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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몇 시간짜리 신데렐라냐?

by 생각만 하다가

“결혼을 한 후에도 직장생활을 계속 할 계획입니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던 나에게 그 당시 질의된 공통된 질문이었다(이 질문은 성차별적 질문으로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금지된 질문으로 안다). 취업만 하게 되면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나의 창창한 미래가 회사와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에 경도되어 있던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네. 결혼이라는 사적인 영역이 직장생활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남녀의 구분없이 회사 업무에 매진할 자신있습니다.”


그 때는 이런 나의 답변이 합격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입사 후 불과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아뇨. 결혼하게 되면 적당한 때에 이만 총총 사라지거나, 혹시 계속 다니게 돼도 다른 직원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게 뒤치다꺼리나 하는 처지에 만족할 것을 다짐합니다” 가 정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사 직후 결혼과 출산이라는 개인적인 거사를 회사 생활과 병행하느라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었던 나는 공과 사를 모두 열정적으로 해내는 직원이 아니라, 입사하자마자 결혼해 버린, 따라서 회사에서의 출세나 영달에는 관심이 없는 부류로 분류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담배를 피며 삼삼오오 모여서 정한 회식 일정은 “어, 우리가 얘기 안 했나? 애봐야 되면 일찍 가도 돼” 라며 통보되었고, 밥 먹듯이 야근이 향해지던 그 시절 “여직원은 위험하니 일찍 가도 돼”와 함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야근에서 일방적으로 배제되곤 했다.


나는 어느새 야심해지기 전에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신데렐라가 되어 있었는데, 구두 한 짝을 들고 나의 능력을 찾아 함께 헤매 줄 왕자님은 회사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은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직원이라면 남녀 구분 없이 제도적으로 배려를 받을 수 있고, 그러한 배려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자양분이 됨을 모두가 공감하는 사회가 되었지만(정말?), 내가 갓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90년대는 육아와 가사는 여자 고유의 영역이요, 남녀 평등을 원한다면 남자가 지게를 질 때 여자도 포대기에 아이를 업고라도 지게를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관념이 팽배해 있었던 시절이었다. 어쨋거나 포대기에 아이를 들쳐 업고 그 위에 지게를 짊어져서 라도 그들만의 리그에 끼기로 작정한 나는 잃어버린 구두 한 짝을 스스로 찾아야 함을 곧 깨닫게 되었다.


“업무 시간에 우르르 담배 피우러 나가시면 혼자 남게 됩니다. 우리 팀의 팀웍 제고를 위해 저도 담배를 배워야 할까요?”

“팀원으로서 야근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제외되면 안되니, 오전 중으로만 미리 말씀해 주시면 아이 돌봐 주실 분을 찾아 보겠습니다.”

“오늘은 부득이 일찍 가야하나,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와서 전부 처리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는 부서 회의이나 회사 고충 토로의 장과 같은 공적인 장소에서 내지른 잔다르크같은 발언은 아니었다. 퇴근 후 삼삼오오 삼겹살을 구우며 상사의 뒷담화에 열 올리고 있을 때, 선배들이 담배 피러 나가는 자리에 그들과 함께 끽연을 하며(내 소중한 폐를 희생한 간접 흡연이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그리고 슬며시 한 마디 끼워 넣은 말들이었다. 부서 내에도 늘 마초 같은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흡연 무리에 나처럼 끼지 못한 금연자도 있었고, 맞벌이 하느라 나 못지않게 육아와 가사로 같은 고민을 하던 선배들도 있었기에 우리 부서 유일한 여직원이었던 나의 고충은 점차 개선되어 갔다. 또한 시대적인 요구도 있었어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인식도 성별 차이가 아니라 “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었기에 나는 “점차 발전”하는 대승적인 분위기 속에서 직장 생활을 영위했다고 자위하고 있다.


또한, 돌이켜 보건대, 나 역시도 “일 하는 여자 콤플렉스”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하게 대처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과 후회가 있어, 후배 직원이 가정과 일 사이에서 고민을 털어 놓을 때면, 둘 다 잘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지금 이 시점에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그것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건네고 있다. 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여건이 안되는 직원에게는(물론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과감하게 육아 휴직을 선택하라고 권하기도 하고, 진급을 목전에 두고 임신을 망설이는 후배에게는 직장은 나의 생계를 지탱하고 자아 실현을 이뤄주는 장기적인 파트너이므로, 지금은 인생의 중요한 이슈에 조금 집중한 이후에 다시 돌아와서 집중해도 절대 늦지 않다고 말한다.

요즘 회사에 들어오는 직원들은 개인적인 사생활이 직장 생활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워라밸을 외치며 퇴근 후 탱고를 배우러 다니는 직원도 있고, 주말을 이용해 자녀들과 사회 봉사를 함께 하는 직원도 있다. 근무를 마칠 무렵 번개를 치는 팀장도 없고, 오히려 자리를 비우고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사이 회의 일정이 그 흡연 직원만 빼고 정해지는 격세지감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가정과 회사 사이에서 두 마리의 토끼를 잡겠다고 양 손에 구두를 들고 뛰어다니는 신데렐라는 여전히 도처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019년 기준 국내 매출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3.6%라고 한다. 여성 임원 비율이 10% 이상인 기업은 60개, 20% 이상은 14개, 30%이상은 5개였고, 40%이상은 단 한 곳도 없다고 하니, 양성 평등의 시대가 무색한 결과라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여성이 가정과 회사를 병행할 수 없어 중도탈락한데 따른 결과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 시대의 신데렐라들의 안타까운 모습이 반영된 수치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흑 아니면 백이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고, 지금은 흑이었다가 잠시 후에 백으로, 혹은 흑과 백을 조금씩 섞어 회색 지대에 잠시 있어도 된다고. 직장은 내 인생의 파트너이고 선택의 영역이지, 여러 가능성을 버리고 마지막에 다다른 막다른 마지막 선택지가 아님을, 그리고 인생에는 다양한 선택지와 기회가 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보라고 조언해 주는 그런 어른스런 사회로 나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그 시대로 돌아가 잃어버린 구두를 찾아 헤매고 있는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구두따윈 필요없어. 맨 발로 가기에도 네 다리는 충분히 튼튼한 걸. 내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만 정확히만 알고 있다면, 멈추지마. 시간은 네 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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