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모니에서의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을 뒤로한 채, 우리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고대도시 리옹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리옹은 프랑스 제 2의 도시로, 프랑스의 중앙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다. 샤모니에서 리옹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리옹에서는 이틀을 머무를 예정이었는데, 때마침 유럽 전역에는 유례없는 폭염이 시작되었다. 세 시간 여 쯤을 달렸을까, 어느새 우리는 리옹 역에 도착했고, 샤모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엄청난 열기에 적잖이 당황했다. 유럽의 더위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달랐다. 우리나라의 폭염은 습도가 높기 때문에 더 불쾌하긴 하지만, 리옹에서 느꼈던 폭염은 건조한 데다 태양이 바로 내리쬐었기 때문에 피부가 따가울 정도였다. 자외선 차단제를 덕지덕지 발랐지만 어느새 열기에 녹아 흘러내릴 정도였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도 한참을 걸어 올라간 끝에 리옹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우리는 리옹의 교통편과 문화재, 박물관 등을 무제한 또는 할인 이용 가능한 리옹 시티카드를 샀고, 리옹 시가지를 걷기 시작했다. 리옹은 프랑스 제 2의 도시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 분명 휴일이 아닌데도 거리에는 오가는 자동차들과 카페테리아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를 제외하고는 정적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그런 분위기가 당황스러웠지만, 낮고 고즈넉한 지붕들로 수를 놓은 리옹의 거리를 걷다 보니 이내 익숙해졌다. 아마 찌는 듯한 폭염에 사무실이나 집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이 얼마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리옹은 프랑스의 다른 유명한 도시들과 비교하면 크게 관광지나 볼거리가 없다. 도시 전체가 유적지이기 때문에 특별히 눈에 띄는 건축물이나 찾아가야만 하는 장소 역시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넉넉하게 도시를 거닐 수 있었다. 날씨만 더 선선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파리에서처럼 시티 보트를 타기 위해 손 강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리옹의 시티 보트는 한 대만 운행을 하고 있었고, 그마저도 파리의 것과 비교하면 아담했다. 보트를 타려는 관광객들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우리는 기분 좋게 줄을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보트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다들 찡그리고 있었다. 곧이어 내 눈에 벌겋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피부가 보였다. 아뿔싸, 이런 날씨에 강 한 가운데에서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그대로 맞아야 한다. 우리는 고민했지만, 이미 돈을 냈기 때문에 또 강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올 것을 기대하며 보트에 탔다.
보트를 타고 손 강을 거슬러가며 바라본 리옹은 세계문화유산답게 정적이면서 퍽 아름다웠지만, 얼굴으로 내리쬐는 태양빛과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뜨거운 열기는 나를 탈진 상태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한번도 여행을 하면서 불평한 적이 없었던 나지만, 그 순간만큼은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도시를 소개하는 가이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마이크로 어딘가를 지날 때마다 큰 목소리로 소개를 했지만,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점점 졸음인지 무엇인지 의식이 흐려졌다. 보트는 한 시간 정도 리옹의 강을 돌았고, 투어가 끝날 즈음에는 내 온 몸은 땀에 젖었고 달궈진 쇠붙이처럼 몸이 뜨거웠다. 나는 보트가 정박하자마자 후다닥 그늘로 뛰어갔다.
강물은 땅 위의 열기는 모르는 듯이 그렇게 푸른 빛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며 나는 강물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렌에서 10km 넘게 걸어다니고, 몽블랑 산 위에서의 추위와 바람과 기압에도 아픈 것 하나 없이 견뎠던 나는 어느새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나는 미친 듯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무언가를 찾았다. "여기에서 가까워! 비싸도 어쩔 수 없다. 가자." 나는 친구를 설득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리옹의 유명한 한식당이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다. 여행을 떠나온 후 밥 생각이 그리웠던 적이 많았지만 현지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하며 참아왔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우리는 순두부찌개와 양념불고기를 주문했고, 밥 한 톨 반찬 한 젓가락도 남기지 않고 싹 먹어치웠다. 숟가락을 놓았을 때엔 그 생각만 들었다. '역시 한국 음식이 최고구나...' 한계가 왔던 체력은 어느새 모두 충전된 것 같았다.
