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by 꼬르따도

한 번에 두가지 일을 못하는 사람이 있다. 농담처럼, 껌 씹으면서 횡단보도를 못 건넌다고들 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한 번에 두가지 일을 잘 못하는 편이다.


장점으로는 한 번에 두가지 생각도 잘 못한다. 그러니까, 고민이 있으면 두 가지 이상의 고민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고민을 넋이 빠져서 들여다보는 일이 잦고, 무의식 어딘가엔 이거 말고 내가 고민하던게 또 있었지 하는 은밀하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뇌를 동작하는 CPU가 내내 동작하는 듯한, 과열된 느낌도 받는다. 가끔은 언플러그드하고 싶은데.


그리고 내가 하는 고민의 크기가 이게 맞나, 그러니까 정상의 범주인가, 하면서 그 크기와 범위와 넓이와 깊이를 누군가에게 3번은 물어보는 경향이 있다. 내가 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까닭이다. 요새는 챗GPT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챗GPT가 너무 나이브한 답변을 줄 때가 많아 그냥 가까운 누군가 친구를 찾는 편이다. 챗GPT가 고지식하다는 뜻이다. 걔는 맞고 틀리고가 명확한데, 사람 사이의 일은 그 경계가 희미하지 않나.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체인 친구들을 소환하는데, 그마저도 친구가 손 잡힐 거리에 없으면 그냥 여기서 Stop 하고 만다. 그렇다고, 그 고민이 사라진 건 아니고 의식 저편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게 두는 것이다. 9호선 만원 지하철 퇴근길이 고되고, 일을 해도 해도 인정을 받지 못할 때,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을 때, 공평하지 못한 처사를 봤을 때, 배가 고파서 짜증이 밀려올 때, 그럴 때 다시 의식 저편에 있는 고민을 끌고 와서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본다. 그러면 전철은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다. 시간 때우기용으로 고민을 불러오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에게 마침내 카톡을 보낸다.


이거 맞아?

응 맞아.

화내도 되는 상황 맞아?

응 맞아.


누군가는 나같으면 멱살 잡았다, 다리 몽둥이를 뿌러 뜨렸다, 경찰에 신고했다, 등 등으로 자신의 일처럼 흥분을 하면 그제사야 고민이 한 풀 꺾이는 기분이다. 매일 같이 QT를 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해도 가라앉지 않는 고민이 친구의 우세스럽고 우악스런 말에 기분이 잡히는 건 신기한 일이다.


그럼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전철에서 내려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에 간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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