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르따도 Feb 21. 2020

진급 누락 어게인

마음을 다 잡는다는 것

코로나19가 대유행이다.


회사에선 직원의 가족이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사실 만으로 회사 내 대대적인 방역 작업과 비상 경영 체제 돌입을 위한 시뮬레이션 준비로 바쁜 모습을 보였다.


나도 기획실 소속으로 같은 7층 사무실에서 총무부서와 IT 조직의 바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큰 일이 날 듯 덩달아 불안해졌다.


사실 모든 예방은 과해야 하는 게 맞다. 예방과 안전 영역에서는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는 통하지 않는다. 회사 차원에서 예방활동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한 편에, 슬몃 총무만 잘 할 게 아니라 인사도 저렇게 꼼꼼하게 해보라지 하는 언짢음이 밀려왔다.




사실 과거 내가 인사팀과 인사 상담을 했을 때, 인사팀 그 누구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메일 하나 보낸 것 만으로 나는 회사에서 블랙리스트가 되었다. 게다가 그 메일을 그들은 K팀장에게 공유하여 나를 더 곤란한 상황에 빠뜨렸다.




2019년도에 또 진급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한동안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억울하고 속상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을 담아, 실장님과, 팀장님, 팀 구성원들에게 마구 메일을 써 제꼈다. 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야심한 밤에 모바일 그룹웨어를 활용하여 메일을 썼다.



그리고 나의 노력을 보상 받으려는 듯, 내가 했던 업무들을 그들을 찾아가 어필했고, 아직 시간이 있으니 이의신청을 통해 내 진급을 바로 잡아 달라고, 만약 진급이 어렵다면 개인 포상으로나마 나를 위로하라고 사람들을 독촉했다.


흡사 미친놈이었다.


상황을 아는 동료들은 그럴만 한 행동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으나, 친분이 없는 사람들은 과한 행동이라고 했다,더라.


팀장은 접점이 없는 사람들에게 너의 상황을 메일로 보내는 것 또한 폭력이라고 했다.

- 너의 이야기를 왜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하는데?

- 아무도 안들어주니까. 사람들도 그간 어떤 일이 일어났는 지 알아야할 권리가 있으니까.  K팀장이 비리로 회사를 떠났는지, 그와 함께 한 이들이 누구인지 알아야하니까.


머릿속에 생각이 맴돌고 맴돌았다. 이 회사에 있다가는 니가 미치고 말꺼야, 라고 했던 회사를 떠난 김수석님의 말이 떠올랐다.


조기 진급도 모자란 사람을, 회사를 위해 죽어라 불철주야 고생했던 사람을,


몇 년 째, 그깟 과장이 뭐라고 누락시키나.


회사 설립 초기에 프로세스 만들고 교육 만들고 시스템 만들고 주어진 일 마다 않고 지금의 회사 인프라를 다 만들었는데,

지금 들어온 사람들은 세상 편하지. 내가 다 만들어 놓은 체계위에서 편하게 일하잖아!!!


 나는 회사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는 사실을, 그래 회사는 취미로 다니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자, 전에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를 인큐베이션해서 사업을 키워보자, 장외시장에서 비상장 주식 거래를 하자, 여러가지 비현실적인 대안들로 자기 합리화하기 바빴다. 마치 지기 싫어하는 3살 꼬마애 마냥.


그도 그럴 것이, 내 주위에는 내 전 회사 후배들 네 명이나 과장으로 입사하였고, 같은 기획실 내에서 내가 신입사원 양성과정을 만들었는데 그 때 들어온 신입사원이 나보다 더 빨리 진급을 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모두 K팀장과의 트러블 때문이었다.


트러블이라기엔, 내가 철저히 피해자였고 약자였지만.


K팀장과 친분이 있는 J팀장은 '그건 니가 다 이미지 트랩에 걸렸기 때문이야.'라고 굉장히 현실적이고 아니꼬운 조언을 했다. 니가 뭐라고 그런 꼰대같은 발언을 하냐, K팀장과 같이 룸싸롱 가서 희희낙락 즐긴 주제에. 다들 K팀장이 실장이 될 줄 알고 설설 기면서 내가 도와달랬을 때 모른체 했잖아.


며칠 전, 실장님과 성과 면담이 있었다. 그는 전화 통화 중이었고 나를 보자 턱끝으로 저기 앉아 라고 맞은 편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그가 사람을 경멸할 때의 표정을 안다.


과거 H가 K과장을 경찰에 고발했을 때 내가 두 사람과 친분이 있으니 두 사람 중재를 맡아라 라고 지시했던 실장이었다. 두 사람 간 트러블이 있을 때 경찰에 고발했던 H를 바라보던 실장의 표정이 있다. 경멸을 담은 눈 빛. 이 번 면담할 때 그에게서 그 눈빛을 읽었다. 그걸 읽은 순간, 이 사람은 진짜 자기만 아는 지독한 개인주의자구나, 싶었다. 기획실 인원 간 경찰 고발 사건, 그리고 내가 메일을 마구 싸질러 기획실 이미지를 나쁘게 만든 건, 임시 직원인 임원으로써 본인의 이미지 타격이 있을 껄 두려워하고 있었다. 기획실 인원들을 걱정한다는 건 다 핑계였고, 다 본인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비로소 그걸 읽을 수 있었다.


그 어떤 리더라도, 자신만의 원칙과 기준이 무너지면,

그 사람의 리더십은 우스워진다. 세금을 상습적으로 탈세하는 세무청장이 국민들에게 납세의 의무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기획실장이 하는 모든 말들이 그 순간 우스워졌다. 사실, 그가 말하는 전략이라는 말, 혁신이라는 이름의 업무 부여 이 모든 것들이 위선에 가까웠다.


다행히 코로나 덕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내 입은 보이지 않았겠지만, 마스크 위에 드러난 나의 눈은 웃고 있었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작가의 이전글 그렇지 않은 삶도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