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이야기.40

40. 진행

by Jude

그런 사람이었다. 한 번 아닌 건 절대 아닌 사람. 첫 명절 때 자기보다 8살 차이 나는 우리 첫째 언니랑 우리 부모님이랑 다투고 자기는 잘못한 게 없다고 한 달 동안 처가에 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울고불고 사정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냥 죄송하다고 한 마디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는데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란 걸 너무나 잘 알기에 그 사람 입에서 이제 이혼이란 말이 나왔을 때 이제 정말 이혼이구나 생각했다. 이혼을 하기로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무거운 쇠사슬로 묶였던 심장이 자유롭게 뛰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상한 사실은 그 사람 또한 오히려 이혼하기로 하고 나서 나에게 더 잘해줬다.


이혼하기로 하고 나서부터 처음으로 그 사람이 밥을 차려 줬다. 저녁에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오면 그 사람은 밥을 차려서 "같이 먹을래?"라고 물었다. 난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래"라고 대답하고 우린 아무 일 없는 보통 부부처럼 밥을 같이 먹었다.


재산이랄 것도 없지만 재산을 나눌 때도 우린 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처럼 이건 내가 갖고 저건 네가 갖고, 에이 그건 너무 욕심부리는 거 아니냐, 난 이 것만은 꼭 갖고 싶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재산을 나누면서 다시 한번 이 사람이 나에게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내가 요구하는 조건이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정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은 실컷 자기가 죽을 동 살 동 해서 만들어 놓은 재산을 내가 한 것도 없이 가져간다고 생각했다. 비참했다. 정말 이 사람은 내가 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빈 말이 아니었구나.


내가 서울 아파트를 가져오고 싶다고 하자 그 사람은 '어떻게 서울 아파트를 달라고 할 수가 있어?'이렇게 말했다. 감히 네가. 한 것도 없는 네가 서울 아파트를 달라고? 이런 뉘앙스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고집에 가까운 의견을 피력한 결과 겨우 서울 아파트 한 개와 빌라 하나를 가져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무 초라해지고 억울한 조건이었다. 나머지는 다 그 사람 차지였다.


경매를 하고 임장을 하고 내가 했던 모든 것은 그 사람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 사람에게는 자신만 있었다. 잘 살던 도련님에서 무너진 집을 다시 한번 세우고자 해서 나름 자산을 이뤄가는 도련님. 거기에 난 자신의 영양가만 빼먹고 도망가려는 거의 꽃뱀 같은 취급을 당했다.


그 당시 살던 집은 월세였는데 기한이 다음해 6월이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빨리 들어오고 싶다고 이사비를 준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 상황도 이런 상태여서 빨리 이사를 나가기로 했다. 그때가 12월이었는데 그 사람은 굉장히 날 생각해 주는 것처럼 말했다. 아마 연말이 지나면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해서 물건이 없을 테니 지금 빨리 집을 알아보라고.


난 또 그 사람이 그래도 날 생각해주는구나 싶어서 얼른 집을 알아봤다. 하지만 보증금 1000만 원에 50만 원 월세를 생각하는 나는 그 집이 그 집이겠거니 싶기도 하고 약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처음 가본 동네의 첫 집을 계약해버렸다. 일단 낡았지만 올수리가 되어 있는 집이었다. 이보다 더 나은 집이 있겠나 싶기도 하고 선택이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같이 이사를 가야 할 곳을 찾을 때는 보증금 3000에 70만 원짜리 외곽 아파트를 말하던 그 사람은 이곳저곳 알아보더니 내 입장에서는 어이없게도 1억에 100만 원 월세, 그것도 자기 고향이던 광명의 새 아파트를 구해선 계약을 했다. 그 사람의 새 집 조건은 까다로웠다. H사의 오토바이와 자기의 애마인 B사의 차를 지하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는지, 방과 구조는 맘에 드는지.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빌라를 알아보는 듯싶더니 덜컥 그 비싼 집을 계약하고 오는 사람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1억이란 돈이 어디서 났단 말인가. 우리 어머니의 빚을 갚아도 될 돈인데 그건 갚지도 않고 자기 보증금은 쓸 수 있었단 말이가. 내가 1억이 어디서 났냐고 묻자 그 사람은 "ㅋㅋㅇ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받았다"라고 했다.


그럼 진작에 우리 어머니의 대출을 갚았어야지란 생각이 저절로 들면서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 사람은 애초에 그 돈을 갚을 생각이 없었다. 그 돈을 갚는 건 내 몫으로 하고 다른 집에 걸려있는 대출은 자기가 가져가는 조건으로 합의서를 썼다. 합의서를 쓰면서도 그 사람은 나에게 계속 강조했다. "전업주부는 30프로도 못 가져가는 거 알지?" 가장 후회되는 것은 재산분할 재판을 했어야 했는데.


싸우기 싫어서 더 추해지기 싫어서 그리고 어머니의 만류로 그냥 좋은 게 좋은 걸로 넘어가버린 게 가장 후회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숨겨놓은 재산이 있나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 추측과 의심만 내 머릿속에서 난무할 뿐이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그 사람의 계획과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 같다.


이혼하기로 하고 나서부터 저녁을 차려주기도 하고 나에게 "난 네가 못 사는 모습은 정말 못 보겠어. 내가 어떻게든 잘 살도록 해줄 거야."라는 멘트를 날리기도 하고. 바보같이 그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원하는 결과를 유도하기 위해 무슨 말이든 무슨 행동도 할 수 있음을. 난 바보같이 또 그 사람을 믿어버렸다.


이혼하고 나서도 그 사람이 날 어느 정도 그래도 돌봐주겠거니. 우리가 원수처럼 밉게 증오하면서 헤어진 건 아니니까 그래도 서로에게 연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친구처럼 지낼 수도 있겠거니 이상적인 바보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이전 14화나의 이혼이야기.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