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작업 이야기

당당해서 아름다운 배우

by 상진



날이 포근했던 6월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산에 있는 한 문화센터로 강의를 나갔다.

드로잉이라는 주제로 사람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강의하는 일을 한 지 4년이 되었는데도 항상 첫 수업만큼은 늘 긴장과 흥분이 된다. 매번 첫 수업에는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하는 기대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 날도 여름학기가 시작되는 첫 수업이라 다른 날보다는 특히 더 신경이 쓰여서 이것저것 강의자료들을 준비 해일 찍 출발을 했는데,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서야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이 없어진 걸 알아챘다.


' 어?

가방이 어디 갔지?

아....'


손에 든 가방을 벤치에 두고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에 급히 탔던 모습이 머리를 스쳤다.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이 모두 들어있던 가방이라 노심초사하며 왔던 길로 돌아갔는데, 다행히 역무실에서 보관하고 있어서 되찾을 수 있었다. 해프닝을 겪는 사이 강의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나는 허겁지겁 문화센터로 향했다.

급하게 서둘러 오느라 이마와 등줄기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주르르륵.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수업에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는 인사를 하며 강의실 안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수강생 중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 저분은..'



정순왕후.jpg [ 드라마 '이산'에서의 정순왕후 ]




처음에는 비슷하거나 닮은 사람인가 보다 하고 강의를 진행했는데 시선이 마주치면 칠수록 긴가민가했던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이상할 정도로 낯익었던 얼굴은 배우 김여진 씨였다.

나는 평소 사극 마니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사를 주제로 한 드라마들을 즐겨보는 편인데, 그중 정조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이산'과 광해군과 정명 공주의 일대기를 다룬 '화정'은 인상 깊게 본 작품들이다.

그런 작품 속에서 정순왕후와 김개시를 연기하던 배우가 나와 함께 드로잉 수업을 한다니 신기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다른 수강생들과 김여진 씨의 입장을 고려해 내색하지는 않았다.


소탈하고도 동네 주민 같은 편안한 복장으로 수강을 하러 온 그녀는 스쳐가는 시간들을 그리고 표현하고 싶어서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함께 드로잉 수업을 한지 어느덧 8개월째.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그녀는 바쁜 촬영 일정과 스케줄 속에서도 꾸준하고 열심히 그림을 그렸고,

함께 수업을 듣는 사람들과도 아주 잘 어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브라운관 안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던 배우의 모습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소탈하고 평범한 우리 이웃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더 정감 가고 대단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보면서 앤디 워홀이 말한 '예술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수많은 직업 중에 하나일 뿐이다'라는 글귀가 떠올랐다.


"저.. 선생님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다음에 인터뷰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쓰고 있는 이야기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았으면 해서요."


내가 가르치는 드로잉 수업에서는 선생님과 수강생 모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이는 함께 수업을 배 워 가는 과정에서 수직인 아닌 수평적인 관계가 되길 바래서였고, 서로가 서로에게 존경심을 담아 보고 배운다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네. 좋아요.

저야 영광이죠."


그녀는 웃으며 흔쾌히 응해주었다.

사실 인터뷰를 부탁하면서도 연기 경력 20여 년이 넘는 배우에게 인터뷰란 정말 수도 없이 해보아서 불편할지도 몰라 조심스러웠는데 호쾌하게 응해주니 내가 오히려 배려를 받은 것 같아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로부터 3주쯤 지났을 무렵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약속 장소에는 김여진 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어요?"

"아뇨, 저도 좀 전에 왔어요. 식사하셨어요?

혹시 식사를 안 하셨으면 식사를 하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네. 저도 아직 식사 전이라서 괜찮으시면 식사하고 얘기하실까요?"

"네. 근처로 가시죠."


스케줄상 우리는 문화센터가 있는 빌딩 내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를 골라 주문을 하고는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어휴.. 아침부터 아이랑 투닥투닥하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왔어요.

유치원 버스는 왔는데 마술놀이 세트를 가져간다고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마음은 급하고..."

" 하하.. 그 나이 때 아이들이 한창 그렇죠."


호기심과 장난기 많은 아이를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도 여느 엄마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 친근함이 더해졌다. 곧이어 식사가 나오고 우리는 그림이야기, 문화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식당 옆의 카페로 들어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하셨나요?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아뇨. 처음에는 연기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대학원을 다니던 때에 우연히 연극 한 편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굉장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연극이 끝나고 불이 모두 꺼졌는데도 한동안 자리에 계속 앉아있었죠. 그때 단장님이 오시더니 왜 안 가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더니 여운이 길게 남은 제 모습을 보시고는 연기할 생각이 있으면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극단으로 오라고 하셨죠."

