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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진 Dec 29. 2020

01. 동본원사(東本願寺)

구 동본원사 목포 별원






01. 동본원사(東本願寺)


목포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동본원사.

동본원사는 목포에 들어선 일본식 첫 번째 불교사원으로 정식 명칭은 ‘진종 대곡파 동본원사’입니다. 

목포가 개항한 지 1년 뒤인 1898년에 일본 정토진종이 목포에 동본원사의 지원을 설치한 것이지요. 당시 일본 불교는 조선 침략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자임하며 1877년부터 조선에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본원사 목포지원은 일본인 거주지역인 남촌에 자리를 잡고 일본인 교육기관인 목포 심상 고등소학교를 열게 됩니다. 지금의 유달초등학교의 기원이 됩니다. 그리고는 1905년 지금의 현 위치에 법당을 지으면서, 1907년 목포지원은 목포 별원으로 등급이 높아졌지요. 그렇게 지어지고 붙여진 이름의 법당이 바로 '동본원사 목포 별원'입니다. 초기에 법당은 일본 전통 사찰들처럼 목조였는데 1930년대 지금의 석조건물로 개축하게 된 것입니다. 건물의 본체 높이는 5.5m에 지붕이 7m나 되고 화강암을 쌓아 올려 만든 석조건물인데도 군데군데 목조양식을 남겨두어 한눈에 보아도 일본 사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동본원사의 건물은 한국 불교의 정광사(淨光寺)가 되었고 1950년대 중반까지 '교육불사'가 이루어지는 목포 불교의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목포역에서 그 위치가 가까웠던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1957년 정광사가 목포중앙교회에 건물을 넘겼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사찰로 쓰이던 곳을 교회로 사용한다는 일은 지금까지도 희귀한 일이니까요. 

1957년 불교 사찰을 매입한 목포중앙교회는 십자가를 걸고 2008년 옥암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무려 반세기 동안을 교회로 사용을 했습니다. 교회로 사용하는 동안 유신시절부터 1980년 5·18 민주항쟁, 1987년 6월 항쟁 등 중요한 결정들이 이 곳에서 이루어졌고 교회 이전 후에는 오거리문화센터로 개관하여 지금까지도 각 종 공연과 문화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문화재청은 2007년 구 동본원사 목포 별원을 등록문화재 340호로 지정하게 됩니다.

그 시작은 뼈아픈 역사적 배경이 있었으나,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구 동본원사 목포 별원은 종교와 민주항쟁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문화를 나누는 아름다운 공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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