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이별은 언제나 갑자기
그 사람의 결혼 후 나는 그 사람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부동산 서류 관련 일을 처리해야 할 때도, 재계약건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 같았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하루에 몇 번이고 전화를 해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제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절뚝절뚝. 한쪽 다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몰라서 구청을 세 번이나 다시 가고 주민센터를 갔다가 다시 은행에 갔다가. 며칠을 고생했다. 하지만 고맙게도 이런 구멍 투성이인 나를 도와주는 친구가 있었다. 몇 번이나 잘못 준비한 서류 때문에 며칠을 왔다 갔다 함께 해주면서도 용기를 주는 친구. 그 사람이 아니라도 나에게 소중한 존재들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귀찮고도 내게는 한없이 어렵기만 하던 행정업무를 무사히 마쳤을 때 묘한 해방감마저 들었다. 이제 난 네가 없어도 설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참고 참았던 그리움이 몰려와 고양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그 따스하고도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고 싶어졌다. 결국 나는 참다못해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고양이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만약 우리가 자녀가 있었고 양육권을 그 사람이 가져갔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조심스럽고도 자존심 상하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내 제안에 그 사람은 자기 와이프가 없을 때-평일 낮에 보러 오라는 조건을 걸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이 들었다. 내겐 고양이들을 볼 권리가 있다고! 분노가 솟아올랐다. 사실 그 집에 가는 것도 거북한 일이었는데 내가 그 사람의 와이프의 눈치까지 보며 고양이들을 봐야 하다니. 내 고양이들이기도 한데. 화를 참고 참으며 말했다.
"난 언제든 보고 싶을 때 고양이들을 보러 갈 거고, 그건 내 마음이야. 당신 와이프의 눈치를 보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은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고 나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모멸감마저 들었다. 자녀를 보고 싶은 이혼남이 삐쭉삐쭉 망설이며 '이번 주말에 애들 보러 가도 될까?'라고 묻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내가 같은 입장이 되다니. 물론 그 사람이 데리고 키우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경제적 여건이 상황을 이렇게 좌지우지하는 것이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화가 좀 가라앉자 그 와이프의 입장도 고려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금요일 낮에 고양이들을 보러 가겠다고 했다. 금요일은 그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라 집에 있고 와이프는 출근을 해서 집에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에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너 아무래도 오늘 빨리 고양이 보러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현자 같은 친구이자 타로카드도 보는 나의 가장 친하고 가장 신기하며 소중한 친구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불안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와 전화를 끊자마자 그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그 사람은 울고 있었다.
"타워-둘째 고양이-가 많이 아파. 림프암 이래."
뭐? 뭐라고? 머리가 띵했다.
"지금 어디야?"
"병원인데 오래 못 버틸 것 같아. 최대한 빨리 와."
이거였구나. 친구의 불안함은 이거였어. 나는 미친 듯이 광명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타워. 이렇게 널 보내야 하다니. 이렇게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날 용서해. 널 보러 가지 못한 용기 없던 나를, 바쁜 척하며 외면했던 나를 용서해. 울면서 나는 액셀을 밟고 또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