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의 작업 이야기

사람들의 꿈과 의미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by 상진



"여.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네. 저야 항상 잘 지내죠.

실장님도 잘 지내셨죠?"


내가 실장님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서교동에 있는 '깊은 인상'이라는 디자인 회사의 최경란 대표이다.

한때는 나도 그래픽 디자이너와 제작자로 강남과 을지로에 수년간 있었는데 최경란 대표와는 당시 다니던 광고회사에서 디자인실장으로 함께 근무하던 사이였다.

이후로 나는 회사를 떠났지만 최경란 대표와는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여전히 바쁘시네요!

여기에서 대한민국 일은 다 하시나 봐요."

"호호.. 회사가 바빠야 좋은 거지.

나보다는 자기가 요즘 더 바쁜 거 같던데?"

"그림쟁이가 바쁠 일이 뭐 있겠어요.

그냥 여기저기 그림 그리러 다니는 거죠. 하하"



깊은인상_2.jpg 교정작업 중인 최경란대표



전에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둔 최경란 대표는 자신이 사는 빌라 1층에 작은 디자인 사무실을 차리고는 그동안 쌓아놓은 경험과 기반을 바탕으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았다.

집에서는 아이의 엄마로 밖에서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로, 그녀는 말 그대로 슈퍼맘이었다.


"뭐 마실래? 냉장고에 음료 몇 가지 있는데.."

"넵. 그냥 주스 주세요."


나는 주스를 건네받고는 물끄러미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디자인하느라 모니터에는 여러 프로그램이 열려있고 책상 위에는 각종 서류 및 책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납품 나가는 물건들이 담긴 박스들이 잔뜩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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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이 일은 언제 봐도 막일이네요. 책상 위에서 하는 막일 말이에요.

그런데 실장님은 언제부터 이일을 시작하신 거예요?"

"이거? 시작은 22살 때쯤이었나.. 그러고 보니 벌써 20년 정도 되었네.

나는 원래 산업디자인과 나와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거든.

전공을 살려서 할 만한 일을 찾던 중에 광주 남동에서 그래픽 디자인일을 시작하게 되었지.

당시 광주 남동에는 서울로 말하면 을지로에 있는 인쇄 마을 같은 곳이었는데 처음 일을 시작한 회사는 정말 사장 한 명에 디자이너 한 명밖에 없는 그런 영세한 사무실이었어.

그러다 보니 커피 심부름 같은 잔일부터 디자인과 제작 그리고 금전출납부 기록까지 가릴 것 없이 전부 해야만 했지. 힘들기는 했지만 그때 배웠던 게 나중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


내가 다니던 광고회사가 생각났다.

처음 강남에 있는 광고회사에 갔을 때 입구에 박스들이 잔뜩 쌓여있는 것을 보고 내가 사무실을 잘못 들어왔는가 싶어 다시 밖에 나와서 상호를 확인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회사는 사무실과 창고가 따로 없을 정도로 사장과 나를 포함한 직원이 5명도 채 안 되는 작은 규모였다. 그러다 보니 디자이너로 입사는 했지만 자연스레 디자인 외의 일을 해야만 했다. 필요하면 마케팅부터 상담, 그리고 디자인과 제작까지.

그렇게 5년의 시간이 지나고 보니 회사는 직원만 50명이 넘는 회사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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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광주에서 서울로 어떻게 올라오신 거예요?"

"20살 때 일하던 그 영세했던 회사를 3년 정도 다니고 나니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어.

그래서 근처의 회사로 옮겨서 일했는데, 디자인일을 시작한 지 5년쯤 되었을 때 문득 내 사업을 하고 싶은 거야. 직원으로서의 비전은 한계가 있거든 그래서 직접 내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사업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장은 직장을 다니면서 일단 배울 수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배우고 더 많은 경험들을 해보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 그때 우리애가 7살쯤 되었나.

광주에서 14년을 일하고 나서야 서울로 올라왔지."


새삼 이 사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과 아이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비전을 위해 그동안 일구어온 자신의 터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역에 둥지를 튼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의 이해와 동의가 필요한 일인데

최경란 대표의 가족은 서울에 터전을 마련하고는 누구보다 열심히 그리고 잘 살고 있다.


"실장님도 그렇지만 가족분들도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광주에서 그렇게 오래 지내다가 서울로 상경하셨을 때 생활이나 일이 쉽지만은 않으셨을 텐데 제일 어렵다고 느끼신 게 뭐예요?"

"뭐, 일이야 항상 하던 거니까 그쪽으로는 어려운 게 없었는데 아무래도 사람이 제일 어려웠던 거 같아. 우선 지역문화가 많이 다르기도 하지만 서울에서는 분업화가 잘 되어있다 보니 일부 디자이너들은 맡겨진일 외에는 관심도 없고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이유로 잘 하려 하지 않거든.

그러니 일을 분배하고 주문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함께 일하기가 어려운 거야."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좀 더 제대로 된 디자인을 배워보고 싶어 제작일을 시작했던 적이 있다.

내가 생각한 디자이너란 머리와 프로그램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현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디자이너야말로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제작일을 하면서 다른 디자이너들의 제품들을 만들다 보니 실체화되기에는 어려운 디자인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디자인 수정을 요청했지만 정작 그들은 주어진 일 외에는 무관심했고 그렇게 분업화된 일만 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최경란 대표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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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요. 분업화는 일을 더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런 부작용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 어떤 일들은 옛날 방식이 더 좋은 거 같기도 해요.

