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것이면 충분하다

by 꼬르따도

딸아이로 인해 종교 생활에 점점 깊숙이 개입하게 된다. 신앙이 깊어진다는 표현 대신, 종교 생활이라고 표기한 건 이전보다 남에게 보이는 모양과 형태에 더 집중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그렇듯, 그러니까 삶이 그렇듯(삶이라고 쓰니 너무 거창하다. 처음엔 생활이라고 썼는데 의미가 약한 것 같아 백스페이스를 누르고 굳이 삶이라는 단어를 쓴다.) 형식과 본질이 무 자르듯 어디 쉽게 나눠지나?


어떻게든 어떤 의미로든 마음이 없어도 일단 시작하면 그 외연이 더 깊어지고 넓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종교 생활로 시작했지만 종내에는 신앙이 깊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딸아이가 좋아해서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했다. 회사 일도 바쁜데, 교회 일까지 하려니 부담이 됐다. 하지만 딸아이가 원하니 일단 해보기로 했다. 학기가 시작하면 주일학교도 여러 사무적인 일로 무척 바빠진다. 그리고 교회 봉사에 개입하면 할수록 뭔가 모를 교회 행정의 불편 부당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도 알게 되는 것이다. 아직 20대인 전도사님이 주일학교 신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교회 봉사 관련해서 짤막한 설교를 하셨는데, 교회 봉사자들 중에 '내가 5%만 봉사했으면 5%만 상처받았을텐데' 걔중에는 심지어 '50%만 봉사했으면 50%만 상처받았을텐데' 하는 하소연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100% 봉사하면 100%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다는 의미의 설교를 하셨다.


나는 회사생활을 통해 스스로 몸을 움츠리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몸을 움츠리고 가시를 내뿜는 고슴도치를 떠올리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자세가 몸에 익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내 시간 투입의 퍼센티지를 산정하고 움직인다. 교회 봉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이와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꿀 때도 물이 항아리에 가득차야 비로소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이 있었고, 죽은 지 나흘되어 이제 희망이 없을 때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전도사님 설교를 들을 때, 이 성경속의 기적들이 떠올랐다. 내게 희망이 하나도 없을 때, 뭔가를 할 여력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기다림이 항아리 밖으로 넘쳐 흘러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을 때,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는 순간이라는 걸.


그렇다고 많은 일을 하는게 어려워 아무것도 않는 것보다는, 일단 조금이라도 시작하고 그 외연을 확장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교회에서 어린 아이들과 부대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행복을 모으는 게 그렇듯, 순간 순간 반짝이는 기쁨의 순간을 채집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그 빈도가 늘어날수록 행복의 강도도 커진다. 가령 말씀을 외우고 하이파이브 할 때, 아이들이 느끼는 기쁨이 내게도 전해지는 순간 같은. 그리고 말씀을 함께 읽고 외우면서 그 말씀이, 회사에서 일을 할 때 간혹 머리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예기치 않은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이 크면 더 많은 일을 할테고, 기쁨이 적으면 더 적은 일을 하면 된다. 기쁨이 없으면 아예 안하면 되고. 일단은 기쁨이 메마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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