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남편이 변했다
외롭다고 했다. 그 사람은 내가 사업을 시작하고부터 외롭다고 했다. 그러나 그 외로움의 근원적인 이유가 사업이 아니라 그때의 그 사건 때문임을 모르는 듯했다. 그게 더 이상하고 의아했다. 나에게서 삶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 아니 그런 거창한 것을 다 떠나서 그냥 너만 바라보고 그렇게 살아온 날 부정한 본인이 외로운 건 당연한 결과 아닌가.
난 그 일 이후로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모질게 하거나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냥 적당히. 적당히 맞춰주고 이제 적당히 나로 살려고 했을 뿐이다. 이런 내가 낯설고 싫었겠지. 자기를 방치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동안 어미새처럼 고이고이 품고 따스하게 감싸주고 때론 여동생처럼 아르릉 카르릉 장난도 치면서 편안했던 사람이 변하니 참 괴롭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난 나의 홀로서기를 결심한 이상 더 이상 그런 역할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각방을 쓰거나 내가 그와의 잠자리를 거부하거나 그런 적극적인 거절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난 아까도 말했지만 적당히 이 관계를 내가 원하는 시간까지 유지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 사람이 갑자기 교정을 하겠다고 했다. 그 사람의 부정교합은 심했지만 굳이 지금 교정을 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본인이 심미적인 이유보다 건강상의 이유를 강조하며 코골이가 심해지고 두통이 심해진다는 등의 이유를 들자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정을 시작한 그 사람은 이어서 유명한 브랜드의 800만 원이 넘는 오토바이를 샀다. 전에도 오토바이를 탔었기에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 고가의 오토바이를 사는 게 우리의 경제 사정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돈으로 돈을 낼 거냐고 묻자 자기 용돈에서 할부로 지불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지방의 아파트 월세를 새로 계약하면서 내게는 말도 하지 않고 월세를 줄이고 보증금을 1000만 원 올려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돈은 고스란히 그의 주머니로 들어가 오토바이를 일시불로 구매하는데 쓰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그 사람에게 따졌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말했었다는 말로 일축했다.
어차피 그 사람에게 모든 돈은 자기 것이었다. 내가 번 돈을 자기 뜻대로 하지 않자 자기도 자기 맘대로 자기 돈을 쓰겠다 그런 심사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꾼 것은 차였다. 그 사람은 잘 타고 있던 차가 이상하다느니 고장이 났는데 고치는데 얼마나 들지 모르겠다느니 하는 이유로 차를 바꿔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중고로 B사의 다소 과분한 모델을 구입했다.
나는 이혼하기까지 그 차를 타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물론 내 가게를 렌트 차로 이용하고 있었기도 하지만 하도 그 차를 애지중지하여 운전대조차 잡아볼 수 없었다. 그 사람도 내심 내가 더 이상 자기와 더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마치 게임의 옵션을 업그레이드한 캐릭터처럼 그 사람은 자신의 조건을 업그레이드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는 이제 그리 상관없는 일이 되었다. 예전이었다면 잘 생겨지는 남편, 함께 비싼 오토바이를 타고 근교에 나들이도 가고 했을 남편, 멋진 외제차를 타는 남편, 이 모든 것이 나의 자랑이자 나의 멋진 내조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결실로 느껴졌을 테지만 지금은 모든 게 그냥 그 사람이었다.
전부가 그 사람 것이었다. 거기에 나는 없었다. 그 전에도 그랬던 것일까. 하지만 이제 나 역시 그것을 누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이 달라진 우리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