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젊은이들은 '내가 듣는 플리(play list)'로, '내가 읽는 책'으로, '내가 보는 영화 유형'으로 나를 대신 표현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90년대 갬성으로 바꿔 표현하자면 이런 거다. '나는 전람회 좋아해' 또는 '나는 토이 좋아해' 같은, '나는 하루키 좋아해', '나는 박해영 작가 좋아해' 같은. 그러면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아 너는 그런 아이구나' 척 하고 알아 듣는 것이다.
90년대말 '전람회'나 '토이' 좋아하는 재질의 대척점에는 서태지가 있거나, H.O.T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둘 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딱히 남고생들이 전람회나 토이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겉으로 표현하는 애들은 없었지만, '이거 들어봐바. 좋더라.'하고 조용히 본인이 듣던 테이프를 건네면 그건 십중팔구 전람회나 토이의 음악이었다. 나는 그게 참 신기해서, 당시에 토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을 발견해 '토이남'이라는 신조어를 내 나름대로 만들기도 했고, 싸이월드에 해당 글을 올리기도 했다.
<토이남 특징>
1. 손가락이 길다.
2. 창가 맨뒤 쪽에 앉는다.
3. 무협 소설 보다는 하루키 소설이 있다.
4. 야자 시간에 애들이 떠들면, 신경질을 낸다.
5. 여럿이 어울리는 것보다 둘셋을 선호한다.
6. 가수의 앨범이 있으면 8번이나 9번 트랙을 좋아한다.
7. 필기를 잘하고, 노트는 잘 안빌려 준다.
...
요즘 아이들이 MBTI나, 본인의 취향으로 본인의 성정을 대신 설명하는 손쉬운 방식을 보면, '토이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90년대의 나'는 분명 시대를 앞서갔다.ㅎㅎ
올 해 초, 나도 말로만 듣던 MBTI 테스트를 뒤늦게 해보고선, '이거 뭐야 왜케 잘맞아 무서워' 했던 경험이 있다. 단순한 테스트로 복잡한 나를 어떻게 정의하냐면서, 은근 MBTI를 무시했는데 이게 또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MBTI를 해 보니 40년이 넘게, 내가 고민하고, 고생했던 지랄 맞은 내 성격과 행동 패턴이 '그건 INFJ인 탓' 으로 단순 명료하게 귀결되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고민하고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하고 순응해야 하는, 애초에 분야가 다른 영역인 셈이었다.
INFJ 유형을 설명한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 죄다 댓글이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사셨나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인간환멸하면서 아닌 척 하느라 힘드셨죠?' 등, 본인이 INFJ로써 대한민국에서 그야말로 생존했던 혹한의 시절들, 그리고 그 극복기 또는 분투기가 상세하게 펼쳐진다. 아이고 인피제 회원님들 어떻게 사셨던 건가요?ㅠ
"사람들은 천둥 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는 바다.
갇힌 것 같은데 어디를 어떻게 뚫어야 될 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그래요."
- 나의 해방일지 중 염미정 대사
위에 염미정 대사를 극중에서 듣던 중에, 염미정이랑 나랑 같은 류의 사람이구나 동질감을 느낄수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노동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완전 공감했는데, 저 대사를 듣자마자 쟤는 INFJ 재질이다 대번에 확신할 수 있었다. 나도 고향에서 군생활할 때 태풍이 이는 날이면, 굳이 방파제 근처까지 가서 집채만한 파도를 바라보며, 세상이 다 저 바람에 휩쓸려가길 바랬던 적이 있다. 내가 무너뜨릴 수는 없으니,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휩쓸려 결국 다 망했으면.
서론이 길었는데 INFJ다 태풍이다 염미정이다, 뭐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내 아이는 나와 달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내 아이는 나처럼 복잡하고 생각이 많기 보단, 단순한 재질이었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이유로 애시당초 둘째를 원치 않았었다.
굳이 이 험한 세상에, 기쁘지도 않은 생을 살게 하다니. 인생은 고통인걸.
계획에 없던 임신에 머리가 복잡했던 이유는, 인류진화학적 관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과거보다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고, 더 나은 삶을 내 아이에게 대물림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할 수 없으니, 2세를 갖는데 아무래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출산과 육아는 나의 삶 뿐 아니라 아이의 단단한 삶의 근간까지 책임져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의 가치관과 상황에 따라 'No Kid'를 선언하는 건, 나와 같은 삶을 되물림 하고 싶지 않은 부모의 직접적인 사랑의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한다.
나는 계획에 없이 둘째를 임신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프로세스대로 고민의 사이클을 이미 서너바퀴 돌았다. 나와 같은 삶을 되물림할까,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아이가 불행하면 어떡할까.
첫째 임신과는 사뭇 다른 걱정의 양상이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지만, 유튜브나 맘카페나 블로그나 익명 직장앱을 통해 육아 고민들을 읽으면서 '우리 모두 다를게 없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리고 읽고 또 읽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찾아 읽고, '하나가 낫네, 둘이 낫네' 피력하는 의견들을 들으며 각각의 장단점들을 분석하고 또 다른 의견들을 찾아 듣고 들을 수록, 오히려 피로감이 쌓였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임신과 출산과 육아는 사람이 아무리 이렇다 저렇다 떠들어대도 결국은,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그래, 이제 더 이상 남의 말들에 흔들릴 필요는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답을 내려야 했다.
나와 같은 삶을 되물림할까? 아니오!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네!
아이가 불행하면 어떡할까? 아니오!
아이의 삶이 나의 삶과 비슷할 거란 판단은 오만이란 걸 안다. 아이가 나를 닮으면 어쩌지 걱정 하는 건 INFJ 재질의 기우인 걸 안다.
날 닮으면 어쩌긴 뭘 어째, 귀엽기만 하지!
아이 엄마의 임신 과정에 최선을 다해 협조하고, 육아에 있어서도 열정을 다하고 그 나머지의 영역은 신의 영역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비로소 평안과 감사가 찾아왔다.
아이가 축복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천둥 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던 바갇힌 것 같은데 어디를 어떻게 뚫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 아닐까 그래요. - 나의 해방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