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그 사람.
내일모레 결혼하는 그 사람.
“어, 왜?”
항상 덤덤한 척하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앨범이랑 개인 짐 좀 남은 게 있어서 가져왔는데 지금 가게에 있어?”
쿵.
마음이 내려앉는다.
진짜 잔인하다.
하지만 쿨한 척 통화를 이어간다.
“지금 현장이야. 비번 알려줄게 넣어 놓고 가”
“알았어.”
가게에 가고 싶지 않아 졌는데 상담이 갑자기 들어왔다.
인생이란 무슨 짜여진 각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평일 이 시간 상담이 갑자기 들어오기는 흔하지 않은 일인데.
부랴부랴 가게에 가니 놓여있는 상자 두 개.
상담이 끝나고 무슨 동물 사체라도 보듯 상자를 바라본다. 만지고 싶지 않아. 열어보고 싶지도 않아.
조심스레 다가가 해부하듯 열어본다.
첫 번째 상자엔 내 겨울 부츠.
두 번째 큰 상자엔 여러 박스들과 내 졸업 앨범 등이 들어 있다. 그 박스들은 매우 익숙한 낡은 양주 박스. 그 사람이 군대 있을 동안 나에게 보낸 편지를 고이 모아놓은 박스.
그 안에 가득한 너와 나의 젊은 날.
정말 순수하고 영롱하게 서로만을 원했던 지난날.
황급히 상자를 닫는다. 못 볼 걸 본 것 같다. 큰 상자까지 꽁꽁 닫아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희미한 웃음으로 그 편지들을 꺼내 볼 수 있을까. 지금 마음으론 잘게 찢어서 그 사람 결혼식 입장할 때 앞 길에 고이 뿌려드리고 싶은 마음뿐인데.
네가 나를 아프게 하려고 이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목적지향적인 너는 결혼식 전에 그 상자들을 처리해야 했겠지. 그래서 결혼 이틀 전 황급히 우리 가게에 내 물건들을 던져놔야 했겠지.
하지만 나는 감정의 오물을 맞은 기분이다. 자꾸 네가 나를 아프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가 이혼한 이유를 떠벌리고 다니는 신중하지 못한 태도나 오늘 같은 이런 행동은 참 생각이 부족한 행동이란다. 자상한 엄마가 되어 어린 아들에게 걸음마를 알려주듯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다.
하지만 난 네 엄마가 아니고 심지어 이젠 아무 관계도 아니다. 완전한 남남.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행동하면 안 돼. 말하고 싶지도 않고 이젠 그럴 권리도 없는 것 같다. 아니 그럴 의욕도 생기지가 않는다.
잘 살아라.
네가 던진 똥은 내가 잘 수습해 볼게.
좀 더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해 볼게. 안되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