그런데 직원으로 있다가 회사를 차리면 당연히 어느 정도 시행착오와 어려움도 있을 테고 매출 또한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 거래처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영업팀 같은 것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거래처들을 만드신 거예요?"

"호호. 뭐 특별한 게 있는 건 아니야.

나는 좋은 결과물이 좋은 영업이라고 생각해. 직원으로 그동안 일해 오면서 맡은 일에는 정말 작은 거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서 작업하고 챙겼거든. 그러다 보니 클라이언트들도 그런 부분에서 좋게 봐주시더라고. 그랬더니 회사를 차리자 일을 맡겨주어 지금까지 오게 되었어.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기업에서는 안심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하는 사람들과 오랫동안 함께하길 바라지.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작업물에 책임감과 애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


일반적으로 기업에서는 회사와의 계약이나 거래를 통해 일을 맡겨오기 때문에 개인이 회사를 새로이 차렸다고 해서 일감을 주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평소 함께 일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꼼꼼하게 신경 쓰며 체크를 해왔고 약속한 날에 납기를 맞추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업들은 최경란 대표를 반기며 일을 맡겨 온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야 늘 있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한데 실장님은 지금까지 일해 오면서 가장 크게 한 실수 같은 거 있으세요?"

문득 일에 있어서만큼은 편집증이 있을 것만 같이 엄청나게 꼼꼼한 그녀가 어떤 실수를 가장 크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 물론 그럴 일이 없으면야 좋겠지만 나도 몇 번의 실수는 있었지.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거라면..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번은 버스광고를 디자인한 적이 있었어.

광고 문구에 최첨단이라는 글씨가 잘못되어서 촤첨단이라고 나왔지 뭐야. 그 뒤로 한동안 이름까지 촤경란이라고 불리면서 놀림을 당했지. 호호호호"

"촤경란이요? 하하.."

"당시 영세한 회사에서 작업한 거니만큼 회사에 큰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고민도 많이 하고 실수 때문에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받았어. 일을 시작한 지 얼만 안된 새내기 디자이너였으니 그럴 만도 했지 뭐."


디자인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실수가 생기기도 하는데 디자인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제작공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과 부담감은 늘 디자이너가 떠안아야 한다. 그리고는 일을 최대한 빨리 수정해서 납기를 마쳐야 한다.

특히나 인쇄업은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그만큼의 비용과 시간이 추가적으로 발생하기에 그 과정은 정말 피를 말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누구나 실수는 해. 그렇지만 최대한 빨리 실패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잘못된 일을 수정하는 게 중요하지.

한 가지 실패를 했다고 해서 거기에 매여있으면 다른 일들을 할 수가 없거든."


마치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살면서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러나 실수했다고 그것에만 매여있다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실패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는 말은 진리로 다가온다.

한 두 번의 실패로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지 말고 실패를 교훈 삼아 앞으로 전진한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나아진다. 그리고는 훨씬 더 견고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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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이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나 되었다고 하셨는데 일하시면서 뭐 재미난 일이나 기억에 남던 일이 있으세요?"

"재미난 일? 글쎄 재미나다기보다는 기억에 남는 일들은 있지.

작업하던 일중에 노인복지에 관한 매거진을 만들기 위해 취재를 간 적이 있었어.

취재를 갔던 곳이 어르신들이 모여 인터넷을 배우는 컴퓨터 동호회 같은 곳이었는데 마치 수업 중이었어.

그곳에 계시던분들 중에 손가락 3개가 없던 할머니가 계셨는데 손이 불편해서 필기를 하기 어렵다 보니 컴퓨터를 배워서 손자들에게 메일로 편지를 쓰시기도 하고 청구서나 서류 작업이 필요한 여러 일들을 처리하고 계시더라고. 그렇게 불편하신데도 그 배움의 열정이 너무 대단하고 뜨겁게 느껴져서 가슴이 뭉클했어.

정말 그 모습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은 것 같아."


"듣다 보니 이 일이 실장님께는 천직인 것 같네요. 혹시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장르에 관심을 갖고 생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같은 게 있으세요?"

"어느 일이든 그렇겠지만 특히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업계의 특성상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

그렇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이 중요하지.

한 7대 3쯤? 디자이너가 7 클라이언트가 3 정도 의견이 들어갈 때 결과물이 가장 좋았던 거 같아.

그런 황금비율의 소통과 함께 디자이너로서의 열정이 결과물이란 매개체를 통해 그 욕구를 채워갈 수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젊은 디자이너일수록 많은 경험들을 해봐야 하는 것 같아.

그리고 회사들은 디자이너가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그 환경은 좋은 음악과 조용하고 아늑한 작업실 같은 공간이 아니라 여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작업이 많은 환경을 뜻하는 거야."


'깊은 인상'이라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최경란 대표는 직원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회사를 포털 설루션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었다. 기획부터 취재, 인터뷰, 촬영, 디자인, 제작, 영상편집까지.

그리고 그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디자이너들은 완숙한 모습으로 자신의 비전에 대해 한껏 가까이 갈 수 있게 된다. 디자이너는 프로그램으로 상품들을 예쁘게 꾸미고 포장하는 직업이 아니다.

디자이너란 사람들의 꿈과 의미를 담아 표현하고 그들의 바람을 구현화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진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그들은 오늘 하루도 분주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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