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도 지능이라는데, 그렇다면

by 꼬르따도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법이다.

이를 테면, 사기를 당하거나 하는.


사기를 쳐야겠다 마음 먹은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중고나라 사기를 당한 친구에게, 너 진짜 바보냐? 라고 위로했던 (남자 사이의 최고의 위로 방법) 과거 나의 발언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건 지능의 문제도 아니고, 사회를 모르고, 사람들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의 성향 문제도 아니다. 그냥, 그런 일이 어쩌다 보면 일어나는 법이다.


나는 파산한 회사의 대표를 두어번 한강변에서 마주쳤다. 그 사람은 땀을 흘리며 달리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반대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온라인 강의에서 자주 봤던 터라 나는 내심 반갑고, 내적 친밀감이 있어,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가볍게 목례도 했다. 참 열심히 산다, 생각했다. 달리기를 하며 살을 빼고, 마라톤을 완주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나는 그 사람이 온라인 강의에서 말했던 본인의 가치관과 하는 사업의 비전도 존중했다. 그래서, 내가 피해를 봤지만 크게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먼저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그러면서 사업은 진짜 어려운 일이다,고 비싼 깨달음도 얻었다. 파산했지만 얼굴을 드러내고 지속적으로 피해자에게 돈을 갚겠다는 그들의 진심을, 사실 진위 여부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믿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내 스스로는 마음을 먹었다.


이건 내 개인이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는 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왜냐면 나보다 젊은 아이들에겐 피해액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나도 20대때 친구에게 100만원을 빌려주고 친구가 도주하는 바람에 (어디 있니? 지금은 괜찮다. 나타나라 친구야!) 6개월간 소비 지출을 최소화하며 살았던 적이 있다. 반지하에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번 돈인데. 내 피땀눈물이 어린. 상대방이 이미 도주할 생각이 있었는지 나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친구의 어려운 사정과 다음달에 월급이 들어온다는 말만 철썩같이 믿었을 뿐.


이런 일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진급시켜준다는 상사의 약속, 곧 갚을 거라는 친구의 말, 계속 너랑 같이 있을 거라는 연인의 고백, 함께 일하고 싶다는 제안,


돌이켜보면 뒤통수가 자주 따가웠다. 누군가 항상 내 뒤를 노리며 뒤통수를 친다. 자주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느덧 마음의 문을 잠그고, 피해 망상에 시달린다. 모든 사람들은 다 어느샌가 거짓말을 치고 도망갈 거라는. 그래서 순진하게 믿었던 내 마음만 조각조각 찢겨진다는 걸. 그렇게 여러 날들동안 밤잠 설치고, 내 자율신경계는 무너진다는 걸.


어제는 친구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한 잔 했다. 아무도 믿지 말고, 관계는 최소화하자고. 회사 생활에 그 어떤 의미도 두지 말고, 그냥 흘러가는대로 살아가자고. 그림자처럼, 젖은 낙엽처럼, 눈에 띄지 말고 찰싹. 그런 말이라도 맘대로 내뱉을 수 있다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위안이 됐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집 앞에 있는 삼겹살 집이 문을 닫고 사장님은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계시는게 창문 너머로 보인다. 주인 아줌마의 어깨를 다정하게 주무르면서. 아마 오늘 하루 수고했다는 말을 서로 나눴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일상의 다정함이 좋다. 점점 나에게서 멀어지는 듯한 그 다정함을 사실은 사랑한다.


다정함도 지능이라는데, 부지불식간에 내 지능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사칙연산도 잘 안되더라니.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머리로도 알고 마음으로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점이다.


예전처럼 억울하지 않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건 내 나름의 세상을 대하는 다정함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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