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이야기.38

38. 아기

by Jude

결혼 12년 차. 우리는 아기가 없었다. 생기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여러 난임 병원을 다녀보고 둘 다 이상이 없다고 했으나 아기는 생기지 않았다. 점점 그 문제-라고 해야 하겠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혼하면 아기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는-에 대해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은연중 나의 생각에는 이대로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정말 사랑하는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그 사람.


시댁은 더 이상 나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시댁 고모님들은 나를 보면 항상 아기 문제로 염려를 빙자한 잔소리를 하곤 했다. 내게 문제가 있는지,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왜 너희는 아기를 안 갖니? 아기가 있으면 얼마나 아이가 예쁘고 인생이 즐거워지는데.'라고 하면서.


그러다 가게를 차리라는 계속되는 그 사람 압력에 내가 물어봤던 건 당연히 '아기'였다. 이제 우리 나이도 있는데 사실 나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아기를 동시에 기를 자신이 없다, 그래도 괜찮냐, 가게 아니면 아기- 둘 중 하나다 나에게는. 이런 나의 말에 그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어. 맨날 그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라고 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래. 나에게 아기는 핑계였다. 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한. 그래서 오기로라도 가게를 시작해버린 것도 있었다. 그리고 가게를 열고 한 달 후 내가 이혼을 결심할 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더욱더 아기를 낳을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이혼할 때 훨씬 수월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의 아기를 이제 낳고 싶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그 사람과의 관계도 힘들고 일도 힘들고 보통사람보다 예민하고 민감한 나에게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심하고 자존감도 낮지만 자존심만은 쎈 나는 그 간극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나 스스로를 더욱더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이 망가졌는지 부정출혈이 심해졌다. 생리 때도 아닌데 갑자기 엄청난 양의 피가 쏟아지듯 나와 바지까지 배어 나와 곤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게 되었다.


결국 대학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고 검사 결과 내가 자궁선근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출혈이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리 무겁지 않은 마음으로 갔던 나에게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는 자궁적출만이 해결책이다'라는 어마 무시한 말을 했다.


이미 보통 사람보다 자궁내막의 두께가 두 배이상 두꺼워져 있는 상태라고, 자궁내막이 생리할 때마다 점점 더 두꺼워져 돌덩이처럼 되어 가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생리를 할수록 악화되는 병이고 결과적으로는 생리를 안 하는 것만이 더 진행되는 것을 막아주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일단 부정출혈 때문에 불편한 것은 피임약을 먹으면서 주기를 맞춰보고 경과를 두고 보자고 하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약간 멍한 상태로 병원을 나왔다. 아기를 안 갖고 싶은 것과 못 갖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지금까지 나는 그래도 아기를 가질 수 있는데 안 가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못 가진 거라니. 자궁을 적출해야 하다니. 너무 큰 충격이었다. 누구에게 이야기를 해야하나 핸드폰을 더듬거리다가 병원 쪽 일을 하는 셋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에게 자궁선근증이라고, 최종적으로는 자궁적출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이 몰려왔다. 나 이제 여자가 아닌 것 같은 그런 좌절감. 생리를 지긋지긋해하던 내가 벌 받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밀려들며 어지러웠다. 언니는 따스한 위로와 함께 다른 병원도 가보고 하라고 자궁적출은 좀 더 나중 일이니 생각해보라는 말을 해줬던 것 같다.


난 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나의 마음은 정해졌으므로 이런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는 않았다. 심란한 마음을 겨우 다스리고 집에 왔다. 우리 사이에는 그 사건 이후로 냉랭한 공기가 표면 아래 깔려 있었다. 병원을 다녀왔는지 알면서도 결과를 물어보지 않는 그 사람에게 더더욱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나 자궁선근증이래."


그 사람은 "그래? 그럼 어떻게 하래?"라고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피임약 먹고 지켜보자고 하더라. 내 눈은 텔레비전에 고정된 체 무심하게 말했다. 그 사람도 더는 묻지 않고 자기 방으로 갔다. 서운한 마음보다는 난 너에게 나의 상태에 대해 말을 했다,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 말거라.라는 모진 마음이 더 컸다.


적어도 조금이라도 날 생각한다면 그게 무슨 병인데? 괜찮은 거야?라는 구체적인 염려와 걱정을 조금이라도 보였겠지.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나왔다면 정신적인 타격이 큰 상태의 나는 울어버렸을지도 몰라, 그러면 이 사람에게 의지하고 싶어 질지도 몰라, 그러면 이혼하려던 내 마음도 약해졌을지도 몰라. 다행이다. 참 다행이었다. 내가 생각한 그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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