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시할머님의 장례_2
드디어 내일이었다. 내일이면 삼일장이 끝나고 장지로 이동하고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
애도와 보내는 이의 눈물이 없는 거짓과 역설로 채워진 이곳. 그렇게 이를 악 물고 버텼다. 그동안 나는 사실 정신줄을 살포시 놓고 있었다. 뭔가 똑바로 정신을 차리면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정말 그 이상한 나라에 나 혼자 던져진 기분. 기괴한 두려움과 조소가 가득한 그곳.
마지막 날이기에 자고 가는 분들이 많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장지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많은 남자분들을 피해 나와 시어머님, 시누이는 근처에 있는 시댁에서 쪽잠이라도 청하기로 했다. 시댁은 방 두 개에 싱글 침대 하나 놓을 수 있는 정도의 거실 공간이 있었는데 돌아가신 시할머님의 자리는 그곳이셨다. 항상 시댁에 가면 붙박이장처럼 그 침대에서 우릴 맞아주셨다.
안방은 이미 시언니네 부부가 자리를 잡아 코를 골고 주무시고 계셨다. 누군가는 시할머님의 침대에서 자야 하는데 지금 그 침대의 주인은 장례를 치르고 있는 그 오래된 침대에서는 절대 자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난 서열 최하위였다. 도착하자마자 시어머니는 자긴 방이 아님 못 잔다면서 여동생과 작은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셨고 나 혼자 시할머니의 침대에 남겨졌다.
오랜 세월의 시할머님의 체취와 흔적이 남긴 그 낡은 침대. 한 참을 눕지 못하고 앉아 있다가 결국 피곤함에 항복하고 침대에 누웠다. 기분이 이상했다. 죽은 사람의 침대라니 무서운 마음이 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동한 안방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도저히 피곤한데 잠이 오질 않아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할머니 침대에서 자려고 누웠다고. 답문이 왔는데 할 말이 떡 막히는 답문이었다.
'좋겠다. 내가 거기서 자고 싶다.'
물론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는 말이었지만. 역시나 나에 대한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의 기분 나의 감정 나의 생각 나의 느낌. 전혀 중요하지 않구나. 관심도 없고. 그 날밤은 그렇게 갔다. 그래 봤자 두어 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할머님 침대에서 찌린내를 맡으며.
새벽 일찍 차는 장지로 출발했다. 시할머님의 사진을 그 사람이 들고 있었기 때문에 상주로써 그 사람과 시아버님, 시어머님 이렇게 리무진에 타고 나는 혼자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시어머님은 나가서 사셨기 때문에 자신은 자격이 없으니 리무진에 타지 않겠다고, 그 사람과 내가 타라고 시어머님이 주장하는 바람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그런데 고모와 시댁에서 다들 말렸다. 쟤가 왜 타냐면서 그건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난 그저 피곤할 뿐이었고 내 몸에 남은 시할머님의 찌린내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고 바라는 것도 더는 없었다. 내 위치가 어딘지 확연히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저 이 시간들이 빨리감기 버튼을 눌러서 지나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결국 나 혼자 다른 손님들과 남은 시댁 가족들과 고속버스를 타게 되었다. 버스를 타자 막내 고모님이 웬일로 반가운 얼굴로 나를 부르시면서 자기 자리 복도 건너편에 앉으라고 하셨다. 가뜩이나 외로운 고립된 공간이라 막막했는데 그래도 챙겨주시는 분이 있네, 작은 친절에 감사하며 자리를 잡았다.
차가 출발하고 잠이 드려는 데 옆에서 막내 시고모님이 불렀다. 사람들에게 아침 겸 점심으로 떡을 나눠주라고 시키려고 나를 자기 옆에 앉혔는데 거기서 밥을 먹기로 해서 떡을 안 나눠줘도 된다고 했다. 혹시나가 역시나. 그럼 그렇지. 순수하게 날 챙겨주는 사람이 있을 리가.