"그래서 찾아가셨나요?"

"네. 다음날 아침 9시까지 극단으로 찾아갔죠.

그런데 극단에는 아무도 없는 거예요. 아마 저 같은 사람들이 많았나 봐요. 보통은 잠깐의 감성에 젖어서 그러거나 올빼미형 인간들이 많으니 다음날 아침 9시에 오라고 하면 안 나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거 같아요. 히히.."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일단 누군가 올 때까지 기다렸죠. 한참을 기다리니까 사람들이 오고 단장님이 보고서는 시작해보자고 했죠."


지금은 소위 잘 나간다는 배우들이 예전 극단에서의 생활을 언급하는 것을 티브이에서 종종 본 적이 있다. 생활이 안될 정도록 아주 궁핍한 삶 속에서도 목표를 향한 꿈을 놓지 않고 무던히 노력하며 갖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던 그들의 이야기는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의 시대에도 결코 녹록지 않은 일이다.

그런 세계에 스스럼없이 뛰어든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B1谳%BD%C3_%B1迩%C1%F8.png [ 드라마 '화정' 의 한 장면 (출처. MBC) ]



"처음 시작했던 극단은 '봉원 패'라는 이름의 작은 소극단이었어요. 극작가, 화가, 객원배우 등으로 구성되어있었는데 거기에서 연극 포스터를 붙이고 청소하는 일부터 시작했죠. 그때 무대에 대한 느낌이 얼마나 좋았던지 같은 연극무대를 60번도 넘게 봤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동선이나 대사를 외울 정도가 되었었죠.

그런데 어느 날, 무대에 서던 배우 중 한 명이 갑자기 출연을 못 하게 되면서 그 배역이 공석이 되어버린 거예요.

당장 공연은 시작해야 하는데 별 다른 대안은 없고 그때 단장님이 제가 배역의 동선과 대사를 외우던 것을 아시고는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예? 아무런 사전 연습이나 준비 없이요?"

"네. 저도 연기를 해보았던 것도 아니고 연습기간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못한다고 했었지요.

그런데도 단장님은 만약 잘못돼도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한번 해보자고 하셨어요. 아마도 그때가 제게는 기회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동안 수없이 보던 무대의 기억을 더듬어 한번 해보았는데 다행히 무사히 잘 넘길 수 있었죠. 히히..

그 뒤로 쭉 그 배역을 연기하게 되었어요."


이야기를 들으며 늘 내가 나 자신에게 되새기던 말들이 떠올랐다. 지금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분명 기회라는 것은 오기 마련이고, 그때 그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안목과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렇기에 당장 할 수 없는 일들에 전전긍긍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내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던 말들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렇게 연극무대부터 연기생활을 시작하시게 된 거였군요.

그 뒤에 영화, 드라마 등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들에 출연을 해오고 계신데 브라운관 데뷔는 언제 하신 건가요?

분명 연극에서의 연기와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연기는 상당히 다를 텐데 어려움 같은 건 없었을까요?"


"연극을 하며 1년간은 관객과의 호흡을 배워가는데 신경 썼어요. 이후에 다른 연극에도 출연했지만 그 무대는 잘 안되었죠. 그래서 제대로 연기를 배워보고자 한때는 연기와 관련된 워크숍 같은 곳도 다녀보고 한예종에 가서 청강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연극생활을 시작했죠.

그때 찾아갔던 곳이 '연우무대'라고 창작극을 하는 극단이었어요. 그곳에서 활동들을 하다 임상수 감독님이 준비하시던 '처녀들의 저녁식사'라는 영화에 캐스팅이 되었고 그 영화가 저의 첫 데뷔작이 되었어요.

다행히 제가 하던 연극은 말투나 액션이 크지 않은 내추럴한 연극이었기에 영화나 드라마를 하면서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 후로 '박하사탕', '취화선' 같은 수작에 출연하게 되면서 신인상과 조연상들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 외에도 지금껏 대장금, 로드 넘버원, 내 마음이 들리니, 트로트의 연인, 오만과 편견, 화정, 구르미 그린 달빛 등 다양한 여러 작품에 꾸준하고 성실히 출연을 해왔다.

김여진 씨는 그저 타이밍과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했지만 세상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열정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능숙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만들어간다.


"연기 생활하시면서 스케줄이 일정치 않고 밤샘 촬영도 많으실 것 같은데 힘들지 않으세요?"

"네. 정말 그래요.

촬영을 하다 보면 체력과 정신력 소모가 많은데 특히 밤샘 촬영을 할 때면 체력적인 부담이 많이 돼요.

그래서 꼭 제때에 끼니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만나자마자 식사 여부를 묻고는 밥 먹으러 가자고 했던 게 이해가 되었다.

