이 주였다. 


  5분 정도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가벼운 몸풀기로 춤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늘 스텝을 밟을 사람은 선생님과 이사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단 세 명이다. 다행히 현란한 스텝을 밟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화려한 동작도 없었다. 그저 음악이 흘러나오는 대로 몸을 흐느적거리면 되었다.





  첫 번째 춤은 가볍게 무릎을 흔들며 온몸에 뼈를 다 흔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털어내고 싶은 것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그것을 다 털고 가라고. 뭘 털어야 할까 고민하다 '많은 것을 다 해내려는' 내 마음을 털기로 했다. 요즘 머릿속이 늘 복잡하고 무겁다. 해야 할 일들이 이것저것 섞이고 엉켜서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하나씩 한다고 하고 있는데도 해도 해도 계속할 게 있는 끝이 없는 중압감에 짓눌린 상태였다. 나는 주로 머리를 흔들었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털어내고 가벼워지고 싶었다. 


  두 번째 춤은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이다. 한 명은 여행자가 되어 눈을 감고 가고 싶은 데로 간다. 다른 한 명은 보호자가 되어 파트너의 양손을 잡고 위험하지 않게 인도해준다. 대신 감고 있는 여행자의 눈을 계속 응시해야 한다. 파트너의 손을 잡고 눈을 감은 채로 이곳저곳 발길이 닿는 대로 천천히 거닐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위험한 곳까지 가보고 싶어졌다. 보호를 받는다는 게 이렇게 따뜻한 느낌이구나 싶었다. 여행하면서 머릿속으로 진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언제든 내 꿈을 하나로 말하라면 여행하는 삶이라고 까지 말할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다는 게 새삼 떠올랐다. 먹고 살아야 하고, 해야 할 일들에 순응해서 살면서 늘 뒷전으로 미루고 있었다. 여행은 나이가 들어서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꼭 오랜 기간, 멀리 가지 않아도 가벼운 여행 정도는 지금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올해 혼자만의 여행을 꼭!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 춤은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이었다. 둘 다 눈을 감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각자 춤을 춘다. 단, 서로 몸이 어디가 닿든 계속 닿아있어야 한다. 이번 달빛 명상 춤이 27번째인 만큼 이사장님은 능숙하셨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어색해하는 나를 이끌어주었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많은 모임에서 리더를 맡아왔기에 책임감이 있었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믿고 그저 나를 내맡기기만 하는 편안함이 있었다.  


  네 번째 춤은 눈을 감고 가볍게 걸으며 나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1살부터 2살, 3살, 4살 쭉 한 살씩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어린 시절의 나부터 지금까지의 내가 쭉 스쳐 지나갔다. 선생님은 지금의 내 나이까지 돌아보라 하셨는데, 나는 내 나이인 마흔한 살을 지나 미래까지 보게 되었다. 쉰일곱 살이 되었을 즈음, 눈을 뜨라고 하셨다. 그리고 소감을 발표했다.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며 현재의 내 나이까지 왔을 때 나는 지금까지 잘 살아온 내가 기특했다고,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면서는 기대된다고 말했다.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불쌍해서 울었을 텐데, 이제는 기특해서 흐르는 눈물이었다. 내가 잘살고 있다는 건 순전히 내 기준이지만, 나는 지금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오늘을 열심히 살기에 내일도 기대할 수 있다. 자만이 아닌 자존감이 좀 높아진 거라고 해두자. 


  마지막 춤은 신나는 음악에 맞춰 각자 마음대로 춤을 추는 시간이었다. 나는 가볍고 신나게 춤을 추었다. 특히 머리를 많이 흔들었다. 무거운 돌덩이들을 마지막으로 털어내고 싶었다. 나는 춤을 추기 전보다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나는 춤을 잘 못 추지만, 출수는 있었다. 내 마음대로 추면 되는 춤이라 좋았다. 쓰는 대로 사는 사람이라며 글을 잘 못 쓴다는 사람들한테 '잘'을 빼고 그냥 쓰라고 이야기 해왔다. 춤도 '잘'을 빼면 그냥 추면 되었다. 우리는 왜 항상 모든 일에 '잘'을 붙이는 걸까. 잘하지 않아도 그냥 하면 되는데 말이다. 달빛 명상 춤을 추면서 나는 나를 찾아가는 방법이 글쓰기 외에 다양하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기 위해선 꼭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것과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그것, '여행'을 미루지 말고 내 삶에 들여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너무 많은 '해야 할 일'을 줄여야겠다는 것도. 

매거진의 이전글 내향인의 이중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