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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고래 Feb 22. 2024

공부를 좋아하면 이상한가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어릴때부터 공부를 좋아했다. 책읽기도 좋아했는데, 책을 읽어서 몰랐던 세상을 경험해볼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동네에 조그마한 책 대여점이 하나 있었다. 7평 정도되는 좁은 공간에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자연스레 그곳은 내 놀이터가 되었다. 틈만나면 찾아가서 책 구경을 하고 빌려오곤 했다. 학교앞 서점도, 동네 공공 도서관도 모두 내 놀이터였다. 책이 있는 공간에만 가면 흥분하곤 했다. 장난감보다 악세사리보다 책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였다.


어린 나이 나를 갖게 되어 어쩔 수 없이 결혼하고 엄마가 된 울엄마. 한창 놀아야 할 나이에 놀지 못한 한이 남아 있었다.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거니와 책과 공부는 엄마에게는 전혀 관심밖의 일이었다. 자연스레 나에게도 공부를 시키지 않았다. 책을 읽어준 적도, 읽으라고 이야기를 해준 적도 없다.


알아서 공부했고,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노래, 춤, 악기 연주 등도 타고난 재능인 것 처럼, 공부도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엄마가 시켜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공부를 한다는 데 나는 그냥 혼자서 해왔으니까. 아무튼 이런 나를 엄마는 늘 '신기하다'고 했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를 '신기하게' 봤다. 공부를 좋아한다고 하면 더더욱. 그래서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만 알았다.


2019년 겨울 김미경 유튜브 대학에 가입을 했다. 공부를 좋아하는 참새에게 대놓고 공부할 수 있는 방앗간이 생겼다.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첫 제주지역 오프라인 모임에 간 날, 나는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분명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고, 나이도 성향도 다 달랐다. 게다가 생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모두 공부와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책 이야기 하나로 마음이 통했다. 그토록 애가타게 찾아헤맨 나의 이상형이었다. 힘들게 붙잡은 두 손 꼭 잡고 이 친구들 곁에 꼭 붙어 있어야겠다고 티는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다짐했다.




2021년 겨울, 그 중에서도 '잘' 팔리는 작가가 되겠다는 5명이 모였다. 부끄러운 듯 소심해보였지만 외유내강형이었다. 유해보이는 모습 안에 강한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 모였다. 리더인 온비는 잘 팔리는 작가가 되자고 했지만,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잘 팔리고 싶은 마음은 없어보였다. 팔리는 것 보다 공부하는 자체에 관심이 많다. 글쓰기로 나를 알아가는 '나'공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얻는 '인사이트'가 그저 좋을 뿐. 잘 팔릴려면 타인이 좋아할만한 글을 써야 하는데 남에게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글들을 써내기 바빴다. 타인에게 별 관심없고 자기애가 강한 모두 천상 인프피였다.


3년을 만나면서 제대로 밥 한 끼 먹어본 적이 없다. 만나면 글쓰기 책 이야기만 하고 쿨하게 헤어진다. 만남 외에 따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일도 없다. 아직 서로 존칭을 쓰고, 그 흔한 '언니~'라는 말도 잘 하지 않는다. 너무 가까워지는 건 또 경계하는 인프피다움이 묻어나온다. 글쓰기 프로젝트 모임을 지켜봐 온 남편도 한마디 한다. "너희들은 참 신기하다." 어릴 때 엄마와 동생에게 듣던 신기하다는 말을 남편에게 들었다. 만나면 친해지고 밥도 먹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가 다소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나름 잘살고 있다. 누군가는 취미가 낚시, 악기 연주, 등산인 것처럼 우리의 취미도 그저 공부일 뿐이다.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게 많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것 자체가 즐겁다. 그 수단이 공부이고, 책이고, 글쓰기일 뿐. 신기하고 이상하다고 나쁜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임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 되었다. 평범할 수 없어 주변에서 튄다는 시선을 받는 이가 있다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찾아보자. 그곳에서 마음껏 이상함을 나누며 평범해질 수 있다. 부디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나를 끼워맞추느라 애쓰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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