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그리는 건축가의 답사기_박정연 건축사
박정연 소장을 처음 만난 건 3년 전 드로잉 모임에서였다. 그림쟁이 몇 명이 모여 함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린 것들을 나누어보기도 하는데 그 자리에 박정연 소장도 참여하고 있었다. 집을 그리고 짓는 건축가로 곳곳의 건축물들을 스케치하고 역사에 대해 서술하던 그의 작업들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 종종 드로잉 모임과 온라인 활동으로 만나게 되면서 우리는 친숙한 이웃이 되었다.
그를 만나러 가기 위해 용인으로 향했다.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여서 며칠 전부터 날이 좋지는 않았지만 흐린 날은 화창한 날과는 다른 분위기와 감성을 불러와 준다. 열차 창밖으로 무채색 하늘과 촉촉이 젖은 도시가 스치듯 지나쳐간다. 왠지 진한 향수를 불러오는 그런 풍경.
사무실까지의 여정이 짧은 여행처럼 느껴진다.
기흥역에 도착해서 휴대폰 속 지도를 보고는 5분 여정도 걷자 건축사 사무소에 도착했다. 예전 같았으면 지도를 펼쳐 들고 번지수를 일일이 확인해서 찾아갔을 텐데 종종 발전된 문명 속의 소프트웨어에 감사할 때가 생긴다.
상가건물 3층에 올라가니 Grid-A 간판이 보여 현관문을 살짝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 상진님 오셨어요? 찾아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네요."
"고생은요. 오히려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는걸요. 하하.."
박정연 소장이 현관으로 마중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네. 일한다고 정신없이 지냈지요."
"온라인으로 사무실 이전하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제야 와보네요.
사진으로는 보았지만, 직접 보니 사무실이 정말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흐흐.."
입구에 들어서니 그리드 에이 건축사 사무소의 간판과 함께 그 옆으로 집 모양의 조형물들이 장식장에 켠켠이 전시되어 있다. 현관을 지나 사무실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널찍한 공간에 도시적 느낌의 조명등과 길게 배치된 테이블, 그리고 테이블 위로 늘어선 컴퓨터들이 건축사 사무소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반대로 왼쪽 편에는 사무실에 사용된 주광색의 조명등과는 반대로 노란색의 전구색 조명등이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었고 원목 테이블과 미니 홈바, 그리고 싱크대등 휴게공간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박정연 소장은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셔서 편히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사무실이 참 넓네요.
먼저 사용하시던 사무실보다 엄청 좋아졌는데요? 하하.."
"음. 가까운 곳에 좋은 장소가 있어서 옮겼는데 환경은 훨씬 나아진 거 같아요."
"그렇군요. 그런데 소장님은 그 많은 직업 중에 왜 건축가를 선택하셨나요? 이유가 궁금한데요?"
"어릴 때였어요. 부모님과 거리를 지나다가 거리의 악사를 본 거예요. 그때 그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서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었어요. 또 그림 그리는 데에도 흥미가 있어서 미술을 배우기도 하고요. 그만큼 예술분야에 대해 어릴 적부터 관심도 많고 좋아하기도 했죠."
"네? 그럼 예술가를 직업으로 삼으셨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버가 물리학자셨거든요.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과학책들을 접하게 되면서 고등학교에서도 이과로 진학하게 된 거예요. 그때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예술과 이과의 결합이 바로 건축이다' 그래서 건축가가 되기로 생각했지요."
멋스러운 표현이었다. 예술과 결합된 이과의 산물이 건축이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세밀하고 정확한 계산으로 설계를 하고 거기에 창의적인 디자인을 덧입히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건축을 전공했다고 해서 누구나 건축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건축관계 일이 야근과 철야를 밥먹듯이 하면서 현장일도 함께 알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분명 어려움이 뒤따랐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고 지금까지 같은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물론 어렵기는 합니다. 건축과를 졸업하고 이 일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삼분의 일만 남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저는 자연스럽게 건축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어렵다고 해서 중도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건축 외의 일을 하면 왠지 일탈을 하는 기분이 들 것 같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만들어진 결과물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죠. 화가가 2D로 표현하는 직업이라면 건축가는 3D로 표현하는 직업인 거예요. 과정은 어렵지만 완성된 건축물들을 보면서 성취감을 얻어요."
작가에게 작품은 '자식과도 같다'라고 표현한다. 물론 사람과는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작품은 하나하나 작가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건축가에게는 건축물이 그럴 것이고.
"물론 소장님도 개업을 하시기 전에 직장을 다니셨을 텐데요.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세요?"
