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광활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이 지구 어딘가에는 이보다 더 멋지고 마음을 아리게 만들기에 충분한 장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광경에 집중하기로 했다. 유럽의 지붕에 다시 한 번 올라서 발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세상이 내 발 밑에 있는 것 같은 아둔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어제 그렇게 매섭도록 몰아치던 바람과 한 치 앞을 허락하지 않았던 안개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싶을 정도로 맑고 푸른, 동시에 눈이 시리도록 하얗던 그 풍경은 마음속에 문신을 새긴 것처럼 깊게 각인되었다. 우리는 차마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얼음 동굴을 지나자 트레킹을 하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는 모험가들이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그중 한 청년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반가워. 혹시 인스타그램 하니?" 나는 답했다. "응. 왜?" 그는 말했다. "~~~~ 계정 혹시 팔로우해 줄 수 있어? 내 계정인데, 트레킹하는 사진을 올리거든. 나를 응원해줘!" 우리 나이 또래로 보이는 그 청년의 눈가에는 어리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모험심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 청년에게 인사한 뒤 전망대의 다른 풍경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한국인들도 많았다. 주로 여행자들은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많이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마 어떤 단체에서 여행 온 것처럼 보이는 한 무리의 한국인들이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했고, 우리도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린 나이에 배낭 하나 메고 정말 기특하고 멋지네! 응원할게요!"
해발 3842m의 맑은 몽블랑 위에서, 우리는 그 모든 걱정과 근심 따위를 저 발밑 지상에 떨어뜨려버린 것 같았다.
그 어떤 수식어도 그때의 느낌을 표현하진 못할 것이다. 오늘 아침 다시 올라가자고 제안하지 않았으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몽블랑. 다시 올라오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하얗고 푸른 광경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다음 도시를 향해 가야만 했다. 아쉬움은 어제보다 컸다. 하지만 동시에 후련하기도 했다. 모든 근심을 씻어 내리고 갑갑했던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던 풍경이었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내려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기다리는 줄에 합류했다. 배가 고팠던 나는 친구에게 "아, 배고프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배고프네." 친구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앞에서 누군가가 가방을 뒤지더니 감자칩을 우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한국분들이세요?" 나는 대답했다. "네, 한국에서 왔어요. 친구랑 배낭여행을 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들은 인상 좋은 한국인 부부였다. "아이구, 젊은이들이 고생이 많네. 내가 음식을 숙소에다 두고 와서 아쉽네. 가져왔으면 줬을 텐데. 미안해."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니에요. 감자칩도 감사하죠. 한국에서 오셨어요?" 내가 말했다. 아주머니는 아니라고 했다. 두 분은 네덜란드에서 20여 년을 함께 살며 암스테르담에서 한식당을 운영하신다고 했다. 나와 친구는 우리에게 대화를 건네고 감자칩까지 내어 주신 두 분께 감사했기에, 내려가면서 두 분의 말동무가 되었다. 두 분께서는 어제 날씨가 좋지 않아 오늘 일주일 치 식량을 포기하고 다시 티켓을 끊어 올라왔다는 우리의 한탄에 걱정하시며 한편으로 대견스럽다고 하셨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니 어느새 케이블카는 지상에 도착했다. 나와 친구는 아쉬움을 전하며 두 분께 인사했다. "혹시 암스테르담 오면 만날 수도 있겠네. 여행 조심히 다니고, 자 이거 받아요." 아저씨께서는 자그마치 50유로를 꺼내어 우리에게 주셨다. "너무 큰 돈인데... 감사합니다. 암스테르담 가면 꼭 찾아갈게요." 나는 너무도 감사한 나머지 아주머니께 사진 한 장을 기념으로 찍자고 졸랐지만, 아주머니는 멋쩍어하시며 "사진은 무슨 사진이야~ 그냥 몸 건강히 여행 마치고 한국 가요."라고 말씀하셨다.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반갑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무서운 존재도 같은 한국인들이라고 한다. 여러 여행 커뮤니티에서는 한국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였다거나, 사기를 당해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도 처음에는 낯선 한국인들을 경계하고, 다가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두 분은 배고픈 우리에게 50유로라는 거액을 내어 주시며 우리를 격려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 틈에 따뜻한 온정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아직도 그 두 분의 행복한 미소가 눈에 선하다. 네덜란드에서 휴가 차 샤모니에 와서 관광을 하는 중이라는 두 분께서는 지금 어디쯤 계실까. 암스테르담에서 그 미소로 낯선 외국인 손님들을 반갑게 맞고 있을까. 이 글을 통해 작게나마 다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안녕하세요. 이름도, 배경도 모르던 낯선 저희들에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두 분 덕분에 저희는 일주일 동안 걱정했던 식량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다음에 네덜란드를 방문할 일이 생긴다면, 꼭 한식당에 들를게요. 저희가 갈 때까지 몸 건강히 지내세요!"
이제 진짜 기차를 타러 간다. 작고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샤모니를 뒤로 한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부여잡고 기차에 탔다. "여기 앉아도 되나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물었다. "어! 저희 기억 안 나세요?" 젊은 여자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기억난다고 답했다. 그녀는 샤모니의 호스텔 카운터 직원이었다. 친절한 미소는 여전했다. 우리는 공석이 아닌 사석에서 처음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이름 기억나요?" 우리가 물었다. "음... 미안해요. 사실 많은 여행객들이 왔다 가니까 이름을 다 외울 수가 없어요. 특히나 아시아인들은 이름이 어려워요." 그녀가 답했다. "괜찮아요. 우리 이름은 강기, 희원이에요."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아! 기억나요. 아무튼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집으로 가고 있어요. 내 이름은 사브리나예요." 사브리나는 호스텔에서 퇴근한 후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우리는 기차 안에서 한국 문화나 여행과 같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브리나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사브리나가 내려야 할 역은 금방이었다. "나 여기서 내려야 해요. 좋은 하루 보내요!" 아쉬웠지만, 기차 안에서의 짧았던 대화는 샤모니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