어느새 리옹에도 밤이 찾아왔다. 엄청난 폭염도 내일 낮을 예고하며 숨어들어간 것처럼 날씨는 선선했다. 거리에는 하나 둘 등불이 켜지고, 리옹의 진짜 모습이 눈 앞에 펼쳐졌다.
시청 근처에 위치한 광장은 선선해진 기온 탓인지 사람들로 붐볐지만, 다른 도시에서와는 다르게 조용했다. 은은한 조명으로 빛나는 건물들 사이의 광장에서는 검은 옷차림의 사람들이 밝은 조명과 대조되어 더 짙고 어둡게 지나다니는 것만 같았다. 리옹의 밤은 파리의 밤보다 아름다웠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숱한 세월을 지나며 벽돌 한 개, 기둥 한 개에도 은빛 세월의 흔적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어두운 골목길에는 저마다 이국적인 얼굴의 상인들이 타코를 팔고 있었고, 고소한 냄새가 온 거리를 둘러쌌다. 리옹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이튿날, 우리는 영화 박물관과 미니어처 박물관에 들렀다. 리옹은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영화가 처음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도시이다. 박물관은 눈에 띄지 않게 조용한 골목 한 켠에 위치해 있었고, 시티카드를 이용하여 공짜로 입장할 수 있었다.
영화 박물관에는 '해리포터'의 완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웡카 초콜릿, '헝거 게임'의 에피 의상, '브이 포 벤테다' 의 가면 등등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시절 떠올렸을 많은 작품들의 실제 소품을 전시해 놓았다. 우리는 한껏 옛 기억을 되새기며 박물관에 심취했다.
박물관에서 추억들을 되새기고 나온 우리는 다음엔 어디를 갈까 고민하면서 거리를 걸었다. 날씨는 여전히 무더웠고, 등줄기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이렇게 돌아다닐 게 아니라 큰 공원에서 쉬자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리옹에서 제일 큰 떼뜨 도흐 공원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도 한참을 걸어가야 나오는 떼뜨 도흐 공원은 규모가 매우 커서, 안에 동물원과 수목원도 있을 정도였다. 그곳에는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풀밭을 뛰노는 꼬마들과 동물원 견학을 나온 꼬마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건, 공원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초원을 마음껏 거니는 동물들이었다. 오리들은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는 들판을 거닐며 먹이를 먹거나 사람들 주위를 서성거렸고, 꼬마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며 깔깔 웃어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나라 아이들을 떠올렸다. 자연을 벗삼아 마음껏 뛰노는 이곳의 아이들과는 반대로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에 매진하는 우리나라의 아이들. 과연 어떤 게 아이들을 위한 참교육일까.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만약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나는 이런 곳에서 그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위 때문에 피어난 아지랑이인지 구름 자락인지 헷갈릴 법한 리옹의 뜨거운 열기는 어느새 해가 저물며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우리는 리옹에서 만나는 두 강줄기를 따라 걸으며 여전히 조용한 리옹의 밤을 맞이하고 있었다.
'고요한 밤의 도시'. 이틀 간의 리옹 여행을 마치며 리옹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리옹의 고요한 밤은 지친 여행자로 하여금 따스한 위로를 선물해 주는 것만 같았다. 수 세기 동안 흘러온 두 강이 만나는 곳 리옹, 지금 그 강물 위에는 역사와 번영의 상징으로 꽃피워진 빛들이 물방울 하나하나를 수놓고 있었다. 언젠가 리옹을 다시 찾을 때, 그 영화 박물관에서 보았던 소품은 또 어떻게 느껴질지, 떼뜨 도흐 공원의 아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더위 때문에 울고 웃었던 애증의 도시 리옹은 그렇게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