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 영아가 제주로 혼자 여행을 왔다. 그녀와 2박 3일을 함께 보냈다. 종일 돌아다니고 저녁을 먹고 펜션에 들어갔다. 맥주 한 캔을 앞에 놓고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나누는 대화에 온몸에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무심코 마음속으로 품고 있던 고민을 꺼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글로도 차마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를 친구에게는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이라 말을 꺼내기가 쉬웠다. 이렇다 저렇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론만 꺼내도 웬만큼 알아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이야기들을 언젠가는 소설로 다 풀어낼 거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내 이야기인 듯 아닌 듯 소설로 쓰고 싶은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나한테 다 털어놓았잖아. 그걸로 해소가 안 돼? 꼭 글로 써야만 해?"
글을 쓰지 않는 친구는 말로 해도 될 이야기를 굳이 글로 쓴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아무리 말로 풀어낸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말로 구구절절 설명하긴 어렵지만 글로 쓸 수 있는 그 너머의 이야기가 더 있다.
말은 상대방이 어떤 표정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고스란히 눈에 들어온다. 상대의 반응 정도에 따라 신나서 말할 때도 있고, 입을 닫아버릴 때가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다분히 감정적인 MBTI 'F' 성향의 나라서 눈앞에 상대의 기분 따위 무시하고 내 말만 할 수가 없다.
자연스레 내가 대화하기 편한 사람하고만 만나고 싶다. 나와 통할 것 같은 사람들로 커뮤니티를 꾸려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문자 'I' 성향인 나는, 나의 경계가 강하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하는 것 같지만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에서만 그렇다. 사회성 버튼이 필요할 때도 마찬가지. 사람을 좋아하지만 만나고 돌아오면 온 에너지가 방전된다.
글은 나 혼자 내 생각을 정리하며 쓸 수 있어서 나에겐 딱 맞다. 충분히 생각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아니다 싶으면 지우면 그만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맘껏 쏟아 놓고 글을 올린다. 읽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좋아요’나 댓글로 남겨지는 정도의 반응이 딱 좋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란 사람이라서, 노트북 앞에 앉아서 조용히 내 할 말만 할 수 있는 글이 편하다. 지금 이 짧은 글을 쓰는 데도 몇십번 멈췄다가 지웠다가 반복했다. 말도 내뱉고 나서 다시 지울 수 있다면 조금은 편해질까?
6.25 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소설가 박완서. 그녀는 전쟁 중 피난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될 거라고 예감했다고 한다. 그녀 정도의 엄청난 무게는 아니라도,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글로 쓰고 가벼워질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