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쿠스틱 밴드- 소풍
아메리카노 한잔을 다 비우고 글 쓴다며 노트북을 두드린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누군가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어, 일찍 와 있었네? 많이 기다렸어?"
"아뇨. 작업할게 있어서 일찍 와서 일 좀 하고 있었어요."
내게 말을 거는 남자와 그 옆에 함께 서있는 남자는 수수 한듯한 옷차림 속에서도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는 스타일이 예사롭지 않았다. 한 분야에서 오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성격, 생활, 옷차림과 심지어 외모까지 그 분야의 느낌이 스멀스멀 배어 나오는데 이들도 그런 풍류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었다.
이 두 남자가 바로 홍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하고 있는 어쿠스틱 밴드 '소풍'이다.
"재범이 형도 오셨어요? 오랜만에 뵙네요."
"그러게..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네, 저야 항상 잘 지내죠."
옆에 서 있던 키 큰 남자와도 반갑게 인사를 하고 카페의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보다 나이도 많은 두 형님을 내가 있는 곳까지 오시라고 한 것이 미안해서 차값은 내가 내겠다며 너스레를 떨고는 커피를 주문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소풍'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된 건 작년 즈음 이었다. 보컬 겸 기타리스트를 하고 있는 영혁이 형과는 교회에서 만났는데 그와 함께 소모임을 하면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이 되었다.
그 후에 나는 연남동에 카페를 운영하면서 뭔가 재미있을만한 것들이 없을까 고민하다 만든 것이 작은 음악회 '떨림'이었다. 그렇게 음악회를 열기 위해 섭외 연락을 한 곳이 영혁이 형이 활동하고 있는 어쿠스틱 밴드 '소풍' 이었고 몇 번을 함께 공연하면서 조금씩 소풍의 음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음, 어떤 것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하.. 뭐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저도 질문 리스트 같은 거 없이 하는걸요. 편하게 이런저런 수다나 나누면 돼요.
그거면 충분해요."
오히려 인터뷰를 한다고 질문 리스트를 만들면 형식적으로만 느껴질 것 같아 나도 그냥 같이 편하게 수다나 떨 요량으로 그들을 만났다. 오히려 이런저런 수다를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재미난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듣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볍게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 대뜸 영혁이 형이 말했다.
"재범이 형네 집안이 음악가 집안인 거 알아?"
"네? 재범이 형님 집안이 음악가 집안이었어요?"
"야야, 부끄럽게 뭘 그런 소릴 하냐."
말은 부끄럽다면서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한 그는 씨익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삼촌이 기타를 오래하셨어. 그리고 다른 사촌들도 음악을 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지."
"그럼, 지금까지 쭈욱 음악만 하신 거예요? 직장생활 같은 것도 해 보셨나요?"
"뭐, 직장이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지만 실은 카페도 해보고 옷장사도 해봤어.
뭐 그것들을 해서 큰 돈을 벌어보겠다는 목적보다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려고 했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가 지난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녔던 직장들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스스로 자립하겠다며 별의별 일들을 다해보았다.
패스트푸드점, 학생식당 잔반 나르기, 비디오테이프 납품, 편의점 아르바이트, 택배 집하, 물류센터 작업 등
대학을 다니며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군 전역 후에는 경영컨설턴트, 출판사, 광고회사, 판촉물 회사까지
다니며 사회생활을 했다.
어떤 일들은 생각보다 수월히 할 수 있기도 했고, 또 어떤 일들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힘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은 내 생활에 책임감을 갖고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기 위한 수단이었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음악을 계속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다른 일들을 했다고 했을 때, 그의 말에 큰 공감이 갔다.
그 또한 자신의 삶을 충실하고 책임감 있게 살아왔으리라.
"예술을 한다는 게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는데, 음악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음악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이 있으세요?"
"글쎄, 뭐가 있을까.."
"왜, 그거 있잖아요. 매니저한테 사기당한 거"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영혁이 형이 거들었다.
"사기? 사기당한 적 있으세요?"
"하하. 그런 건 뭐 이 바닥에서 흔히들 있는 일이긴 한데."
"무슨 일인데요?"
재범이 형의 연주를 들었던 한 매니저가 유명 밴드에서 세션으로 함께 하자며 재범이 형을 스카우트하였다고 했다.
그 당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밴드였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중계약처럼 공연 일정을 만들어 놓아 유명 밴드의 공연이 취소되며 그 책임이 재범이 형에게 써졌다.
그게 문제 되어 몇 년간 아무 일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정말 힘든 시기였겠네요."
"글쎄, 딱히 그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포기하려 하거나 그렇지는 않았어.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제가 되었든 기회는 돌아오고 또, 이렇게 돌아왔으니까."
