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얄미운 사람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by Jude

사람이 얄미워지는 건 두 종류가 있다. 한 순간 얄미워지거나 자꾸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내게 맞지 않는 옷 같은 불편함을 넘어 상대방이 자기가 원하는 불편한 그 옷을 나에게 억지로 껴 입히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거나. 얄미운 건 미운 것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이다. 미운 것에는 증오와 분노가 있다. 얄미운 감정 밑에는 증오와 분노보다는 괘씸하고 가증스러움이 있다.


그 사람이 얄밉다고 생각한 지는 꽤 되었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그냥 그래도 날 상당히 챙겨주고 나와 함께 해주고 날 위한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누구나 미운 구석도 있고 예쁜 구석도 있고 그렇게 여러 감정이 공존하는 게 사람 아닌가. 그러나 그 상대가 가장 친한 사람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존재일 때 나는 힘들어진다. 처음에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좋은 동료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점 아니다 아니다 싶은 생각을 덮고 덮으며 그래 나랑 다른 부분도 있다 생각하고 넘어가서 지금까지 왔다.


그러나 이제 당당히 말하리라. 난 그 사람을 얄미워한다. 그 사람의 자기중심적인 방어기제와 본인만을 위한 즐거움을 추구하며 내게 “너도 원했잖아, 그래서 너도 같이 나랑 논거잖아.”라고 합리화하는 그녀가 너무나 얄밉다. 본인에게 조금만 불리하거나 자기 기분에 맞춰주지 않으면 바로 다른 핑계를 대며 전화를 끊는 그녀를, 자기가 조금만 공격당하는 기분이 들거나 비난을 들으면 갑자기 몸이 아파서 집에 가는 그녀를, 매일 전화해 한 시간 이상 잡담을 하며 내 시간을 빼앗아간 그녀를 나는 얄미워하고 있다.


오늘 그녀는 무언가 내게 기분이 좋지 않다. 평소 같으면 전화로 기본 한 시간 통화하며 시간을 보냈을 텐데 마치 기분 상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말하듯 단답형으로 매우 귀찮아하며 대꾸를 해서 난 금방 전화를 끊었다. 굳이 그녀의 기분을 물어보거나 할 체력도 없을 만큼 정말 오늘 몸이 힘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감정적으로도 이제 나도 할 만큼 했다는 한계점이 왔다. 베트남 여행을 가기 위해 수영복을 빌려달래서 수영복을 챙기고 베트남 돈이 구하기가 어렵대서 혹시나 넷째 언니에게 물어봐 달래서 구한 베트남 돈 조금이랑 일본에서 선물로 사 온 술과 과자등을 같이 담아 보냈는데 받고도 아무 말이 없다. 뭔가 심사가 단단히 꼬인 듯하다.


아휴, 나도 모르겠다. 나이 먹을수록 이런 관계에 피곤함이 더해진다. 차라리 뭣 때문에 화가 났다고 말이라도 해주면 내 행동을 돌아보기라도 할 텐데 “언니 나 맘에 안 들죠?”를 시전 하고 싶은 굴뚝같은 내 마음. 그렇게 내 마음과 그녀에 대한 내 의식을 들여다보다 보니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내가 그래도 그녀보다 어떤 면에서 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오만함. 나도 나 자신의 잣대로 끊임없이 그녀를 판단하고 한심해하고 가증스러워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살까. 하루하루 자신 스스로도 나아짐 없이 사는 것에 대해 죄책감과 회의를 품어놓고 변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을 합리화하고 방어하기에만 급급한 인간. 그러면서 나와 한 시간 동안 의미 없는 말들로 수다를 떨면서 내가 자기와 같은 노력하지 않는 모습에 안심하고 난 그래도 나보단 언니가 낫다, 남편이라도 있지 않냐라고 정신승리를 시켜주고.


얄미운 사람은 안 보는 게 좋다. 이렇게 멀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안 보고 싶으면 안 볼 수 있는 사이인 것도 다행이다. 그러다 보면 얄미움이 옅어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일단 나는 그녀와의 신념에 대한 개념부터 너무나 달라서 더는 가까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착하고 그 사람이 못 되었다가 아니라 그 사람은 힘든 성장 과정을 통해 생존 본능이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한편으론 무서울 때가 있다. 이렇게까지 치밀하다고?라는 생각에. 나도 나름 힘든 성장 과정을 지냈다고 생각하지만 생존 본능은 그저 그런 편에 속하는 듯싶다. 날 보호하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그 언니는 자신을 보호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언변도 뛰어나 순간적인 대처도 잘한다. 그냥 나랑 다른 부류의 사람인데 그동안 억지로 맞는다고 생각해서 더 상황이 안 좋아진 듯싶다. 그 언니가 나에게 ‘너 이제부터 내 친동생이다, 진짜 우리 끝까지 같이 가는 거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사실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그 앞에선 그럼, 그럼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정색하고 ‘아니, 그건 좀.’이라고 했어야 했는데. 내가 워낙 소심한 사람이라…


나이 먹을수록 곁에 둘 사람이 줄어든다. 그렇다고 날 갉아먹는 이를 두는 것은 천하의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차라리 혼자인 게 나을 수 있다. 이제 그 사람의 실체를 알았으니 더는 마음 쓰지 말고 내 할 일을 하자. 이렇게 힘든 날 힘들다는 내 말에 ‘정말 힘들었겠다.’ 한 마디 맞장구 하나 쳐주지 않는 이를 신경 쓰지 말자. 얄미운 사람이여, 안녕.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왜 나는 이리도 작은 일에 분노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