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인생은 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같은 한탕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내가 집안의 중심을 세우고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단단하게 이루려면 위험 자산인 코인이나 선물에 손대서는 안된다. (아무렴 부동산이지.)안정적으로 가계를 운영하고, 안정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물질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둘째를 임신한 사실을 안 순간, 난 바로 코인이나 해외 주식을 다 빼려고 생각했다. 내 돈 뿐 아니라, 내 정신을 현혹하고 신경을 빼앗기게 만드는 원흉들. 여기서 중요한 건 생각만 했다는 거다. 계좌를 보니 이미 빼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어쩔;;;;
미들리스크, 미들리턴.
이건 남편으로서, 아빠로서도 여전히 유효한 명제이다.
모두가 최수종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 존재 자체의 재료가(얼굴도, 물론 자산도) 최수종이 아니니, 적어도 향만이라도 최수종향을 조금은 풍겨야 하지 않겠는가. 향만 묻은 걸로도, 향만 조금 풍기는 걸로도 중간은 갈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보급형 최수종이 되는 걸 목표로 하자.
그래서, 아내의 임신 때 미리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을 개인의 경험을 보태 정리해 보았다.
1.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감동의 눈물을 보인다. 이거면 다른 말이 필요 없다.
평소에 내가 좀 모자란 남편 같으면, 손편지와 꽃다발을 따로 준비해도 좋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었을 땐, 기혼 남성이라면 '걱정마, 내가 책임질께.' 라고 호언장담하자.
마음은 조금 어지럽고, 정리가 되지 않았을 지라도 표현은 자신있게 하면 좋다.
'어떡하지, 고민 좀 해보자.' 같은 자신없는 표현은 삼가자. 자신없는 뉘앙스는 금세 눈치채기 쉽다.
당신은 생각보다 그릇이 크고, 당신이 못해낼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기억하자.
2. 산부인과를 알아볼 때
(개인의 의견입니다. 부정확한 정보가 포함되었을 수 있어요.)
될 수 있으면 큰 병원을 알아 보는 게 좋다.
큰 병원은 임신 중에 발생할 수 있는 호르몬 문제(내분기계), 출산 시 혈액 공급 문제, 조산 위험에 따른 빠른 대응(맥도널드 수술), 아이 조산 시 니큐 지원 문제 등 위기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아내가 몸이 약한 체질이고, 임신이 어렵게 되었다면 각 분야별 전문 병원을 미리 알아보고 임신 개월 수에 따라 병원을 옮겨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 같은 경우는 첫 째 임신을 위해 시험관 시술을 했는데
시험관은 M병원에서 진행했고, 아이가 뱃속에서 커가면서 전치태반, 역아의 문제로 해당 분야 전문의가 있는 (지금은 사라진) 중구의 J병원으로 전원하여 그곳에서 계속해서 진료를 봤다. 출산도 J병원에서 했다.
임신 전 갑상선 호르몬 문제에 대한 치료는 집에서 가까운 강서 M병원에서 했다.
아참, 그리고 중간에 자궁이 약하고, 경부길이가 짧아 수축 시 조산의 위험성이 있어 20주가 넘어서는 맥도날드 수술을 했다. 맥도날드 수술 잘하는 병원을 검색해, 찾아가서 했던 기억이 있다.
맥도날드수술
[ McDonald's operation , ~手術 ]
경관부전증, 경관무력증에 대해서 임신중기에 행하여지는 수술. 내자궁구의 높이로 봉합하는 실로카법에 비해서 효과는 불확실 하나, 수술방법은 간단하다. 즉 자궁질부의 가능한 한 내자궁구에 가까운 부분에서 나일론실, 폴리에틸렌계 또는 견사로 자궁경을 윤상 봉합한다. 봉합사는 임신말기에 제거한다.
