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이야기.34

34. 너랑 못 살겠다.

by Jude

7월 21일. 여느 때와 같은 주말이었다. 어머니의 두 번째 허리 수술 때문에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면회를 가야 했다. 병원에서 친정이 멀지 않았으므로 가는 길에 친정에 들려 넷째 언니를 태우고 가기로 했다.


말이 두 번째 허리 수술이지 7년 전 어머니는 협착증으로 인해 허리에 나사를 4개 박은 상태셨다. 그런데 이번에 또 그 밑에 부분에 협착증이 또 생겨 또 나사를 박아야 하는 수술이었다. 내겐 너무나 두려운 대수술이었지만 당장 허리와 골반이 너무 아파 걸을 수 조차 없는 어머니께는 수술만이 유일한 탈출구로 보였나 보다.


아무튼 한 시간 넘는 운전 거리였기에 나랑 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인생의 여러 고비와 어려움을 겪었다고 생각했기에 이제 어느 정도의 안정감이 찾아들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나 둘 하다 보니 문득 내가 살아온 날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어릴 때부터의 아버지의 학대, 사랑받지 못하고 큰 과거. 그러나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 언니의 죽음. 내가 바랬던 안정된 생활. 그러나 그 사람을 위한 뒷바라지. 그리고 시댁, 할머님의 죽음, 그리고 어쨌든 이제는 내 이름으로 낸 사업체까지.


사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고 그냥 다 관둬버리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었는데 이렇게 살고 견뎌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가 대견하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기 연민이 확 올라오면서 나도 모르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래, 내가 고생이 참 많았지, 잘 살았다. 나 자신. 잘 살았어."이러면서 나 자신을 스스로 안고 토닥토닥해주고 있었다.


그때 광명 쪽으로 넘어가는 고속도로였는데 광명터널을 통과하자마자 갑자기 차가 끼이익 괴성을 내며 갓길에 급정차를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운전하던 그 사람을 쳐다봤는데 그 사람은 울부짖으며 차 키를 던지며 소리쳤다.


"씨*!!!" 진짜 너랑 못살겠다!!!!!!!!"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상황 파악이 되질 않았다. 그러면서 차에서 내리겠다고 자긴 가겠다고 한 마리 야수처럼 난리 치는 그 사람을 잡기 위해 나도 정신이 없이 잡다 보니 그 사람의 팔에도 내 팔에도 생채기가 났다.


" 왜 그래?? 갑자기 왜 그래? 내가 뭘 잘못했어?"


그 사람은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꼭 그런 식으로 발광을 하곤 했다. 발광. 그래 딱 그 표현이 맞았다. 평소의 불만이나 내가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미친 듯이 화를 내곤 했다. 그 강도가 점점 심해졌고 그렇게 화내고 나선 폭력남편처럼 엄청나게 나에게 싹싹 빌고 잘해주며 목걸이나-절대 비싼 건 아니지만- 액세서리 같은 걸 사주곤 했다. 맛있는 식당을 데려가거나.


같이 살다 보니 어느 정도 그 사람이 폭발하는 시점을 알게 되고 그런 조짐이 보이면 내가 알아서 피하거나 더는 말을 아끼는 방식으로 지나왔다. 그런데 그날은 정말 아무런 징조도 없이 그렇게 폭발했고 지금까지 중에 가장 화내는 강도가 쌨다. 내 머리에는 순간 이러다 맞을 수도 있겠는데 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당장 차에서 내려 자긴 가겠다는 사람을 말리며 생채기가 나며 생각난 건 그 상황에서도 면회를 가기로 했는데 만약 우리가 안 가면 걱정하고 실망하실 어머니였고 두 번째는 우리가 픽업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기로 한 집에 있는 넷째 언니였다.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우리가 싸운 걸 들켜서 친정에 불편함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회복기에 있는 어머니가 걱정되었고 만약 온갖 걱정을 싸매고 있는 성향의 어머니가 우리가 싸워서 오지 않은 걸 알게 되면 회복이 악화될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 사람을 구슬리고 진정시켜서 병원에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 진정시키려고 무던 애를 썼다.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울부짖어서 눈물 콧물이 난리 난 상태였고 오히려 난 너무 놀라 눈물도 나질 않았다.


