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리도 작은 일에 분노하는가

왜 너는 그리도 비열한 것이냐

by Jude

요즘 저녁에 학원에 다니고 있다. 저녁 8:30분부터 시작해서 수업은 10시에 끝이 난다. 컴퓨터 관련학원이라 수강생이 바글바글 하다. 열 시가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 위해 줄을 길게 선다. 다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새삼 깨닫는다. 나이에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수업을 듣고 세상 무표정하게 집에 간다.


오늘도 열 시에 수업이 끝나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강의실을 나섰다. 이상하게 다른 날보다 줄이 긴 듯했다. 갸우뚱하며 엘리베이터를 가만 보니 네 대 중 한 대가 이사 중이라는 알림이 뜬 채 움직이질 않았다. 강의실은 14층이고 건물은 총 16층까지 있었다. 16층에는 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15층은 학원 상담실이 있는 구조였다. 나를 포함한 다른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14층에서 내려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줄 서서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앞에 줄 서 있던 학생들 중 누군가가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16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들 우후죽순으로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고 올라갔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은 무리들은 기껏 14층에 내려온 사람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를 그림의 떡처럼 보고 보내야 했다. 심지어 일부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무시하고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올라갔다. 만원이 뜬 엘리베이터는 14층을 지나쳐 내려가기 일쑤였다. 난 화가 났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을 기다리기 싫어서 그들은 뻔뻔하게 비열한 반칙을 하고 있었다. 난 소심한 공격으로 그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람들을 어이없이 바라봤다. 난 절대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행히 나와 같은 정의로운? 뜻을 같이 한 동지들은 곧 다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문 앞 버튼 앞에 선 나는 ‘정말 저렇게 늙고 싶진 않다. 저렇게 젊고 싶진 않다.‘ 생각을 했다. 자신들의 행동이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꼬우면 당신도 똑같이 하든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꼬아서 하지 않을 것이고 비겁한 당신들의 행위에 분노할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나는 열림 버튼을 마지막 사람이 내릴 때까지 누르고 맨 마지막으로 내렸다. 마지막 내리는 두 학생이 가볍게 내게 꾸벅 인사를 건넸고 나도 같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집에 걸어오며 나는 나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는 거지 하면 될 일을 너는 왜 이렇게 분노하느냐. 그럼 너는 그렇게 떳떳하냐. 너도 너의 순간의 편리함이나 이익을 위해 충분히 그 보다 더한 짓을 하지 않느냐. 고작 이런 일에. 겨우 이런 작은 일에. 김수영 님의 시 한 구절이 절로 생각이 났다. 괜히 마음이 꿈적꿈적거려 잠이 오질 않는다.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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