내가 자기 며느리도 아닌데 장례식에서도 그렇게 부려 먹어놓고 끝까지 날 부려먹으려고 자기 옆에 뒀다 이거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러다 뭔가 머릿속에서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나며 뭔가가 죽었다. 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때 시댁 쪽 누군가 내 옆에 앉으려 했는데 난 혼자 앉아서 가는 게 편하다고 혼자 앉고 싶다고 하며 거절했다.
예전 같으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장례식으로 인해 뭔가 내 안에서 죽어버린 기분이었다. 여려빠진 나. 항상 억누르고 웃으면서 인형처럼 시댁에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네네 하던 나.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항상 그 사람의 가족이라고 존중하고 위한다고 참고 참던 나. 그런 내가 죽어버렸다. 시댁의 가장 웃어른인 시할머님과 함께.
장지에 도착해선 더 가관이었다. 무슨 서커스 블랙코미디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할머님은 시할아버님 묏자리 옆에 묏자리를 만들어 두었었는데 시아버님은 시할머님 살아생전에 돌아가시면 두 분 다 화장을 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었다. 시할머님은 시할아버님 옆에 묻히고 싶어 하셨는데.
하지만 막상 돌아가실 때가 되자 시할머님은 그냥 화장해 달라고 하셨었다. 아마 암으로 인해 자신의 몸이 흉할 정도로 말라가는 모습에 그러셨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막상 시할머님이 돌아가시자 시아버님은 그냥 묘에 같이 묻어드리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청개구리 효자 아들 저리 가라였다. 사실 묘가 있으면 계속 벌초도 해야 하고 관리를 꾸준히 해야 하는데 결국 시아버님은 연세도 있으셔서 자신이 벌초를 하시지 않고 그 사람의 몫이 될 게 눈에 뻔했다. 그럼 난 또 따라가서 잔심부름과 설거지, 잡일들을 거들어야 하리라.
난 이미 아무 감정이 없어졌기에 그러든지 말든지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아니, 버티고 버텼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교회식으로 장례는 치러졌고 마지막으로 관이 내려졌다. 그리고 한 명씩 나와서 꽃을 관 위에 뿌려드리며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나는 그 순서 내내 조소를 내내 참을 수가 없었다. 웃음을 감추느라 너무 힘들었다. 가식적인 인간들. 살아계실 때나 잘하지. 시누이 둘이 꽃을 뿌려드리며 "사랑했어요, 할머니."라고 하며 둘이 우는 모습을 보는데 난 크게 웃을 뻔했다.
사랑. 시할머니가 넘어지셔서 우리가 급하게 근처 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 왜 그 비싼 병원을 데려갔냐고 뭐라고 하던 사람이 사랑? MRI 찍어봐야 한다고 하자 그거 찍으면 낫는 것도 아닌데 그걸 왜 굳이 찍으려고 하냐고 하던 사람이 사랑? 하긴. 사람마다 사랑의 정의와 범위는 다르니까.
그러다 내 순서가 왔다. 난 거절했다. 참으려고 해도 자꾸 쓴웃음이 나와서 가뜩이나 표정관리도 힘든데. 더구나 절대 이 우스운 쇼에 등장하는 출연객이 되고 싶진 않았다. 관객으로 그저 엑스트라로 남으리라. 그 사람이 나에게 와서 꽃만이라도 뿌리라고 했다.
넌 뭐니. 시할머님 살아생전과 장례식 내내 나를 그만큼 써먹었으면 이제 좀 놔줄 때도 됐잖아. 나한테 괜찮냐고, 수고했다고 한 마디 하지도 않아놓고 여기서까지 구색을 맞춰야 하니. 괜찮다고 난 안 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끝까지 거절했다. 몇 번 나에게 말하던 그 사람은 나의 고집에 자리를 떠났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서운하겠지. 하지만 서로로 살아보지 않은 이상 서로의 생각은 결국 알 수 없고 결론은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그렇게 시할머님의 장례식은 끝났다. 화장을 하면 이제 벌초나 명절 때 큰 집을 안 가도 될 거란 내 실낱같은 희망도 그렇게 사라졌고 세심하고 이해해주고 배려해주던 나도 그렇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