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사막을 홀로 건너가는 중인 거다

by 안지숙

리마에서 피스코로 들어오면서부터 인터넷이 맛이 갔다. kt로밍은 왜 이러냐고 투덜대니 kt는 페루하고 통신 협약이 돼 있지 않아서 원래 자주 끊긴단다. 볼리비아로 넘어가면 잘될거라고.
로밍도 안되고 파라카스(피스코) 숙소의 와이파이도 시원찮아 그제 어제 오늘 사흘치 사진의 압박에 시달리다 나스코 숙소에서 겨우 올린다.
일정을 짚자면, 피스코로 이동하기 전 우범지역이었으나 벽화도 그리고 해서 예술적으로 마을재생에 성공했다는 바랑코를 다녀왔다. 우버 타고 갔다가 걸어서 돌아왔는데 일행에게 고관절 쑤신다는 말로 분위기 깨기 싫어 꾹 참고 걸어오느라 넘나 힘들었다. 바다 본다면서 해안길로 돌아가자는데 나 때문에 안된다 할수도 없고.
숙소로 돌아와 바랑코 일행 넷이 각자 집에서 챙겨온 것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다들 짐무게 생각 안하고 많이들 챙겨왔다. 나랑 방을 같이 쓰는 여자는 캐리어23킬로, 보조가방과 배낭에 7킬로 짐을 더 넣어왔단다. 거의 다 먹을 거라는데 옆에서 보니 물티슈에 변기카버에 없는 게 없어 거의 내 이삿짐 수준이다. 사나흘 겪었는데 참 억척스럽고 활발하고 인맥도 넓고 말이 너무너무너무 많고 자식자랑에 진심이고 어디가 어떻게 아프고 평소 뭘먹고 뭘입고 뭘차는지 그게 다 언제 어디서 얼마에 산건지 무슨 모임을 얼마나 많이 어디서 하는지 모든 신상을 공개중이다.
싱글차지가 싸서 혼자 방 쓰려고 했는데 막판에 스태프가 일정상 4명 단위로 움직이는 일이 종종 있을 건데 조인하는 게 나을수도 있단 소리를 듣고 방을 조인했더니 이런 사태를 만났다. 내가 지독한 길치만 아니었어도 방을 혼자 쓰는 건데.
물론 조인하니 좋은점도 있다. 내가 아무짓 안하고 있어도 주변에 뭔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가 어디서 온 누군지 내귀에 쏙쏙 넣어주고, 바랑코 같은 데 갈 때 같이 택시 탈 멤버도 구해오고.
룸메녀 이야기로 잠시 샜는데, 일정으로 돌아가자면 시골스러운 느낌이 좋았던 파라카스(피스코) 숙소에서 생과일 과즙과 빵으로 조식을 하고 단체투어를 했다. 바스티예섬으로 보트를 타고 가는 거였는데 물개가 왜 저기에 앉아있나 싶은 데서 관광객들을 맞았다. 쟤들 일부러 저기 갖다놓은 건가 싶게 부표(?)마다 한 마리나 서너 마리가 올라가 있다. 전시용 물개도 보고 섬에 새겨진 문양도 보고(설명을 해주는데 에스파냐어를 모르니 알아들을수가 없다) 1킬로1달러짜리 새똥으로 덮인 섬이랑 근처 섬들을 둘러보며 사진을 엄청나게들 찍고서 돌아왔다.
이카의 와카치나 사막으로 달려가 점심을 조별로 먹은 뒤 버기카 탈 사람들은 떠나고, 나는 식당에서 쉬는 사람 중에 착하게 생긴 남자한테 오아시스랑 마을 한바퀴 돌자고 꼬셔서 개인투어를 했다. 오아시스 주변에서 춤추는 애들도 만나고, 코리아나라고 하니 환호하던 학생들과 사진도 찍었다. 대기시간이 길었으면 오아시스 주변 바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한잔 하는 건데 늦어질 듯해 식당으로 복귀 커피와 생수를마셨다.
세 시 좀 지나자 버기카 일행이 벌겋게 익은 얼굴로 싱글거리며 들어섰다. 재미있었나보다만, 모래 뒤집어쓰면서 썰매타고 내려가는 샌드보딩 나는 별로였다(호주에서 했거든)
다들 화장실 다녀온 뒤 즐겁지만 지친 얼굴로 전용버스를 탔다. 석양빛을 받으며 세 시간 남짓 달렸나. 이곳 나스카로 달려오는데 어제오늘 내게 진짜 투어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저 사막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 가게도 없고, 풀 딸린 식당도 없고, 주점도 없는, 심지어 오아시스가 영원히 모습을 감추고 있어 내 시선과 마음만을 허용하는 사막. 그러니까 지금 나는 그런 사막을 홀로 건너가는 투어 중인 거다. 정체를 알길없이 마음만 괴롭히던 그리움의 원천이, 나의 오아시스가 저기 있는듯하여.
2024.11.9 #파라카스 #피스코 #이카 #와카치나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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