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가게 오픈기
성격상 조급하고 느긋하지 못한 나는 꿀떡 가게를 구해버렸다. 처음에는 집 근처로 알아보다 세가 부담이 되어 용인 쪽을 알아보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가게를 구하게 되었다. 처음 가 본 동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월세가 싸서였다.
좋게 말하면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한 것이고 진실은 망해도 큰 타격 없는 곳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때는 두려움도 컸지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도 작진 않았다.
어쨌든 가게를 차리라고 등 떠민 사람이 월세를 내준다고 하지 않은가. 적어도 월세 걱정은 던 셈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자 생각했다.
한동안 지인분께 부탁드려서 그 가게를 출퇴근하며 다시 일을 배웠다. 그리고 내 가게의 인테리어가 시작되었다. 간판을 디자인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실내를 꾸미고 절절한 과정이었다. 셀프로 페인트칠을 하며 내 얼굴은 사과보다 빨갛게 익어 버렸다.
그렇게 등 떠밀던 그 사람은 오히려 가게를 시작한다고 하니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내가 가게 공사를 하며 어떻게 한 번을 안 와볼 수가 있냐고 볼멘소리를 하자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웃으며 그 사람은 말했다.
"내 하루 일당이 얼만지 알아? 40이 넘어."
한 마디로 자기가 한번 오면 40만 원을 달라는 건가. 그러더니 목공이 한창인 날, 자신의 와이프가 가게를 연다는 데 얼굴도 한 번 안 비치는 남편이 어디 있냐는 내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그 사람이 얼굴을 비치러 왔다. 새로 산 반짝반짝한 운동화를 신고 음료수 하나 안 사서는.
공사 막바지라 다들 정신이 없었는데 뭘 할지 몰라서 어정어정 거리는 그 사람을 보고 있으니 와줘서 고마운 마음보다는 뭔가 부끄러운 마음이 컸다.
보다 못한 내가 빗자루를 주면서 여기 톱밥이라도 쓸라고 했는데 같이 빗자루 질을 하다 내가 누군가 바닥에 쏟은 커피를 그 사람의 새 운동화에 튀기고 말았다. 순간 그 사람은 표정이 썩어서는 "에이..." 하면서 짜증을 감추질 못했다.
난 참지 못하고 그냥 집에 가라고 됐다고 했고 그 사람은 뒤도 안 돌아보고 갔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처럼 굴더니 자기의 일당 운운하며 구경꾼 모드로 바뀐 그 사람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결국 그 사람은 도련님이었던 것이다. 내가 감히 도련님께 청소를 시키다니. 그러고는 그 새 운동화에 찌린 커피나 튀기고.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그 사람의 뽀얀 운동화에 튀긴 아메리카노 커피처럼 진하고 강렬하게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게 가게는 오픈을 했고 누가 이런 구석 골목에 있는 가게를 찾아와 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금요일마다 재택근무라 처음 한 두 번 정도는 가게에 나와서 노트북으로 일을 하곤 했는데 자꾸 내가 청소를 시키거나 잔심부름을 시키자 그 뒤로는 나오질 않았다.
첫 달은 허탕이었다. 그 사람이 자신이 월세를 내주겠다고 했고, 두 번째 달부터 하나 둘 손님이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바로 월세를 끊었다. 내가 1년은 내주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자 '돈 벌었잖아'라고 일축했다. 치사해서 더는 달라고 하기 싫었다.
나중에 이혼하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심지어 그 사람은 첫 달 월세도 내지 않았다. 주인 할머님이 첫 달 월세를 안 냈다고 하셔서 내가 그 사람에게 물어보자 그 사람에게서 'ㅋㅋㅋ 그걸 왜 이제 말한대?'라는 문자가 왔다. 알면서도 안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다못해 나한테 말이라도 해주던가... 아무튼 이건 나중 이야기.
가게를 오픈하고 우리 어머니는 허리 협착증이 심해 두 번째 수술을 하셨다. 가게 오픈이 6월 1일. 그날 어머니 문병 가던 날이 7월 21일. 내가 잊을 수 없는 그 날짜. 7월 21일.
그날 나는 이혼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