그의 긍정적인 면이 참 마음에 들었다.
"부모님이 응원은 많이 해주세요?"
"부모님?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반대하셔.. 흐흐
아버지는 대기업에 오랜 기간 다니셔서 아들이 음악 하겠다고 하는 게 마땅치는 않으셨겠지.
그래도 계속해서 음악을 하니까 요즘에는 내가 만든 음악도 들어보시고 점점 나아지고는 있어. 하하.."
재범이 형도 음악을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자신의 길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설득하려 열심히 작업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형은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셨어요?"
옆에서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영혁이 형에게 물었다.
"어.. 난 처음부터 음악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없었고 중고등 때인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서 대학교를 갔는데 통기타 서클이 있더라고. 거기에 들어가서 놀다 보니 뭐, 지금까지 이렇게 왔네."
"여자 꼬시려고 기타 배운 거지 뭐."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재범이 형이 덧붙여 말했다.
" 하하하.. 맞아! 그런데 별로 실속이 없더라고."
능청스럽게 주고받고 하며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을 보니 얼마나 함께 오래 생활해왔고 가까운 사람이지 느껴졌다.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내가 기타를 더 잘쳐보려고 배웠을 때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재범이 형이었어.
그렇게 기타를 배우고서는 예전에 썼던 곡을 보여주고 함께 밴드를 해보자고 했지."
"그때 밴드하고 활동 많이 하면 계좌에 잔고가 쌓일 줄 알았는데. 영.."
재범이 형이 재치 있게 받아쳤다.
소풍의 두 멤버 김영혁과 허재범 두 사람은 함께 팀을 꾸려 활동한지 6년이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한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데 오해는 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우스 메이트지 룸메이트는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우리 소풍의 이미지를 밝고 경쾌한 음악을 하는 밴드라고 알려주고 싶어.
우리 둘 다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둘이 함께 공연을 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거든.
그 효과를 바탕으로 음악이 주는 행복감을 서로 공유하고 나누고 싶어.
그게 우리 소풍이 하고 싶은 음악이야."
음악이 주는 행복감을 서로 공유하고 나누고 싶어.
실제로 두 사람과 함께 몇 번의 공연을 해 보았을 때 지금 말한 행복감이 나누어지면서 훌륭한 노래와 연주, 그리고 능숙한 진행까지 곁들이니 관중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밴드 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으세요?"
"여기저기 공연을 많이 하다 보면 별일이 다 있어. 얼마 전에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공연을 했던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지."
그들이 만든 노래는 전부 경쾌하고 재미난 노래가 많았다. 그들의 긍정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들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각자에게 질문을 하나씩 던졌다.
"소풍 노래 중에 가장 기억에 남거나 좋아하는 노래 하나씩만 뽑아주세요."
"난 '사랑한다 말하세요' 이게 제일 나은 거 같아."
재범이 형이 말했다. 내가 이유를 묻자,
"흐흐.. 이번에 새로 나온 신곡이거든. 가장 대중적이면서 잘 불러서 나는 개인적으로 좋은 거 같아."
"나는 '이가'라는 노래가 제일 좋아! 우리 소풍 노래 중에 유일한 이별노래거든."
영혁이 형도 덧붙여 말했다.
어쿠스틱 밴드 소풍은 대중예술을 추구한다고 했다. 대중과 소통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솔직하고 공감되는 이야기를 음악에 담아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음악을 앞으로도 하고 싶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그리는 그림과도 연관이 있다. 그림을 통해 행복감을 얻고 삶 속에서 상처받은 것들이 치유되는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그 행복을,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독자들과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뭘, 우리도 이 근처에서 다른 약속이 있어서.. 또 보자!"
"그래, 너도 열심히 작업하고."
자신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책임과 삶에 대한
성실함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인 사람들이다.
두 사람의 이후 일정과 수북이 쌓인 나의 작업으로 인해 인사를 하고 인터뷰를 마쳤다.
소풍의 두 멤버 김영혁, 허재범 두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만의 자유함을 느꼈고 또 자유에 대한 책임감이 무엇인지도 다시금 깨달았다. 여느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항상 외치고 갈구하지만 정작 그 책임에 대해서는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지금껏 만난 많은 예술가들은 자유분방하며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며 살지만 적어도 자신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책임과 삶에 대한 성실함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인 사람들이다.
자유롭게 날아오르기 위해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하며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노래 들어보기
<사랑한다 말하세요 - http://youtu.be/HvBhz0QG4fc>
<이가 - https://www.facebook.com/bandsopoong/videos/411827808974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