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이야기.41

41. 짐정리

by Jude

일단 그 사람의 마음이 정해지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사람은 마치 이혼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자기만의 프로세스로 일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이혼하기로 나서 처음으로 그 사람이 차려 준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어떤 심리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이왕 헤어지기로 했으니 이제라도 좀 잘해주자란 생각이었는지 감언이설로 나를 현혹해 내 입에서 재산분할을 하자는 말을 하지 않게 하려고 한 건지.


이사와 이혼이 훨씬 앞 당겨져 버렸기 때문에 일의 진행이 급해졌다. 하지만 워낙 그 사람이 잘 준비? 했기 때문에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단지 내가 너무나 꼴 보기 싫었던 건 오히려 그 사람이 너무나 잘 준비하는 그 모습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거실에는 온갖 짐이 쌓여있었다. 한 방에는 차곡차곡 상자가 쌓여갔는데 상자에는 내 이름이 쓰인 것과 자기 이름이 쓰인 것 그리고 버릴 것이었다. 집에 오면 심란함이 극에 달해갔다. 처음에는 내 짐에는 내 이름을 쓰더니 나중에는 '수원'으로 바뀌었고 자기의 것은 '광명'으로 바뀌었다.


하루는 한 상자에 '수원 잡다한 물건'이라고 쓰여있는 걸 보고는 상자를 열어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거기에는 내가 그 사람이 군대 갔을 때 100일 동안 일기를 써준 노트가 들어 있었다. 난 순간 이성을 잃고 그 사람에게 울면서 소리쳤다. 어떻게 이걸 내 짐에 넣어 놓을 수가 있어?! 네가 찢어버리든 태워버리든 네가 가져가야지 이걸 왜 내 짐에 넣어놨어?! 분노가 머리끝까지 올라왔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그 사람은 이런 대답을 했다.


"그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서..."


자기가 마음이 아프면 나는 도대체 어떨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이토록 지독하게 이기적일 수 있을까. 아무튼 버리든 말든 가져가라고 했다. 괴로웠다. 그 사람은 날 어떻게 생각한 걸까. 나는 뭘 기대한 걸까. 아픈 추억도 상처도 감싸주지 못할 사람인데 뭘 바랐던 걸까. 다시 한번 나의 인생이 정말 더럽게 아까웠다. 겨우 이딴 인간을 위해 그렇게 살아온 걸까. 선한 척 착한 척 포장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실패했다. 그 포장지는 너무나 얇디얇아 조그마한 모서리에도 찢어져버리는 그런 싸구려였다. 그걸 난 지금까지 비단처럼 보고 있었던 걸까. 우습고 한심했다.


그 후로 또 한 번의 이사를 했지만 난 아직도 그 상자들을 열어볼 수가 없다. 특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있는 그 상자들을 열기가 두렵다. 상자를 여는 순간 지뢰처럼 어떤 추억의 폭탄이 터져서 그 파편에 살이 터지고 피가 튀고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그 상자들은 쌓여있고 난 그 상자들이 쌓인 방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무섭고 두렵다.


그 사람의 짐 정리는 날 미치게 했다. 집이 올 때마다 거실에 내 짐을 한가득 꺼내놓고 버릴 것과 쓸 것을 나누게 했다. 그러면서 나머지는 다 자기가 한다고 했지만 나에게 쉴 시간은 전혀 없었다.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사람 도대체 뭐지. 프로 이혼러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우리 집 텔레비전과 에어컨에는 아직도 그 사람의 삐뚤한 글씨로 '수원'이라고 쓰여있다. 너무 보기 싫어서 떼려고 했는데 어찌나 잘 붙는 견출지로 붙여놨는지 물에 불려야만 떨어질 것 같다. 딱 그 사람 같은 딱지들이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짐 정리가 진행되면서 이사가 본격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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