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한 밤중에 자다 깬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내 발 곁에 앉아서 달빛을 받으며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난 당황했다. 엄마는 어른인데 저렇게 울다니. 무서웠다. 어린 난 “엄마 왜 그래, 울지 마!”라고 화를 냈다. 엄마의 울음은 한 참을 그치지 않았고 난 잠들었던 것 같다. 마치 꿈처럼 그 기억은 슬프게 남아있다. 지금은 엄마가 깊은 밤 딸의 발치에서 왜 그렇게 울었는지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슬픈 감정은 그대로 남아있다. 엄마는 아마 기억 못 할 것이다. 때론 나의 감정과 슬픔보다 상대방이 기억하는 나의 감정과 슬픔이 더 서글프고 잊히지 않는 법이다.
아이패드를 백만 년 만에 켰다. 먼지가 앉다 못해 떡이진 케이스를 벗겨 버렸다. 케이스의 고무는 삭아서 떨어지느라 바빴다. 얼마만의 아이패드인가. 그렇게도 사고 싶어서 눈물을 글썽일 때 전남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백얼마짜리 곤지암시즌권과 천만 원짜리 오토바이를 상의도 한 마디 않고 사면서도 백만원인 아이패드에는 콧방귀뿐이었다. 결국 우는 아이 떡 준다고 아이패드를 사준 사람은 엄마였다. 그래서 난 아이패드를 사서 앱을 깔자마자 엄마를 그렸다. 고마움을 가득 담아.
그랬던 아이패드인데 처박아두곤 어느새 이렇게 오래되어 버려서 업데이트가 안 되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집 근처 애플 서비스센터를 찾아야 했다. 아이패드를 방치한 나를 한심하게라도 보듯 애플 직원들은 하나같이 불친절하고 무감각했다. 결국 초기화를 진행해야 한다는 말에 잠시 욱해서 다른 방법은 없냐고 따졌지만 내가 무슨 힘이 있을까. 일단 그림 하나만 옮기겠다고 했다. 내가 아이패드를 사고 처음으로 그렸던 울 엄마. 못난 남편 만나 못나게 살던 날 지켜봐 준 울 엄마.
다시 잘 써 볼 생각이다. 아이패드를. 다시 잘 살아볼 생각이다. 남은 인생을. 볼상 사나운 감정이란 녀석이 날 또다시 화나게 할지도 모른다. 원인 모를 이유로 인해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현해서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잘 살아보련다. 충분히 누리고 충분히 느끼며 살아가보련다. 못난 날 지켜봐 준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충분히 즐겁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