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이야기.44

44.방황

by Jude

사춘기의 특별한 반항도 없이 조용히 지나간 막내였다. 어머니나 언니들에게 크게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자랐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나 말고도 늘 있었으니까. 굳이 나까지 보태지 않아도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고 우리 집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거기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까지 있어서 누구에게 싫은 소리나 모진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모양새였다. 싫어도 참고 분쟁이 싫어서 피하고 바보처럼 헤헤 웃어넘기곤 혼자 마음 상해 끙끙 앓곤 했다. 그러던 내가 인생의 모든 반항과 사춘기의 모든 감정 기복을 한 통에 쌔려 넣어 갈아 마셔버린 듯 미쳐버렸다.


매일 술을 마시고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욕을 하고 화를 내고 끊어버렸다. 다음 날 후회하고 사과하고 했지만 내 마음에 그런 무시무시한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랄 뿐이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고 내게 가장 마음 써준 넷째 언니에게까지 내가 쌍욕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해서 나도 놀랐다.


또한 언니는 내 생일을 맞이해 굉장히 고급 식당을 예약해 남자 친구분과 함께 식사를 제안했다. 그런데 나는 그날도 와인을 미친 듯이 먹고는 울고 소리 지르고 화내고 와버렸다. 언니는 몹시 민망해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내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냥 너는 포장마차나 데려갔어야 했어."라고 했다.


사실 그때 나는 포장마차가 더 편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그런 곳에 갔다면 내 반응은 달랐겠지만 때늦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한 나에게 그런 곳은 불편하고 어렵기만 한 곳이었다. 난 그런 곳에서 인형처럼 곱게 앉아 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미친듯한 분노에 걸어오면서 울고 또 울었다. 너무나 서럽고 힘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이렇게도 없다니.


가장 가까운 가족마저 '이제는 훌훌 털고 잘 살아야지, 잘 사는 게 복수하는 길이야.'라는 부담을 자꾸 내게 주고 있었다. 난 이렇게 아픈데. 이렇게 아파 가슴에서 피가 철철 나고 있는데. 왜 자꾸 일어나라는 거야. 왜 온전히 서지 못하면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는 거야. 그냥 지금은 좀 지켜봐 주고 그냥 위로해주고 많이 힘들지라고 다독여주면 안 되는 거야? 내 곁에 아무도 없었다. 지구 끝에 혼자 남겨진 느낌. 광활한 우주에 나 혼자인 기분. 모두가 웃으며 행복한데 날 보고 쑥덕거리며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외로움.


미칠 듯이 외로웠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이 숨도 못 쉴 정도로 올라왔다. 매일 소주 한 병 이상을 마시며 혼자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집에 오는 길에 낯선 사람들과 낯선 동네에 다시 한번 외로움을 느꼈다. 꺽꺽 거리며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난 어머니의 염려스러운 전화에 혼자 밥도 잘 먹는다고 혼자 저녁에 삼겹살도 먹고 회도 먹고 못 먹는 게 없다고 했지만 이내 술을 먹고 인사불성이 되어 집에 오곤 했다.


그 당시 넘어져서 다친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한 번은 술을 먹고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을 아스팔트에 갈았다. 내 얼굴에 피가 줄줄 흘렀다. 그닥 아프진 않았다. 망가지며 느껴지는 묘한 쾌감까지 들었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오토바이가 너무나 타고 싶었다. 내 주위에 오토바이를 알려줄 사람이 딱히 생각나지 않아서 난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오토바이 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오후 4시 즈음이었던 거 같은데 난 이미 만취였고 넘어져서 얼굴과 다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우리 집에 와서 날 본 그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한 마디.


"왜 이렇게 살아..."


몰라? 네가 날 버렸잖아. 그래서 내가 먼저 널 버렸는데 죽도록 힘들어.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그 사람은 오토바이를 타지 말라고 하곤 저녁이나 먹자며 조개구이를 사줬다. 비참하고 한편으론 나 이렇게 망가져서 살아. 속이 시원하냐? 이런 이상한 반항심도 일어났다. 결국 오토바이는 단 한번 타보지도 못하고 모두의 격렬한 반대 속에 다시 팔아야만 했다.


또 한 번은 술 먹고 발목을 심하게 접질려 119를 불러 병원에 가야 했다. 술을 먹고 계단이 없는 데 있는 줄 알고 완전 발목으로 땅을 디뎠다. 30분 정도를 너무나 아파서 땅에서 뒹굴며 울부짖었고 지나가던 사람이 겨우 부축해서 집에 왔으나 다음날 병원에 갈 수 없을 정도로 발목이 아팠다. 결국 119를 불러 병원에 갔고 다행히 인대나 뼈가 어떻게 된 건 아니지만 깁스를 하고 목발 생활을 한 달 정도 해야 했다. 1년이 지났는데도 왼쪽 발목은 여전히 아프고 얼굴에는 살짝 흉터가 남아있다.


술을 먹고는 매일매일 그 사람의 가족들이나 친구에게 전화해서 사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비정한지. 치사한 지. 야비한지. 나와 함께 한 세월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나의 이런 행동을 견디다 못한 그 사람은 결국 서울 근교의 아파트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기 들어가 살라고. 난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 사람에 대한 세월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받기로 했다.


속물이라고 욕해도 좋았다. 네가 나에게 준 상처와 빚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아니, 처음부터 내가 요구한 대로 재산을 분할했다면 이렇게까지 상실감과 서운함에 내가 망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재산 분할을 하며 뭐 하나 나에게 주기 아까워 벌벌 떨던 너의 모습과 그런 걸 요구하냐는 기가 차 하는 너의 그 황당해하는 표정. 그런 것 하나하나가 나에게 상처가 되어 박혀있는데.


그리고 언니의 권유로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 상담을 받으며 나는 내 안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서운함'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 그 사람에 대한 서운함. 나 스스로에 대한 서운함. 상담을 받으며 나의 마음은 많이 좋아졌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진심 어린 눈물을 나 대신 흘려주고. 나의 이야기에 마음을 동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고, 그 과정만으로도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다들 나에게 이제 잘 살아야 한다고 다그치듯 몰아세우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사춘기 소녀처럼 당황스럽고 화가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처음 남자 친구였고 22년간 사귀다 헤어짐도 처음이었고 이혼도 처음이었는데 빨리 원래의 나로 돌아와서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던 그 무던한 딸이자 동생 역할을 하길 원하는 그들이 미웠다. 정말 싫었다.


나의 방황은 거의 1년을 갔다. 가게는 엉망이 되었고 모아놓았던 돈도 썰물처럼 사라져 갔다. 그리고 이혼하고 1년이 안된 다음 해 3월. 그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 결혼하게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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