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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고래 Jan 25. 2024

오르막길과 비상

제주살이가 녹록지만은 않다.

제주이주 5년 차, 내 나이는 서른여섯. 살아오면서 우울하다는 감정을 꽤 깊게 꽤 오래 앓았던 시간이다. 그때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내가 왜 여기 제주까지 와서 이러고 사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누군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등등. 많은 질문들을 내게 쏟아냈지만, 부정적인 답변만을 내놓던 시절이었다.


내가 힘들어서일까? 그때는 남편도 함께 예민해져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정인의 오르막길이란 노래를 들으며 울고, 남편은 임재범의 비상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 오르막길, 정인 -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끝없는 오르막길인 것만 같았다.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그런 오르막 길. 도대체 나는 어디까지 올라야만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나는 왜 늘 오르기만 하는 걸까. 내 삶이, 그리고 나와 함께 오르고 있는 남편이 그저 안쓰럽기만 느껴졌다.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 싶어.

- 비상, 임재범 -


남편은 특히 이 부분을 강조하며 불렀다. 제주로 이주하고 제주 곳곳을 여행하며 사는 삶이 좋기도 하지만, 섬이라는 공간에 갇혀 육지 친구들이나 가족들과도 물리적 거리감보다 더한 심리적 거리감을 느끼며 고립된 생활에 답답함을 슬슬 느끼던 시기였던 것 같다.


다행히 나를 성장시키기로 마음먹고, 여러 활동들을 통해 나는 긴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남편 역시 다시 평정을 되찾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삶에서 가장 무식하게 축적기를 보낸 지난 5년의 시간과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살려낼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 오르막길, 정인 -


우린 제주에서 아직 고된 오르막길을 올라가고 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남편과 내가 함께 걷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길이 아니라 같은 길을 함께 오르고 있기에, 오르막 끝엔 분명히 정상이 있기에, 조금씩 변해가는 남편과 나를 믿고 우린 한 걸음씩 걸어보기로 한다. 평범하진 않기에 고되지만 우리가 선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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