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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Sep 23. 2017

릭샤가 친절에 퐁당 빠진 날

뭐 이런 날이 있지?


역시 이틀간의 강행군은 내게 무리였다. 셋째 날, 나는 완전히 뻗었다. 어제 먹은 거라곤 빵 하나.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 내리 잤다. 지금 내 다리는 온통 피멍 투성이. 넘어지고 쓰러지고 다친 데 또 다치고. 내가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고 자전거가 나를 끌고 다니는 형국이다. 차에 부딪칠뻔한 적도 있고 자전거와 함께 슬라이딩을 하고 넘어진 횟수는 세는 게 무의미하다. 인도의 도로는 사람, 개, 소,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가 엉켜있다. 특히 개는 갑자기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니 도로에서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어마 무시한 인도의 더위에도 '영광의 상처' 때문에 반바지를 못 입고 있다. 상처 가림용이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수없이 넘어질 걸 생각하면 당분간 긴소매와 긴 바지를 입을 수밖에 없다. 오늘은 심지어 걷다가도 미끄러져서 넘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묘한 희열이 있었다. 도루에 성공한 야구 선수처럼.


인도의 경적 소리

인도에서는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의 경적 소리는 '왜 이렇게 천천히 가냐, 빨리 가라', '왜 내 앞길을 막냐, 빨리 비켜라', 신호 바뀌었는데 왜 안 가냐, 빨리 가라'의 의미다. 하지만 인도는 아니다. 내가 네 주변에 있으니 조심하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좋은 의도이긴 하지만 경적 소리를 들으면 여전히 긴장되고 위협감이 들 때가 많다.


오후 약속 때문에 겨우 몸을 추스르고 동네로 나갔다. 우선 뭘 좀 먹어야 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 비위까지 약한 나는 메뉴 선택에도 신중을 기했다. 예전 벵갈루루 있을 때 볶음밥과 볶음면은 입맛에 맞았기에 볶음밥을 시키고 설탕을 많이 넣은 레모네이드와 커피를 시켰다. 단것이 필요했다. 양이 많아서 남기긴 했지만 얼마나 든든하던지.

내가 묵고 있는 곳은 오로빌 공동체에서 4-5km 떨어져 있다. 이틀간 자전거에 끌려다닌 나는 오늘 하루 오토 릭샤를 타기로 했다. 이 체력으로 자전거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쉽게 잡힐 줄 알았던 릭샤는 보이는 것마다 모두 사람이 타고 있어서 계속 흘려보내야 했다. 혹시 더 쉽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으러 근처 식당 쪽으로 갔는데 점원이 오로빌까지 태워주겠노라 했다. 아니면 그쪽으로 가는 오토바이에 나를 태워달라고 부탁해주겠다고도 했다. '일면식도 없는 남정네 오토바이를 내가 탄다고? 그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믿고?' 하지만 얘기를 나누다 보니 허튼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무사히 안전히 목적지까지 데려다준 그는 고마움을 표시하려 하자 한사코 거절했다. 식당에 찾아오라는 호객용 친절일 수도 있겠지만 무사히 편하게 도착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흙투성이 운동화. 얼마나 더 까매질까.
인도 여행 시, 여성들은 특히 조심에 조심을 더해야 한다. 동네 식당 점원이라는, 그나마 뜨내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나도 모험을 걸긴 했지만 만약 동네가 아닌 지나가는 길에서 그런 제안을 받았다면 단연코 거절했을 것이다. 그리고 꼭 알아둘 것은, 오토바이를 타게 되면 떨어질까 무서워 껴안거나 옷을 잡게 될 텐데 특히 남성한테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이니 절대 하지 말고 뒷좌석에 앉은 후 뒤쪽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돌아다니지 않기.  


오늘 약속은 그제 오로빌 방문자 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몇 마디밖에 안 나눴지만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게 느껴졌고 오늘 그분과 인터뷰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자전거가 없으니, 인터뷰를 마치고 방문자센터에 가서 릭샤를 타고 집에 갈 요량이었다. 센터까지는 걸을만한 거리인지라 가뿐하게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길치이자 지도 문맹이라는 깨달음에 지나가는 자전거를 붙잡고 방향을 물었다. 역시,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그나마 빨리 물어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방향을 틀어 다시 걸었다.

"안녕하세요?"

"앗, 한국 분이세요?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챈 분이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 왔다. 그분은 내가 방금 만나고 온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또 처음 본 사람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한국인이고 여성인데 마다할 이유가 있는가. 더구나 내가 아는 분을 그분도 아는데.

집에 초대까지 받았다. 가족들과 인사를 하고 남편분이 끓여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수박, 샌드위치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먹었다. 그리고 나는 집까지 또 무임승차를 했다.

이분은 90년대부터 오로빌을 체험했고 그 후로 계속 '오로 빌리언'으로 살고 있다. 단 몇 줄로 표현이 안 되는 다채로운 이력과 경험의 소유자.


'오로빌리언'

오로빌 커뮤니티의 정식 멤버로, 거주 기간과 주민들의 동의 절차 등 일정 조건을 갖추어야만 오로빌리언이라는 명칭을 얻는다.


내가 오로빌을 찾은 이유도 이런 분들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한국에서 정규 교육을 마치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집을 사는 정형화된 삶 말고 그리고 그런 과정을 정답으로 강요하는 사회 말고 다양한 인생 모습을 포용할 수 있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나도 사회 통념대로 살 수 있다면, 살 수 있었다면 그리 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리 살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건  내 팔자가 아니었던 거다. 그러니  Amor Fati(아모르 파티, 운명애) 하는 수밖에.

사춘기를 조용히 넘긴 나는, 진짜 내 모습으로 살기 위한 '사십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다.


* 앞으로 오로빌 준비 과정, 적응기, 생활, 오로빌에서 만난 사람들, 오로빌의 민낯을 써 내려가겠다.



팟캐스트 <우왕좌왕 싱글 라이프> 11-1. 게스트와 함께 오로빌로 우왕좌왕 

http://www.podbbang.com/ch/14588?e=22507171

팟캐스트 <우왕좌왕 싱글 라이프> 11-2. 게스트와 함께 오로빌로 우왕좌왕

http://www.podbbang.com/ch/14588?e=2250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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