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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고래 Mar 08. 2024

여보, 나 나갔다 올게.

숨 쉬러 나간다.

"오늘은 뭐 해?"

"이번주 주말은 뭐 해?"


평일 오후나 저녁, 또는 토요일 새벽이나 오후에 '나' 혼자만의 일정이 있는 나에게 남편은 수시로 묻는다. 내 일정이라 함은 독서모임, 글쓰기 모임, 줌 강의, 성장 카페 모임, 산책 등이다. 가끔 개인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정도 포함이지만 정말 그건 가끔이다. 따로 만나서 수다를 떠는 시간을 자주 갖고 싶지만, 다른 일정들을 소화하려면 그런 만남은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 나는 엄마이고, 아내이니까.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가진다는 건 그만큼 가정에 소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하고 싶은 일들을 줄이고 줄여서 내 나름으론 최대한으로 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남편이 보기에는 항상 나가는 사람으로 느껴지나 보다. 


"이번주는 뭐 해?"

"토요일 새벽은 새별오름 일출보고, 오후에는 가시리 책방 갔다 올 거야."

"주말은 가족과 함께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응, 그래서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하잖아."

"주말이 금토일이지! 너는 뭘 그렇게 틈만 나면 나가려고 그러냐?"

"아니, 다른 엄마들처럼 평일 낮에 브런치 먹으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내 할 일 다 하고 그나마 평일 저녁이나 토요일에 시간 날 때 나가는 건데, 나도 좀 숨 좀 쉬자. 그래야 내가 살지."


남편에게 이야기하고야 알았다. 내가 구태여 자꾸만 일을 만들어서 혼자 시간의 가지려고 하는 것이,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것이, 책을 읽고 모임을 나가는 것이, 글을 쓰는 것들이 모두 내가 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직장일을 시작하고,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고작해야 아이 낳고 출산휴가 3개월씩 두 번 받았을 때, 퇴사하고 제주로 와서 가게를 새로 시작하기 전까지 2개월. 굳이 따져보자면 스무 살부터 마흔 인 내 인생 20년 동안 나는 딱 8개월 쉬었다. 당연히 주말에도 쉬고, 공휴일에도 쉬고, 연휴에도 쉬었다. 하지만 평일에 여유롭게 쉬어본 적 없는 나에게 쉼이란 '평일의 여유로움'이다. 남들 다 쉴 때 쉬는 것 말고, 일해야 할 때 일하지 않고 쉬는 것 말이다. 


내가 한창 직장일을 할 때 엄마와 동생은 집에서 살림을 하고 있었다.


"바쁘쟤? 나는 지금 00랑 아울렛 나와서 쇼핑하고 뷔페 갔다가 커피숍에 있다." 


한창 일하느라 바쁜 평일, 엄마와 동생은 함께 쇼핑을 다니고,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평일 점심 뷔페를 가고, 카페를 다니곤 했다. 그것도 우리 회사 근처에서. 엄마의 저런 전화를 받고 나면, 나는 왜 나에게 전화를 해서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끔 가족이 다 같이 평일 저녁 외식을 하고 술 한잔씩이라도 하는 다음 날엔, 나는 어김없이 숙취를 버텨내며 새벽에 일어나 출근을 하면 오전이 다 지나 정오쯤 되어 단톡방엔 '이제 일어났다. 하루종일 힘들어서 누워 있었다.'는 등의 엄마와 동생의 카톡이 내내 거슬렸다.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엔 평생 일하며 살 팔자와, 일하며 살지 않을 팔자가 있는데, 아무래도 나는 일할 팔자인가 보다라고. 그래서 내 꿈도 '평생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꿈인지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내가 불쌍할 때도 있다. 일하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 감정들이 나를 짓눌렀고, 숨이 막히기 직전, 나는 다시 숨을 쉬러 물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하고 있다.


평일 저녁 약속을 위해 가족들의 밥을 차리고 나가느라 미친 듯이 밥하고 나면 혼이 나간채로 모임에 나가고, 토요일에 약속이 있는 주면 가급적 평일은 얌전히 가족과 함께하려 노력해야만 한다. 누군가 만나자고 하는 말이 제일 반가우면서도 무섭다. 없는 시간을 또 쪼개야 하니까.


이제는, 남편의 눈치가 보여도, 가족에게 미안해도, 내 몸이 으스러져도, 하고픈 건 하고 볼 거다. 그래야 나도 숨 쉬며 살 수 있으니까. 그러니깐, 이번주 토요일도 다음 주 토요일도 나가야 하는 나를 이해해 주길 바라, 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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