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시할머님의 장례_1
시할머님의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요양원 나름의 중환자실같은 곳으로 옮겨졌다. 시아버님과 우리가 교대로 있었는데 잠시 집에 들리러 간 사이 시할머님은 홀로 돌아가셨다. 그 잠시 사이. 아무도 없는 죽음.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건 변냄새였다. 복도부터 그 방까지 변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구멍이 열려 그렇게 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는 처음 알았다. 시신은 병원으로 옮겨졌고 시아버님의 바램으로 이대목동병원에서 장례를 치루게 되었다. 이대목동병원은 비싸다고 다들 반대했지만 좀 더 좋은 곳에서 자기 어머님을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과 남들의 이목을 중시 생각하시는 시아버님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병원에 도착해서는 상담실같은 곳으로 인도받았다. 상담원은 능숙하게 옵션을 고르게 했고 꽃장식, 음식의 종류, 수의, 관의 종류 등을 골랐다. 아버지의 장례 때는 언니들이 했던 일을 여기서 내가 하고 있으니 조금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골라야할 것들을 다 고르고 나왔는데 시누이들이 요란을 떨며 나타났다. 평소에는 자주 오지도 않더니 병원에 도착해선 굳이 시할머님을 보러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미 시신은 무슨 천 같은 걸로 다 싸여 있었는데 그걸 다 풀러야 한다는 병원측의 설명에도 그래도 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는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해서 난 요양원에서 이미 돌아가신 걸 뵈었다고 하고 거절했다.
도대체 지금 왜 보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리고나선 병원에 상주측 이름을 넣는데 병원측에선 내 이름을 넣을 수 없다고 했다. 왜 그렇냐고 하니 손자 며느리의 이름을 넣는 건 통상적으로 없는 일이라고 했다. 뭐 대단한 보상을 바란 건 아니였지만 상주측에 이름도 올라가지 못하는데 왜 내가 그 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나 싶은 허무함이 쿵하고 내 마음을 짓눌렀다.
더 싫은 건 병원측에 강하게 항의해주지도 않는 시댁이었다. 쟤는 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시할머님께 최선을 다했다고. 그 순간 내가 왜 여기 있어야하는지, 뛰쳐나가고 싶은 강한 욕망이 들었다. 나는 무엇때문에 살아왔을까. 친정보다 더 내 마음을 주면서. 이렇게 이름하나 올리지 못하는 관계인데.
나는 거기서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난 철저한 외부인이면서 처절한 내부인이었다. 법적으로는 아무 효력이 없으면서 시댁의 절대적인 관계자였다. 고모들의 자녀들은 오지도 않았다. 나는 상을 차리고 치우고-물론 일하시는 분들이 계셨지만 일손이 부족할 때는 나도 도와야했다-처음 보는 남편의 회사사람들을 맞이하고 인형처럼 다시 앉아 있어야했다.
이런 말이 좀 우스울지 모르겠지만 장례식은 성황리에 치뤄졌다. 돈 때문에 걱정 했지만 그 사람의 회사사람들과 지인들이 자리를 많이 채워서 북적북적했다.
그 와중에 시여동생은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인사를 다니다 충고를 듣고는 립스틱을 지웠다.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물론 시할머님의 연세가 많아 돌아가시는 게 본인과 자식들을 위해서도 이제는 서로를 위한 것이란 걸 알고 보내드릴 때가 되었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돌아가시는 과정을 매주 지켜본 나는 결코 웃을 수 없었다. 그네들처럼 시할머님의 죽음보다 서로의 만남을 반가워할 수 없었다.
거기다 나는 거기서 제일 서열이 낮아서 온갖 심부름을 다해야했다. 겨우 밤이 되어서 좀 쉬려나 했는데 막내 고모님이 날 불렀다. 들어온 음식과 남은 음식을 체크해서 갯수를 파악하라는 것이었다. 밤이 되어서도 쉬지 못했다.
자신의 자녀들은 애 핑계로 오지도 않았으면서. 막내 고모의 며느리가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걸 들었는데 못 와서 넘 죄송하다고 펑펑 우는 걸 들으며 이미 냉소의 끝을 달린 나는 우습기만 했다. 그렇게 울거면 잠깐 왔다 가면 되지 울기는 왜 울어. 상을 치우며 난 조용히 난 찬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