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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de Apr 10. 2024

아침산책

 어제 하루 종일 아팠다. 숙취로 인한 몸살인지 근육통인지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밤에도 끙끙거리며 이틀을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 보니 진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이제 정말 그만하라고 하는 내 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술을 끊기로 했는데 모임이 있으면 한두 잔 또 먹게 되고 그럼 또 신이 나서 마구마구 들이켜 버리니 사람은 익숙했던 패턴으로 간다고 술을 마시는 게 또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그렇게 안 먹으려고 했는데 또다시 예전 패턴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후폭풍이 이렇게 날 찾아왔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일찍은 아닐 것 같지만 나에겐 일찍인 시간 8시. 시작한 지 며칠 안 된 아침요가 15 분짜릴 간단히 유튜브를 보고 따라 했다. 요가를 하다 보니 날이 좋은 것 같아 아침 산책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오래된 곳이라 나무가 정말 많고 나무가 크다. 거기다 벚꽃이랑 다른 꽃들도 매우 예쁘게 피어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마음먹은 김에 요가가 끝나자마자 간단한 겉옷만 챙겨 입고 핸드폰과 새들에게 줄 모이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집이란 참 이상한 곳이라 조금만 망설이면 날 잡고 놔줄 생각을 하질 않기 때문에 정신을 단디 차리고 맘먹었을 때 뒤도 보지 않고 “갔다 올게!”라고 단호하게 인사한 뒤 나와야 한다.


 막상 나오니 생각보단 쌀쌀하지만 기분 좋은 상쾌함이 가득한 공기와 바람이 함께 날 맞이했다. 급 기분이 좋아지면서 발걸음이 즐거워졌다. 새들이 평소에 여기저기 모여서 땅을 열심히 쪼고 있었는데 오늘은 아침이라 그런지 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속담.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먹는다.” 아, 다들 벌레 먹으러 분주하게 어딘가 갔구나. 할 수 없이 평소 새들이 자주 보이던 곳에 모이를 슬슬 뿌려주며 길을 걸었다. 나처럼 산책하시는 분도 계시고 투표를 하러 가시는 분들도 있고 운동을 하고 있는 분도 계셨다.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을까 싶은 아침이었다. 이런 아침을 매일 누워서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니 인생이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는 그냥 풀인 줄 알았던 아이들도 이렇게 예쁜 꽃을 틔우는 세상인데. 내가 너무 무관심했구나. 정말 어여쁜 세상을 보고 있으니 어제 매니저 때문에 화나고 스트레스받은 일들이 세상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촘촘하게 핀 꽃들이 신기했다. 땅에 떨어진 꽃을 살포시 올려놓으니 또 세상 예쁘기도 하지. 행복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새들이 보이지 않아서 조금 서운했지만 그래도 곳곳에 헨젤과 그레텔처럼 새 모이를 뿌려놓으며 새들이 잘 찾아 먹기를 바랐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이 아름다워 동영상으로 남기고 싶어 동영상을 찍으려고 한 참을 기다리는데 또 막상 찍으려고 하니까 바람이 불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또 못난 마음에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니 지금까지 잘만 불던 바람이 막상 동영상 찍으려고 기다리니까 안 부는 거야?



  그러다 또 문득 든 생각. PGA챔피언십 경기에서 모두 타이거 우즈의 샷을 찍기 위해 핸드폰과 카메라를 들고 있을 때 단 한 사람만은 맥주캔을 든 채 두 눈으로 우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엄청난 화제의 인물이 되었고 맥주 광고까지 찍게 되었다. 맥주회사는 “즐길 때만 가치가 있다”는 슬로건을 걸었다. ’ 내가 사진 찍는 거에 집중해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지 못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번쩍 지나갔다. 그리고 난 전화기를 내려놓고 그냥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슬슬 걸어가며 하늘과 꽃으로 가득한 세상을 즐기며 단순하게 느끼며 감사하기로 했다.


 아파트 안쪽 상가로 왔는데 노란 고양이를 만났다. 다른 고양이들은 날 무시하는데 그 고양이는 내가 눈인사를 하자 ‘냐아아아아~~’이러고 꼬리를 지팡이 모양으로 세우곤 다가와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꼬리를 지팡이 모양으로 세우고 다가오는 건 반가움의 의미이다.



 결국 편의점에 가서 이것저것 사버렸다. 삼성페이도 쓰지 않는 나인데 지갑을 안 갖고 나와서 카카오페이를 처음 써봤다. 어버버버 하며 바코드를 읽히니 결제가 되었다. 엄청 신기함!! 지갑을 갖고 다닐 필요가 없구나. 이제야 이런 편리함을 알게 되다니.



 냥님을 위한 지출은 아깝지가 않다. 기분 좋은 아침 산책 후에 애교냥님까지 만났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열심히 까서 먹이는데 갑자기 냥님이 훌쩍 일어나더니 저쪽 의자에 가서 누웠다. 아마 거기가 자기 자린인 듯했다.



 쉬바를 까주려는데 갑자기 한 무리의 귀여운 초등 남들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아이들은 냥님과 이미 친한 듯 인사를 건네며 사진도 찍었다. 내가 아는 사이냐고 물어보자 서로 여기 사는 고양이이며 뒤쪽에 범이라는 고양이와 또 한 마리가 더 있다고 대답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자꾸 살이 쪄서 이제 츄르는 금지라고 알려줬다. 짜식… 어쩐지 동글동글 하더라니. 아이들도 귀엽고 고양이도 귀엽고 귀여움 대잔치였다.



 ”날 만져라, 닝겐. “


 아이들이 나타나자 냥님은 자연스럽게 배를 까고 여유를 부리며 끼를 발휘했다. 재미있게 놀라고 하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얼마 남지 않은 새 모이를 집 근처 나무에 뿌리곤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아침 산책을 즐겨하고 싶은데 현장에 가는 날은 일곱 시엔 나가야 하니 참 곤란하다. 어찌 되었든 시간이 되는 날은 아침산책을 즐겨보자는 결론을 냈다. 무인카페에서 산 망고주스를 시끄럽도록 빨아먹으며 좋은 세상이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영원할 것 같은 행복은 없다. 우린 행복한 순간에 불행해질까 봐 더 불안하다. 영원할 것 같은 불행은 있다. 역시나 난 행복하게 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날 지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처럼 생활 속에서의 작은 행복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순간이 많아진다면 우린 빨간 머리 앤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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