"니가 고생을 했다고? 니가 무슨 고생을 했다는 거야? 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잖아. 니가 마트에서 일해서 백만원이라도 벌어와 봤어? 돈 버는 나도 고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니가 무슨 고생을 했다는 거야. 넌 고생하지 않았어. 그리고 사람들한테 니가 우리 집에 한 일들을 떠벌리고 다녀서 넌 이제 받을 상이 하나도 없어! 니가 니 입으로 다 깎아먹었으니까."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내가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걸 아는데 시댁에 한 일들을 떠벌리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었던 가. 그리고 돈 벌어오지 말라고 하더니 결국엔 돈. 이놈의 경제력. 그게 굉장히 불만이었구나.


"넌 아무 고생도 안 했어. 넌 한 게 없어."


난 그저 "그래, 자기 덕분이야. 고마워."이 한마디를 듣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렇게 큰 그것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에게 돌이 되어 날아오다니.


어찌어찌 미안하다고 하고 다독이고 해서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정말 멍청하고 답답하게도 난 어머니의 문병과 언니의 픽업을 생각하며 가버린다는 그 사람을 그렇게 잡고 잡았다. 두 가지 이유도 있었지만 화가 나면 날 버리고 가버리는 그 사람의 뒷모습도 너무나 두려웠다. 내가 나갈지언정 내가 남겨지고 싶진 않았다.


차는 침묵 속에서 한참을 달려 강변북로를 타고 월드컵 경기장 즈음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제야 눈물이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었다. 그때 느낀 가장 큰 나의 감정. 무섭다. 아버지의 폭력에 평생을 시달리며 살아온 내가 이제 내가 어머니의 자리에서 남편에게 다시 당하는 건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무리 달려봤자 그 자리에서 비슷한 사람을 만나 나에게 모진 말을 늘어놓고.


"나 너무 무서워."

울면서 말하는 나에게 그 사람은 어떤 위로도 없었다. 그저 운전만 할 뿐. 그 사람은 나의 모든 22년 세월을 부정했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능력하고 한심한 여자 친구이자 와이프였다. 농담으로 그 사람은 자기 같은 가치주를 찾아 선택한 내가 대단하다고 했는데 난 그 말에 내가 빠져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자기 자신이 잘난 것이었지.


상을 받으려고 시댁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한 건 아니지만 내가 떠벌이처럼 내가 한 일을 떠벌리고 다녔나.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친한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나 입이 무거운 교회 친한 언니에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 사람은 자신의 치부를 훨씬 크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언니를 픽업해야 해서 어찌어찌 진정을 하고 눈물을 닦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그날 일과를 마쳤다. 집에 와서부터 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저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도 너무 싫고 무엇보다 내가 내 인생의 반을 넘게 바라보고 내가 온전히 전부를 준 사람이 "넌 아무것도 안 했어. 착각하지 마"라고 하자 내 인생 전부가 부정되는 느낌이었다.


울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침대에서 한참을 울고 있는데 그 사람이 와서 말했다. 자긴 너무 서운했노라고. 도대체 어떤 포인트에서 왜 서운했다는 거야. 날 그냥 안아주고 다 자기 덕분이야. 내가 너무 잘못했어.라고 하면 되는 이 순간에도 넌 네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구나.


답이 보이질 않았다. 난 내가 인생을 헛살았다는 충격으로 미칠 것 같았다. 그 옛날 내 발 발치에서 울고 있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그때는 어머니가 우는 게 무섭고 충격이라 왜 우냐고 했는데 지금 이런 심정이었던 걸까.

어머니도 막막하고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그렇게 그 밤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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