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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르따도 Mar 12. 2019

본격 오야붕 시대

강호의 도리를 어찌 잊었는가

오야붕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치고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들은 상급자를 오야붕이라 부르는 걸 서슴치 않았다. 나는 그들이 뭉쳐다니며 '우리 오야붕, 오야붕' 할 때 아차 싶었다. 이곳은 수평적인 조직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회사의 넘버 투가 P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팀 내 패거리 문화는 심해지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팀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오야붕 그룹은 저들끼리 모여 다니면서 커피 마시고 술 마시고 룸싸롱 가며 서로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P팀장은 화니과장과 석꾸가 회사 생활에 지치거나 어떤 일로 삐질 때면 해외 연수나 국내 세미나를 보내곤 했다. 그리고 좋은 교육이나 포상 등이 있으면 그들에게 제공하여 환심을 샀다. 그렇게 P는 그들의 지속 가능한 오야붕이 되어 갔다.

나는 회사 생활에서 사장님의 뜻, 회사의 방침, 기조실의 요청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권위에 기대지 않고서는 업무를 헤쳐 갈 자신이 없고 누군가를 설득할 논리도 없다. P뿐 아니라 재경실 담당자도 늘 기조실 방침, 사장님 지시로 나를 압박했다. 그래서 어느날 반대로 나도 똑같은 논리를 폈더니 재경 담당자는 실장님이 승낙하지 않았다며 반려했다. (아니, 이렇게 영특한 방법이!!) '실장님이 사장님보다 높아요?' 라고 반문한 순간 이건 내가 이길 수 없는 게임임을 깨달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우리 아빠가 너네 아빠보다 힘쎄' 하며 억지부렸지만 걔네 아빠는 경찰이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들과 합리적인 의사 소통이 불가하다는 걸 깨닫고 주는 대로 받고, '소인이 달리 이견이 있겠습니까 분부대로 합쇼 나으리' 로 일관했다.


그것도 모자라 '수명업무' 라며 P는 나에게 말도 안되는 업무를 강요하곤 했다. 젠장, 누가 누구의 명을 받들어야 한단 말인가! 누가 왕이고 누가 노예인가. 20세기에 사라져 사전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단어들이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올 때면 잘못 들었나 하고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사장된 줄 알았던 저 단어들은 필시 룸싸롱에서 걸어 나온 게 틀림없다.


P는 내가 수학을 복수전공 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업계획 업무를 밀어넣기 시작했다. 그 업무량은 도저히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는 나를 통해 우리 팀이 예산, 구매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여 회사에서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다른 팀에서 힘들어하는 업무들을 모조리 가져오기 시작했고 그 업무 담당은 물론,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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