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인지 푸념인지
자그작. 자그작.
이어폰을 끼고 학원이 끝나 돌아오는 밤 길.
요즘은 열 시만 되어도 길에 사람이 많지 않다.
오늘같이 흉흉한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노래 사이로 자그작 자그작 설얼은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랑 제일 친한 301호 할머니가 오늘 말기암이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엄마는 동네 한 바퀴 운동을 하려다 그 이야길 할머니네 아들을 만나 전해 듣고는 운동할 맛이 안 나서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건 뭘까. 늘 보아오는 탄생과 죽음. 우리는 어찌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당장 오늘 밤에 죽을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생각이 든다면 우린 잠이 들 수 있을까. 누군가 하늘의 뜻을 전하러 왔다고 하면서 당신은 내일 새벽 다섯 시에 죽을 것이다라는 계시를 받는다면 나는 오늘 밤에 잠들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뻔뻔하게 오늘 밤 잘 것이다. 안 죽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계시를 받은 적도 없고 미래도 모르지만 내가 오늘 밤 죽지 않을 것이란 것은 확신한다. 무슨 근거인지 모르지만. 그리고 내일 아침 일어나기 싫어서 버둥거리고 있을 자신을 당연히 확신한다. 사실 당연한 건 없는데. 미래도 알 수 없는데. 그러다 보면 또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게 맞는 건지, 또 어떤 삶은 비루하면서도 고래 심줄같이 질겨서 하루하루 버티며 끊어지지 않고 살아가는 삶도 있는데 콱 죽어버리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누구나 죽는다. 그런데도 아무도 죽음이 없는 듯이 살아간다. 출퇴근하는 이들이 죽을까 봐 벌벌 떨지는 않지 않은가. 밀린 일들과 쪼임 당하는 회사 생활에 떨지언정.
우산을 써도 눈이 바람을 따라 앞에서 오는 바람에 우산을 쓰나 마나 하지만 그래도 우산 안에 머리를 디밀어 본다. 앞에 가는 연인이 한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남자가 일부러 우산을 자기 쪽으로만 쓴다. 여자가 우산에 들어가기 위해 남자 쪽으로 더 가까이 붙는다. 남자는 그럴수록 우산을 더 자기 쪽으로 가까이 쓴다. 여자는 다시 남자에게 더 가까이 간다. 둘이 잠시 실랑이를 하는 듯싶더니 결국 둘은 사이좋게 우산을 쓰고 팔짱을 낀 채 걸어간다.
머리에서 연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그 연인을 보니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보기 좋다. 날은 춥지만 저런 장면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예쁘구나.
자그락. 자그락.
집에 돌아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건조기가 알리음을 울린다. 따끈한 빨래를 안고 들어오며 이상하게 행복했다. 이 따끈한 빨래 안에 파고드는 고양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묘하게 평안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