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이야기.43

43.이혼

by Jude

1월에 이사한 후 2월과 3월이 지났다. 그리고 쌀쌀한 4월 우리는 이혼을 했다. 가정법원 앞에서 만난 우리는 여느 때처럼 장난스럽게 그리고 의연하게 서로를 대했다. 대기하는 회의실에서 대화를 하는 부부는 우리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한편으로 그래도 이 사람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겠지라고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호의적이었고 어떻게든 네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말 거라는 그 사람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있어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합의 이혼은 정말 쉬웠다. 서류도 간단했다. 우리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양육권이나 위자료 등등 걸릴 문제가 없었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은 걱정은 말라는 듯이 금세 우리 차례가 되었다. 판사실에 막상 들어가려니 떨렸다. 나는 노란 코트를 입고 까만 구두를 신고 판사 앞에 섰다. 판사는 딱 두 가지를 물었다.


"000 씨, 000 씨 맞으신가요?

우리는 네 라고 대답했다.

"000 씨와 000 씨는 서로 이혼에 합의하시나요?"

다시 우리는 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끝났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빨리 나오는지 알게 되었다. 판사의 도장이 찍힌 서류 같은 걸 받아서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구청에 제출하면 정말 끝이었다. 법원을 나오며 우리는 차나 한잔 하기로 했다.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길 했던 것 같은데 그 순간이 나쁘지 않았던 걸로 기억난다. 그리고 잘 지내라며 서로 각자의 차를 타고 헤어졌다. 마치 조금 후에 집에서 다시 만날 사람들처럼 그렇게. 그는 다음날 바로 구청에 서류를 제출했고 우린 법적으로 완전히 남남이 되었다.


이혼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이제 나로서 당당히 잘 살고 말 거라고 다짐했는데 이상한 패배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혼하고 난 이틀 후였다. 밤 9시 즈음되었을까.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 내용이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사람의 요지는 이랬다.


'이제 서로에게도 좋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하니 우리가 개인적인 일로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언제든 기댈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이제와서는 완전히 남남으로 지내자는 이야기였다. 물론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생기겠지. 그건 당연히 납득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연락도 하지 말자는 그 사람의 일방적인 통보는 나에게 서서히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일이었다. 우습지만 난 아직 나 혼자 설 자신이 없었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심 그의 사탕발림 같은 날 돌봐주겠다는 말이 위안이 되고 서서히 자립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동안의 모습들은 가식이었던 걸까. 저녁을 난생처음 해주고 내가 못 사는 모습은 절대 못 본다고 하던 그 모습은 다 거짓이었던 걸까. 난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다. 너무 화가 났다. 이 모든 게 그 사람의 연극과 각본이었고 난 거기에 넘어간 바보였다. 내가 혹시라도 재산분할 소송을 할까 봐 연기라도 했던 걸까.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혼 후 날 괴롭히는 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미칠듯한 외로움. 신분이 하락한 듯한 기분. 그리고 너무나 즐거워 보이는 그 사람의 카톡 프로필 사진. 그의 사진은 가관이었다. 친구들과 샴페인 잔을 들고 전성기 때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사진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어딘가 가서 세상 즐거운 듯이 V자를 그린 모습. 그것은 정말 승리의 V 같았다. 나는 점점 무너져가는데. 나는 점점 미쳐가는 듯 잠식되어가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속에서는 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녁에는 소주 한 병을 매일 비웠다. 알 수 없는 분노가 나를 비롯해 내 주위 사람들까지 다 태워버릴 듯 일어났다. 생각보다 이혼은 힘든 것이었다. 가장 친했던 22년 친구를 잃어버린 공허함. 내가 간과했던 건 그 부분이었다. 그 빈자리가 배우자로서의 빈자리보다 클 줄은 몰랐다. 시답잖은 농담을 하던 시간, 밤에 신당동 떡볶이를 먹으러 가던 일, 장난 가득한 말투로 놀리던 순간들. 난 그런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존재를 잃은 것이다. 내가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 그 사람은 나에게 생각 이상으로 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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