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이사
그렇게 차곡차곡 너의 짐, 나의 짐이 나누어지고 시간은 날아가듯이 하여 이삿날이 되었다. 나는 이미 자포자기 심정이었기에 그릇이고 뭐고 그냥 다 가져가라고 했다. 내가 필요한 건 사면 그만이었다.
냉장고 또한 사야 했지만 아무 모양도 없는 메탈 컬러의 소형 냉장고를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골랐다. 내가 무언가를 사면서 이렇게 큰 고민 없이 사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은 볼 때마다 흉물스럽기 짝이 없는 업소용 같은 냉장고를 보면서 미안하다... 참으로 생각 없이 너를 샀구나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소파도 티브이 다이도 고민 없이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난 원래 가구는 인터넷으로 웬만해서는 사지 않는다. 직접 만져보고 질감과 부피를 느껴보고 사는데 이번에는 그냥 그냥 그냥. 크지 않은 것으로 비싸지 않은 것으로. 작은 내 집에 어울릴 만한 것으로 망설임 없이 결제했다.
그러나 조명만은 고심해서 고르고 또 골랐다. 올 리모델링이 되어 있는 집이었지만 세입자용 합리적으로 수리된 집이어서 낭만은 요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난 조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그 흉물스러운 +모양, -모양인 수학적인 등을 떼어버리고 낭만이 있는 나만의 등으로 조명만은 바꾸리라 생각하며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등을 세 개 정도 샀다. 안방, 거실, 주방 쪽 등이었다. 그러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 등들은 상자 그대로 지금 이사한 집의 베란다에 처박혀있다.
결국 난 수원으로 이사해서도 그 조명들을 바꾸지 못했다. 아니, 바꾸지 않았다. 그냥 그곳에 아무 애정도 아무 감정도 없었다. 집을 얻을 때만 해도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아름답게 꾸며야지, 나만의 독립된 걸음의 첫 시작이다라고 야심 차게 생각했던 것이 막상 집을 얻어 나가게 되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도리어 공허하고 공허했다.
이사하기 전 집의 보증금이 2000만 원이었는데 집을 얻기 위해 그 반인 천만 원을 달라고 하자 그 사람은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에게 "그 돈을 달라고?"라고 되물었다. 아마 자기의 입장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고 뻔뻔한 행동으로 보였나 보다. 하지만 나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 "나도 보증금이 있어야 집을 얻을 거 아니야?"라는 말에 그 사람은 정말 고심 고심하는 표정을 짓더니 알겠다고 했다. 귀하게 얻은 천만 원이었다. 그리고 그게 내 보증금의 전부였다.
이사하는 날도 난 일을 해야 해서 오후 늦게서야 부랴부랴 내 수원 집에 도착했다. 견출지대로 짐들은 논리 정연하게 자리를 찾아와 있었다. 자리를 잘못 잡은 유일한 짐은 광명으로 가 버린 단 하나의 물건이었다. 그 불쌍한 존재는 바로 우리가 쓰던 밥상 겸용 노트북 겸용으로 사용하던 접이식 상 하나. 그러나 나는 며칠 뒤 그마저도 그 사람의 성화에 못 이겨 내 집 앞에 외로이 놓여있는 '수원'이라고 붙여있는 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