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남보다 못한 사이
"언니, 그 인간 결혼한다면서?"
적개심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만 그 사람의 결혼이 이르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였구나. 나만 분한 건 아니였구나. 그렇다고 하더라 나는 애써 덤덤한 척 대답했다.
그 동생은 한참을 그 사람의 결혼에 대해 성토하더니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요지는 이랬다. 씁쓸하지만 나의 예상대로 그 사람은 내가 아기를 낳기 싫어해서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과 내가 매일 술을 먹고 일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늦게 들어왔다는 둥 거기서 나아가 있지도 않은 사실 - 내가 빚을 내고는 갚지도 않는다는 등 내 흉을 보고 다닌다는 내용이었다. 거기다 목사님까지 합세해 내가 아이를 낳기 싫어해서 그 사람이 이혼할 수밖에 없었다는 피해자임을 증거 하듯 이야기하고 다니며 그 사람의 결혼식에 여러 사람을 오도록 설득하듯 말하고 다닌다는 사실에 나의 이성은 무너졌다.
난 주변에서 왜 이혼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뿐더러 설사 물어봐도 이것저것 문제가 좀 있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지 그 사람이 나의 22년의 세월을 무시했고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마지막까지도 나에 대한 예의를 요만큼도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분노케 하고 또 분노케 했다. 결혼하기로 했으니 이제 정말 연락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참으면 병이 날 것 같았다. 난 분노로 덜덜 떨면서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침착하게 조곤조곤 따지리라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어느새 나는 미친 듯이 울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너무나 억울한 눈물이 참지 못하고 서럽게 터져 나왔다. 왜 그렇게 말하고 다니냐고, 교회 사람들이 다 알고 말이 돌고 돌아 나한테까지 이렇게 들려오게 해야 했냐고, 왜 없는 일까지 만들어서 말하냐고! 그 사람은 연기인지 진심인지 정말 놀라서는 자긴 정말 친한 형 한 명한테 밖에 말한 적 없고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 정말 정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왜 없는 일까지 만들어 이야기했냐고 묻자 자기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지도 모르겠다고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더 말할 필요성도 더 응당한 처벌도 무의미해진 나는 왠지 협박을 하고 싶어서 결혼식은 어디서 하냐, 몇 시에 하냐 이런 구차한 질문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으로는 결혼식에 뛰어들어 정말 난장판을 만들었다 말았다를 수백 번 했다. 분해서 끙끙 앓다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 너무나 속이 상했다.
사업상 술자리도 많았고 무엇보다 내가 무너진 그날 이후 그 사람이 보기 싫어 늦게 들어가곤 했던 것이 내 책임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다시 한번 여자와 남자의 사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업차 남자들이 술자릴 가지면 그럴 수 있는 거지만 여자에겐 책이 된다는 것을 피부에 와닿게 느꼈다.
서로에 대해 말을 할수록 말이란 눈덩이처럼 불어 사람들의 안주거리나 되는 것이 현실이거늘 당장의 자기의 난처함을 피하기 위해 혹은 당위성을 위해 자신이 피해자임을 자청한 그 사람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이해해주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이혼하고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지 않을까는 나의 사치이자 낭만이었다. 이렇게 합의 이혼을 해도 주변 사람들의 말이 흉기가 되어 내 몸을 찌르는 일이 있는데 소송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말 우린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람의 결혼 이틀 전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