특히 스케줄이 일정치 않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식사를 건너뛰는 일이 빈번하기에 식습관이 불규칙적이고 건강에도 부담이 되기 마련인데 나이가 더해 갈수록 규칙적인 식습관이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김개시.jpg [ 드라마 '화정'에서의 김개시 ]



"요즘 출연하고 계신 구르미 그린 달빛 시청률이 장난 아니더라고요. 하하..

구르미 그린 달빛은 퓨전 사극이잖아요? 최근 많은 사극이 퓨전드라마로 가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지난번 출연하셨던 '화정'에서 김개시라는 캐릭터를 연기하신 걸 인상 깊게 봤어요. 절제되면서도 강렬한 카리스마. 극상에서 악역이었는데도 마지막 신에서는 굉장히 슬프더라고요."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경우는 주인공들이 요즘 한창 인기가 많은 친구들이고 요즘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대극으로 바뀌어서 촬영하는 추세예요.

'화정'에서 김개시는 역사서에도 언급이 되었듯이 그리 미색이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정치 지략가였고 사람의 심리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요. 악역이었음에도 그리 미워할 수만 없는 캐릭터인 것은 작가님의 김개시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인것 같아요. 후후.."


이야기를 하는 동안 커피잔의 커피는 절반이 넘게 비워져 있었다.

나는 다음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음.. 요즘 세간에서는 선생님을 개념배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알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SNS나 언론매체에서 소신 있는 발언들을 하신 게 화제가 되기도 하던데요."


"네. 알고는 있어요.

그런데 뭐, 누구는 개념이 있고 누구는 개념이 없다고 말할 수가 있나요.

그렇다고 딱히 나서서 목소리 높이고 다니고 그러지도 않아요. 그저 부조리한 일들이나 있어서 안 되는 일들을 보면 그냥 참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개인 SNS에 한 마디씩 하는 게 리트윗 되어 이슈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김여진 씨는 세간에서 개념배우로 불리기도 한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시위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는 청소부들의 지지와 대기업의 부당해고에 대한 김진숙 위원의 시위를 응원하는 모습들까지 그녀는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항상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입장을 밝혀왔다.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김여진 씨를 개념배우라고 부르며 의식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배우 김여진.jpg




"저는 원래 나서서 말하고 그런 의도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시위 현장에 도시락 싸서 응원 갔다가 한마디 하게 되고, 김진숙 위원과도 트위터 친구로 잘 지내다가 그런 일들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흥분해서 달려갔던 거고.. 그저 부당한 것들을 부당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뿐인걸요."


"예전에 100분 토론에서 말씀하신 것도 가슴에 와 닿았어요. 청년들의 꿈이 대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말이죠."

"맞아요. 청년들의 꿈이 대기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꿈과 상상력들이 현실화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반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많이 부족하죠.

한 청년이 있었어요. 한국예술 종학 학교를 나와 단편영화제에서도 수상할 만큼 전도유망한 여성작가였는데, 생계가 어려워 자신의 자취방 앞에 정말 죄송하지만 쌀이나 김치가 있으면 나누어 달라는 쪽지를 붙여놨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자신의 방안에서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더군요. 달빛요정이라는 인디밴드를 하는 친구의 경우에도 가난에 묶여 죽음까지 이르렀다고 했어요.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 지금의 청년들이 대기업 외에 다른 꿈들을 꿀 수 있겠는가 생각이 돼요."


김여진 씨의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세상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취업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런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청년들이 꿈을 꾸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상황임에도 형편이 넉넉지 못하다면 빚을 내서 공부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예전에는 집안에 소 한 마리만 있어도 대학을 보내고 공부를 시켰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 대학을 마치는 데까지는 소 한 마리는 고사하고 수천만 원의 빚을 내어야만 가능하다. 경제 불황이라는 소리가 나돈 지 십 수년째, 외환위기를 겪은 후 대한민국의 중산층은 무너졌고 오롯이 그 부담은 국민이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빚을 내서 공부를 하더라도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나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그 외의 다른 일들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회사원 말고 음악가, 화가, 미용사, 청소부, 제빵사, 영화감독 등 누가 이런 직업들을 꿈꾸고 선택하려 할까. 그리고 이런 직업들이 없는 세상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영화에서 크게 유행했던 대사처럼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사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개선되어야 하고 만들어진 시스템은 제대로 쓰이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 앞으로의 세상은 예술가나 창작자들이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받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말처럼 자신의 꿈과 그 가치를 위해 열심히 땀 흘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 더 희망적이고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

부조리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의롭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암흑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삶은 살아보면 아름답다는 사실을, 그리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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