"네. 물론 저도 직장생활을 했고 몇 번의 회사를 다니다가 개업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 일했던 회사는 업계에서 유명한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다양한 실무경험들을 쌓았죠. 건설사와 시공사의 미묘한 줄다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도 그때부터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음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나서 건축사 자격증을 땄어요. 그때가 2013년쯤이었을 거예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건축가들에게서 건축사 시험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3번의 시험을 보아야 하고 실기시험에는 9시간 동안 설계도를 그린다고 했다. 시험 때마다 상위 10%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합격한다는 그 어려운 시험을 박정연 소장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합격을 하고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정말 어려운 시험이라고 들었는데 대단하시네요."
"그때 실무경력이 5년 이상된 사람만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는데 3년 만에 합격을 했어요. 어렵지만 손으로 그리는데 매력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싶었죠."
"직원으로 일을 할 때와 대표로서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은 많이 다를 텐데 어려움들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세 번째로 이직을 했던 직장에서는 어쩌다 보니 대표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행정적인 것과 세법, 그리고 시스템이 운영되는 방법들을 알아야만 했지요. 그때 익혀두었던 것들이 후에 제 사업을 시작했을 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어디에선가 후두두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보니 창밖으로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작업실에 올 때부터 날이 흐리더니 결국 비가 매섭게 쏟아져 내린다.
"비가 올 것 같더라니.. 결국 쏟아지네요."
"그러네요. 이제 장마철이라 당분간 비가 계속해서 온다고 하더군요. 먼저는 너무 가뭄이 길어서 걱정했는데 이제는 홍수가 날까 걱정이네요. 적당히 내려야 할 텐데요.."
우리는 커피 한잔을 들이켜고는 마저 하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까지 수많은 건물들을 그리고 짓고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축물이 있으세요?"
"기억에 남는 건축물이요? 지금 연남동에 짓고 있는 건물이 그런 거 같아요."
"연남동이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동네의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그 많은 지역과 동네 중에 내가 사는 연남동에 지은 건축물이라니.
"네. 지금 연남동에 건물을 하나 짓고 있는데 신축은 아니고 재건축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작업 과정이 복잡하거든요. 용도변경, 증축, 대수선등 레노베이션이 많은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한 건물이죠. 그러다 보니 한 건물을 지으면서 다양한 작업들과 경험들을 쌓을 수가 있지요."
"다양한 작업들을 할 수 있어서 좋으신 거군요. 흐흐..
아! 건축일 말고도 강연이나 연재 같은 다양한 일들도 하고 계시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얼마 전까지 남서울대학교에서 겸임교수와 외래교수를 하고 있었어요. 올해에는 진행하고 있는 일들이 많아서 잠시 쉬고 있고요. 그 밖에도 건축세계나 웹진 같은 매거진에서 연재들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일만도 많으실 텐데 정말 바쁘시겠어요."
"가족들한테 미안하죠. 뭐.."
박정연 소장은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많은 일들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함이 크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내 이야기같이 들렸다. 매일 눈뜨자마자 책상에 앉아서 작업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수업들을 하고 잠들기 직전까지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하다가 하루를 마감을 한다.
매일 작업에만 파묻혀 지내다 보니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내에게 미안함 마음이 든다.
"지금 학생들 중에도 건축가를 꿈꾸는 친구들이 있겠지요. 또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건축일을 시작하는 청년들도 있을 테고요. 그 청년들에게 선배 건축가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 같은 게 있으신가요?"
"미디어에서 소개되는 건축가의 모습은 이상적인 것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실제로 느끼는 현재의 모습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다양한 작업들을 통해 경험을 쌓으며 언젠가 찾아올 기회에 대비해야 해요. 건축은 맡겨지는 일입니다. 맡겨진 일을 어떻게 풀어주는가가 건축가의 역할인 거죠."
"시간이 지나 어떤 모습의 건축가가 되고 싶으세요?"
"어떤 분이 원로 건축가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제가 지금껏 지은 건축물 중 가장 잘 지은 것은 다음에 지을 건물입니다.'
그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연세가 많아도 진정한 건축가라면 계속 도전해야 하는 거죠.
저는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라고 불리는 알바알토같이 친근하면서도 편안한 건축가로 아름다운 공간들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의 대답에서 굳은 신념이 느껴졌다. 집이란 사람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기대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건축가는 그런 사람들의 바람과 편의를 담아서 그들이 살아갈 집을 짓는다. 사람을 위한 집.
박정연 소장은 그런 집들을 그리고 짓는 건축가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쯤 되니 어느새 비는 멈춰있었다. 비가 그쳤는데도 여전히 날은 흐리지만 가슴이 시
원하다. 박정연 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군가 내가 살아가는 집과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부디 건축가들의 마음처럼 건물주들도 이윤보다는 사람을 위한 공간 임대를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