이영애가 쌍둥이를 출산한 곳이 바로 J병원인데, 우리 아이가 태어날 무렵에는 병원 재단 비리로, 의료진들이 검은색 경조 표식을 어깨에 달고 근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영애가 해당 병원의 재건을 위해, 거액의 돈을 기부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아쉽..
큰 병원을 또 추천하는 이유는
첫째가 한 달 일찍 세상에 나왔는데
아이는 출생하자마자 바로 인큐베이터로 직행하고, 아내는 과다 출혈로 수혈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전치 태반이라 제왕절개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수술 중에 출혈 문제로 2시간동안 수혈을 받았다.
그러니까 아이가 태어났으나, 환희와 기쁨보다, 무섭고 두려움이 먼저 몰려온 상황이었다.
내 인생에서 제일 무섭고 두려웠으며 외로웠던 순간 같다.
나는 인큐베이터로 급히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나가는 찰나로 휴대폰에 담았을 뿐이고,
경황없는 중에, 의사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 하시는데 하나도 안들리고 하나도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었다.
이 긴급한 상황에서 J병원이 아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찔한 생각을 가끔 한다.
아이가 떼를 쓰고, 말을 지독히도 안 들을 때면, '이 아이가 태어나기 까지 얼마나 험난한 일들이 있었나, 이 아이는 선물이다.'라고 내 마음을 다독이면서 아랫입술을 꾹 깨문다.
3. 입덧할 때
입덧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곤욕이다. 그럼 아내는 얼마나 힘들겠는가.
입덧이 너무 심하고, 먹는 족족이 다 토해내서 기력이 없을 땐,
병원에 데려가서 수액을 맞히는 게 좋다.
그리고 다행히 입덧약이 있다. 디클렉틴이라고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싼 수입 약이 있다. 대략 개당 2000원 정도 한다. 이 약이 좀 신체증상을 완화해줘서 그런지 약을 먹으면 아내는 계속 누워서 자곤 했다. 이게 입덧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어서 이 약을 먹은 이후로, 아내는 삶의 질이 약 60% 향상되었다고 했다. 입덧이 너무 심할 때는, 삶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우울해 질 수 있으므로(아이고 뭐고 나부터 살고보자 하는 마음이 인다), 약 부작용이 약하다고 하니, 약을 먹는 것도 고려해보자.
4. 기타
일단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물음이다. 나는 신앙심이 깊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랜동안 교회를 다녔던 사람으로, 계획하지 않은 임신에도, 임신 중절을 고려 대상으로 포함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신 지속의 선택권은 여성에게 있다는 걸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법적으로도 임신에 대한 중단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니, 여자의 정신적/신체적 상황을 고려하여 임신 지속 여부를 결정하게 둬야 한다. 옆에서 지켜 본 결과, 임신은 여성의 몸을 그야말로 갈아넣어 새 생명을 낳는 고귀한 과정이고, 출산 이후에도 남자가 도와준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주 양육자는 여자가 된다. 선택은 여성이 하고 책임은 함께 진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힘들었던 임신과 출산의 과정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나는 사실 최수종 향 0.01% 미만 함유했으면서, 내가 뭐라고 이런 글을 쓰고 있나 자괴감이 조금 일기도 하는데.
글을 쓰면서 정리를 하니까, 아내가 현재 둘째 임신 중인데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마음을 또 다 잡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둘째 임신 중에, 아내가 입덧 때문에 토를 하면서도, 입덧 약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병원으로 운전해서 달려가는 상황이 있었고, 나이가 있어 혈액 검사 결과 기형아 고위험군으로 나와 추가로 니프티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조마조마하며 기다린 경험도 있다. (하필이면, 병원에서 전화를 12시에 주고 결과는 오후 5시에 알려주었다. '결과 나왔는데요, 이따가 담당 선생님께서 연락 주실꺼예요.' 이러면 무섭잖아.) 그리고 이번 주는 임신 17주차에 접어드는데 전례가 있으니, 미리 맥도날드 수술을 하기로 예약이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