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동안 부모님 댁에 다녀왔다. 아내와 두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왕복 18시간 걸려 광주에 다녀왔다.
대책 없이 일요일 11시에 출발해서, 화요일 12시 30분에 돌아오는 선택을 했다. 대국민 눈치 게임을 할 생각도 없이 그냥 제일 막힌 시간대를 골랐다. 왜냐면, 나는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아이들이 밥을 먹고 씩씩하게 하루를 시작할 시간대를 골랐다. 아내가 바쁜 와중에 과일가게에 들러 과일을 사고, 다이소에 들러 애들 장난감을 사는 통에 더 늦어진 탓도 있지만 굳이 그런 말을 입밖에 꺼내진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오전에 카페인 수혈한다면서, 스타벅스 찾아 한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나는 그런 일들을 문제삼지 않는다. 테토남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늦어진 건 오로지 내 잘못이다. 나는 모두 내 잘못을 인정하고, 수긍한다.
아내와 돌아가면서 운전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 마지막 8시간은 내가 운전대를 내내 잡았다. 그렇지 않으면 아내의 잔소리 폭격을 피할 길이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밤 10시에 집에 돌아와서 바로 잠에 빠져 들었다. 광주에 다녀오고 나서, 둘째가 본인을 돌봐주는 이모님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누나가 착해 져떠요."
누나가 본인을 더 이상 때리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친절하게 잘 놀아준단다. 나는 아내에게 이를 18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 함께 있었던 동지애 덕분이라고 표현했다. 그 시간이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좁은 공간에서 대화를 하고, 웃고 떠들고 짜증 내고 간식을 먹었던 그 모든 시간들이 다 유전자에 알알이 박혀, 하나의 추억이 되고, 하나의 유대감을 형성했다고, 일부러 의미를 부여했다. 근데 나는 진짜 그렇게 믿는다. 그 시간들이 아깝지 않다. 18시간 동안 혼자였다면 아까웠겠지만, 우리 함께 있었잖아, 나는 그게 좋던데.
아내는 마지못해, "그래, 맞네 맞아."하고 맞장구를 쳤다.
-
아비투스란 게 있다. 사범대를 나온 덕에 교육학을 수강하면 자주 듣게 되는 용어이다. 예전에는 흑인들이 지능이 더 낮다는 걸 왜곡하기 위해 일부러 아이큐 검사에 지능 평가가 아닌, 사회문화적인 문제를 섞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식빵 한 면에 버터를 바르는 이유라던가, 레스토랑에서 밥을 다 먹고 나서 식기류를 놓는 방법이라던가 하는 문제들. 내가 경험하지 않으면 못 맞히는 문제들을 일부러 포함해서, 백인들에게 유리한 지능 평가를 만들어냈다. 아비투스는 본인도 모르게 본인 안에 내재되는 습관이나 취향을 뜻한다. 주로 가정에서 익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겠다. 아비투스는 부지불식간에 사회적 계층을 내비치는 행동 양식으로 볼 수도 있다.
어느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읽은 글인데, 누나가 월급을 받으면 패밀리 레스토랑에 동생을 데려간단다. 왜 여길 매번 데려 오냐는 동생에 질문에, 너는 이런 곳에 오면 허둥대지 말라는 뜻으로 데려온다는 누나의 대답. 나도 대학 때 누나가 월급을 받으면 경양식집이나, 스시집, 패밀리 레스토랑에 나를 데려갔는데 그 모습과 묘하게 겹쳤다.
형이 공기업 임원이 되었다. 명절에 어머니에게 비싼 한우를 보냈다. 어머니는 고급 식당에 가보신 적이 없다. 비싼 식당에도 가본 경험이 없다. 바닷가에서 평생을 보내 어류나 해초 등은 잘 다루시지만, 육고기 요리는 잘 못하신다. 그 비싼 한우를 간장과 본인이 만든 특제 소스에 절여 놨다가 며느리와 아들, 손자, 손녀에게 구워 주셨다. 맛이 없었다. 그냥 굽기만 해도 맛있을 텐데. 나는 아쉬운 마음에 이걸 이렇게 요리하면 어떡해, 하면서 싫은 소리를 했다. 아버지는 '아이고, 노인들이 요리를 못해서 애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못해줘서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애들이 모두 밥을 깨작이면서 먹었기도 했고. 마지막 한 끼는 본인 손으로 해주고 싶었을 텐데, 그 마음을 알아서 나는 아이들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일러 두기도 했는데, 진짜 밥이 맛이 없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아비투스 형성이라는 명목으로, 미술관도 가고, 도서관에도 가고, 해외 여행도 가고, 맛있는 식당에도 애들을 곧잘 데려간다. 내가 서울에 와서 패밀리 레스토랑에 처음 갔을 때, 낯설어서 허둥대지 않게 하려는 누나의 노력처럼, 비슷하게 우리 애들에게 자연스럽게 고급 문화가 스며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이면에는 우리 부모님이 누리지 못한 작은 세상이 있다. 한 평생 작은 어촌에서 살았고, 그곳이 전부인줄 알았던 우리 부모님. 시골에서 소나 돼지를 잡는 날이면, 나를 먹이겠다고 신문지에 육고기를 돌돌 말아서 가져와서, 귀한 것이라고 구워주시던 어머니.
내가 경험하고 누리는 이 모든 혜택은 실은 부모님의 희생 위에 쌓인 것이다. 내가 향유하는 문화와 행동양식을 기반으로 부모님을 평가해서는 안된다. 부모님 뿐 아니라, 다른 사람 그 누구도 그렇게 평가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건, 고급 문화를 향유하는 아비투스가 아니라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바른 태도이다. 그리고 웃어른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바른 마음을 대대로 물려주는게 그게 가풍이고 그게 아비투스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맛이 없어도 끝까지 숟가락을 내려 놓지 않고, 밥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더 주세요, 하는 그런 마음씨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