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밤, 아이와 함께 동화책을 읽었다. 동화책을 한 권만 더 읽으면 유튜브로 수달이 나오는 채널을 보여주기로 아이와 약속을 했다. 다섯살 아이는 늘 꽂히는 게 다른데, 어느날은 파닉스를 하다가 교재에 수달이 나오자 수달이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라고 떼를 썼다. 참고로 수달은 영어로 otter다. (나도 첨 알았다. 파닉스를 하다 보면 모르는 단어가 꽤 나온다.)
그때 엄마 몰래, 나 편하고자 유튜브로 수달 영상을 잠깐 보여 주었는데, 그 이후로 어떤 기특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가끔 수달 영상을 보여주라고 한다. 이 날도 동화책 다섯권 읽기에 대한 보상이 수달 영상 보기 였다.
아이는 책을 다 읽고, '오예'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뛰어 올라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달려 가는데, 별안간 온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꽈당' 하고 넘어졌다. 넘어질 때 왜인지 손도 짚지 않고, 얼굴이 바닥으로 직진하면서 넘어지며, 거실바닥과 아이의 콧대가 부딪히는 순간이, 내 눈에는 슬로우모션으로 하나하나 그 과정이 세세하게 다 보였다. '앙'하는 찰나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함께 섞여나왔고 양 코에서는 금세 코피가 흘러 나왔다. 콧대에 멍이 들고 눈 주위도 조금 푸른 색으로 변해 갔다. 처음엔 그래 넘어질 수도 있지 가볍게 생각했는데,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아이의 코는 쉽게 골절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 콧대 골절에 대한 수많은 사례들과 진짜 별 일 아닌데 콧대가 부러진 수많은 사연들이 인터넷 검색 결과로 나왔다.
쌍코피, 콧대에 멍울, 눈 주위로 멍이 확산 되는 것 등의 증상이 골절이 의심되는 부분이었다.
얼음으로 급히 냉찜질을 하고, 아이의 마음을 달래려고 수십분간 수달의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미 밤이 되었고, 지금 당장 응급실에 가는 건 절차가 복잡(코로나 검사 포함)하니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각자의 자리에서 잠을 설쳤다. 각자의 방식으로 코뼈 골절에 대한 정보를 휴대폰으로 여기저기서 접하고선, 코뼈 골절 이후 수술 및 회복에 대한 까마득하고 아찔한 엄마들의 경험담을 꺼내 읽으면서, 각자 불안한 방향으로 상상력을 키워갔다. 나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쉬이 잠을 청하지 못했다. 눈 앞에서 넘어졌는데, 내가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진 않았을까, 왜 저녁에 아이를 흥분시켜 뛰게 했을까 하는 자책들이 내 머릿속을 헝클였다.
이튿날 아침, 일요일이라 문을 여는 병원이 많지 않았다. (일요일 문여는 병원 찾기는 행안부에서 만든 생활안전지도를 활용하면 편하다.) 일요일에 문여는 병원 중에 CT 촬영이 가능한 곳을 찾았더니 다행히 목동에 있었다. 차로 20여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결과부터 먼저 말하면, 다행히 콧대는 골절되지 않았다. CT 결과를 함께 보던 간호사 선생님이 먼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말 다행이다, 어머님' 이라고 말을 건넸다. 아내는 다행이예요 선생님, 다행이예요 선생님, 하면서 마음을 쓸어 내렸다.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스개 소리로 아이가 콧대가 낮아 부러지지 않았다고 웃는 여유까지 생겼다. 그리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니 외모나 공부 등, 다른 건 크게 기대하지 말자고까지 나름 대화의 진전이 있었다.
아이도 긴장이 풀렸는지, '아빠 지금 가면 주일학교 늦지 않게 도착할까요?' 라고 물어서, 이미 늦었지만 아이를 교회에 홀로 보내기로 했다. 아이에게 일요일은 교회가는 날이고, 주일학교가 너무 재밌어서 아침 7시부터 일어나 엄마 아빠를 깨우고 교회가려고 그 이른 시간부터 대기를 타는데, 코는 아프겠지만 교회가는 기쁨마저 포기하게 할 수는 없었다. 병원에 들린 당일, 우린 씻지도 않고 옷도 제멋대로라 이 행색으로 예배에 참석하긴 무리라고 생각되어, 아이만 교회에 보냈다. 그리고선 딸래미 신앙이 너무 좋아서, 딸래미 믿음으로 우리까지 멱살잡이로 교회로 끌려간다고 함께 웃었다.
아이가 콧대가 부러졌으면 어떡하지 하는 지나친 걱정은,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우리 부부는 대화를 하면서 서로 이 부분에 대해 인정을 했다.
둘째가 곧 태어나고, 둘째는 남자아이라 더 활달하게 예기치 못한, 창의적인 사고를 칠 텐데, 경제적인 상황, 늦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는 부담 등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이 안전에 대한 영역이 우리를 두렵게 했다.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애를 키우는게 얼마나 큰 복인지를 첫째 아이의 꽈당 사건 이후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지만, 그 걱정의 영역에서 아빠인 나의 역할은 걱정스럽지만 '무던함'으로 가장하고, 그 걱정의 소용돌이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일 아닐꺼야, 너무 걱정하지마, 기도하고 결과를 기다리자. 실제로 내가 한 말 들이고, 애가 무사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후에야, 실은 나도 잠을이루지 못했어 하고 고백하는 것.
아이가 가위로 손가락을 베어 살점이 크게 뜯겨나고 피가 나올 때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의연하게 대응하는 것. 태연하게 후시딘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며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조심해야 돼'하고 건조하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
하지만 고백컨데, 나는 INFJ 재질에다 마음이 쉽게 말랑해지는 사람이라, 진짜 쉽지 않았다.
이런 일을 겪으면 심장이 너무 두근대서 잠이 오지 않는다. 심장이 마구 두근대면 불안한 상상력은 뿌리를 뻗는다. 뿌리를 뻗을 뿐 아니라 의미없는 걱정들은 땅에 마구 삽질을 해대 마치 지구 반대편인 브라질까지 구멍을 내고 걱정을 뻗쳐 나갈 기세다. 이건 내가 잘 아는 나의 성정이다. 어떤 일에(그게 크든 작든) 그 규모보다 더 크게 걱정하는 것. 지구 건너편까지 땅을 파는 것.
그래서,
내게 무던함은 쉽지 않은 영역이다.
다음 날 월요일에 출근하면서, 출근 길에 심장 건강을 검색해 보았다.
단단한 아빠가 되려면, 무던한 가장이 되려면, 심장이 먼저 건겅해야 한다는 결론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